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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오늘은 솔로몬에 대해 살펴보자. 솔로몬은 일반적으로 매우 영광스러운 왕으로 말하지만 지난 주에 우리가 살핀 바에 의하면 도리어 그 반대로 범죄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그런 그에게 놀라운 평화와 영광이 임한 것은 우리아의 희생과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을 지난 주에 생각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범죄한 후 회개의 자리에서 지은 시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塗抹)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燔祭)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시51:1-19)

이 시에서 다윗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핵심은 '자기 부인'과 '하나님의 은혜의 절대성'이다. 여기서 다윗은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다 내려놓았다. 그는 자신의 문제의 본질을 말했다. 그 어떤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거나 개선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절망적 형편에 대해 깨달았으며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 곧 죽은 죄인인 자신의 절대적 무능을 내놓았고 자기 의 대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바 '위로부터 오는 의(하나님의 의)'를 의지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 안에다 먼저 선을 행하지 않으시면 사람은 어떤 일로도 어떤 식으로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역사(선을 행하심)를 간구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윗은 결코 범죄한 후 바로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단이 찾아와서 자기를 책망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벌써 그에게 용서를 내리셨으며 그의 죄를 사하셨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회개에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가 의미를 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택하신 자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대속의 어린양 즉 대속적 희생을 통한 하나님의 의였다. 문제는 복이고 은혜지 사람의 행위가 아닌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자리에서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참된 영광과 번영, 성전의 진정한 건축이었다. (시51:18)

십자가(자기 부인)와 그리스도(하나님의 은혜)가 고백되는 자리, 바로 여기서 솔로몬이 나왔다.

솔로몬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평화, 지혜, 부귀와 번영, 성전 건축 등등이다. 이것들은 다 무엇의 산물인가? 충성과 헌신, 선행과 봉사의 산물인가? 도리어 죄와 회개와 은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아의 희생의 산물이다. 우리아(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었다면 다윗의 회개는 무용한 것이며 은혜(사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하나님께 잘 하면 하나님도 내게 잘 해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 할 수 없고 또한 우리가 잘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우리에게 잘 해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생명이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를 보아야 한다.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를 바라보고 붙잡으려면 우리는 십자가 앞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가 살아 있고 자기의 가능성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윗은 오직 자기의 절망적인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보았다. 상한 심령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도 없다.

다윗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출신 배경이 가장 나쁜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그가 다윗의 정신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어디서 났으며 어떻게 해서 왕이 될 수 있었는지 알았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사람이다. 그는 가장 큰 자가 아니라 가장 작은 자였으며 가장 못난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그 자리에 올리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단이 솔로몬과 밧세바의 편이 되어 다윗의 사후에 솔로몬이 왕위를 잇도록 힘을 쓴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를 빼앗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정죄하고 책망할 목적으로 보내신 선지자가 바로 나단이기 때문이다. 나단이 이렇게 한 것은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가장 잘 증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솔로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성전을 건축한 일이었다.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 임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고 계획이다.(계21장) 그런데 왜 다윗이 하지 못하고 솔로몬이 이 일을 했는가? 그것은 다윗은 공로가 많고 솔로몬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즉 성전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건축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이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 없었다. 역대상 28:2,3에 의하면 그가 성전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그가 피를 많이 흘려서 그렇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 이유이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 보다 더 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죄를 많이 짓거나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많은 헌신과 순종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로들은 그가 성전을 지었을 때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는 출신 성분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심지어 그의 왕으로서의 지혜와 권능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인생 자체를 은혜에서 시작했고 무자격과 연약함 가운데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가 성전을 건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직접 그 일을 진행하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원리, 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솔로몬의 원리는 무엇인가? 다윗의 범죄와 그에 따른 회개, 그에 따른 용서(사함, 은혜), 그에 따른 아들(솔로몬) 그리고 그에 따른 성전 건축, 바로 이것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이 되는 자리에서 평강과 번영과 성전 건축이 나오는 것이다.  

교회의 건축, 하나님의 나라의 건축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선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사람의 좌와 허물과 실패 그리고 거기에 따른 회개와 십자가(자기 부인)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하나님의 은혜(사하심, 그리스도의 역사)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다윗은 시편51편에서 범죄, 회개, 사하심의 과정을 거친 후 그의 구원의 기쁨을 노래함과 동시에 시온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의 건축을 사모하며 그것을 위해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 백성들 가운데 임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성전을 건축할 아들 곧 솔로몬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해서는 안된다. 교만하거나 불순종하거나 악해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는 그런 일이 우리에게 그다지 가능하지도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돌아보아서도 안된다. 우리는 때로 불가능한 일 곧 해서는 안되며 할 수도 없는 일을 한다. 즉 죄를 짓으며 바보 같은 짓을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시편 51편의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솔직하게 "저는 주께 범죄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 자체는 기뻐하시지 않지만 이왕 죄인인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가지고 와서 회개하고 처리를 요구하며 그 예비하신 은혜를 간구하는 것은 매우 기뻐하신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너무 선해서 사함 받을 필요도 없고 은혜를 간구하지도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지만) 보다는 죄와 허물과 실패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함(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함)으로써 사하심을 받는 사람을 더 원하신다. 왜냐하면 사함(십자가와 은혜)이 없는 곳에서는 솔로몬이 있을 수 없고 솔로몬이 없으면 하나님의 성전은 건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살펴보도록 하자. 그것은 솔로몬의 실패에 관한 것이다.

솔로몬은 지혜가 충만하고 부귀도 충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그를 제한하는 어떠한 장치들도 없었다. 다윗에게 있던 고통스러운 단련의 과정, 십자가의 체험들이 없었고 그 곁에는 다윗에게 있었던 싫은 말을 하는 참모들도 없었다. 솔로몬에게는 많은 힘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어하는 장치는 없었다. 이것은 그에게 매우 위험한 환경이었다. 결국 그는 교만과 무지 가운데서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의 출발 배경, 출신 배경이 무엇인지 우리는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서 출발했으며,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서 출발했다. 언제나 십자가가 우리의 배경이며 출발선이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가장 원통하고 불행한 일이다. 처음에 창기와 세리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게 되면 아무도 교만하지 않으며 자리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자기 형편이 좋아지면 육체를 내세우며 자기를 자랑하고 의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솔로몬의 실패를 밟는 것이다.

십자가의 환경, 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것은 복이고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하나님의 조치이다. 다윗의 일생을 보라. 그의 일생은 밧세바 이전에도 고난이었고 밧세바 이후에도 고난이었다. 그것은 그를 일생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다. 약속에 대한 소망이 필요없는 부유한 환경, 육신의 모든 것이 구비되는 안락한 환경 아래서는 하나님의 언약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지 못하며 그와 함께 새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매일 십자가를 지고 기쁘게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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