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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 말은 주 예수님이 요셉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이다. 주님은 일반적 경우와 같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어머니에게서만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떻게 여자 혼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이 사실이 보여주는 바는 주님은 누가 낳아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것 같으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는 보통의 출생 형식으로 취하여 오셔도 될 터인데 왜 굳이 어머니의 몸만을 빌어 태어나는 형식을 취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말씀해 놓으신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2,23)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4,15)

형식상으로 볼 때 처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라 일컬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라고 말할 때는 이삭이 남자의 후손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요셉이 낳지 않고 마리아가 낳았으므로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여자'를 대표한다. 그리고 '여자'는 마귀에게 속아 실패한 전체 인류를 대표한다. 주 예수님이 여자 곧 뱀에게 속아서 실패한 하와의 후손으로 오신 것은 하와로 대표되는 모든 '실패한 인류'를 대표하여 뱀(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세상의 구원과 인류의 회복을 이루기 위해 오신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는 여자(하와)가 먼저 마귀에게 속아 범죄함으로써 인류의 타락 및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상실을 가져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보기에 여자(하와)는 우주 가운데서 가장 작고 힘없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의 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은 가장 약하고 가장 작은 인생 곧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마귀를 이기사 인류를 마귀와 죄로부터 해방시키시는 것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魚族)과 해로(海路)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8:1-9)

여기 시편 8편이 말하는 바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못한 모습 즉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그 무궁한 생명의 권세로서 원수를 부끄럽게 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아들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그리스도인들)의 영광과 권세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 가운데서 가장 작은 자를 나타낸다. '여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다 '무능하고 연약하여 실패한 인생'의 그 무능하고 연약함을 나타내기에 적합하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 승리하면 그 승리는 확실한 것이다.

성경에서, 여자는 다만 약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승리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 곧 교회를 상징한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2:1-5)

이것은 교회가 이기는 자들을 낳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기는 자들이란 승리하는 교회 곧 그리스도께 신부로 바쳐드릴 영광스러운 교회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 사람들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것이다.

이 이기는 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교회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머리에 해를 입고 발에는 달을 디디고 서 있는 교회이므로 역사상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 곧 신구약시대를 망라한 전체 교회를 가리킨다. 즉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 교회를 망라한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교회는 그 자체로서 만국을 다스릴 하나님의 남자로 표현되지 않고 왜 남자를 낳는 여자로 표현되어 있는가? 그것은 모든 교회, 모든 신자가 다 이기는 자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좋지만 실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다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했으며 오직 '남은 자'들만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었다. 그리고 신약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다 이기는 자는 아니며 오직 이기는 자는 '교회 안에서' 나올 따름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기는 자를 낳는다는 것은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교회를 낳는다는 말과 같다. 즉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만국을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온갖 죄인들이 들끓고 그 안에 마귀가 설치고 다님으로써 지극히 약하고 한심한 곳 같지만 그대로 세상과는 다른 것은 그것이 결국 '이기는 자'(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마귀를 이기는 자)를 낳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가 낳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낳는 것이다.

여자는 생명을 낳음으로 그 권능을 나타낸다. 여자의 승리는 해산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2:11-15)

여자는 사탄에게 속아 그 생명과 권세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부끄럽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생동안 무언가 권력을 움켜쥐고 무언가 지배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3:16)

이것이 여자의 영원한 속성이며 운명이다. 알고 보면 여자만의 속성과 운명이 아니라 모든 인생의 속성과 운명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여자가(인생이) 구원과 승리를 누릴 길을 가져오셨다. 그것은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마귀를 이기신 것이다. 주님의 승리는 십자가의 승리였다. 이것은 순종의 승리요, 사망(부활 생명)으로 사망을 이긴 승리요, 생명을 낳음으로써 사망을 이긴 승리이다.  

바울이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려는 것을 허락지 않은 이유는 그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거나 문화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자 안에 타락으로 인해 그런 욕망이 항상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잃어버린 권세과 영광이 되찾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결국 승리는 무언가를 주관하고 장악하고 지배하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자기를 낮추고 그와 같이 생명으로 생명을 낳는(해산하는) 일을 함으로써만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초의 실패 곧 하와의 실패는 온 인류의 실패이며 하나님의 실패와도 같은 것이므로 그것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0-15)

여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소망은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을 제압하여 이기는 것뿐이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를 망라한 모든 인생에게 주어진 유일한 소망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넘겼으므로 결국 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 일은 뱀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를 대표하여 여자의 후손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그리고 십자에게서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으로써 그를 이기시고 그에게 사로잡힌 모든 인생을 해방시키시고 그 권세와 영광을 회복시키셨다.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2:15)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승리의 비밀을 말해주며 동시에 인생의 승리의 비밀을 말해준다. 여자는 약하다. 약함의 대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약한 자로 강한 자를 이기게 하는 것이다. 약한 자가 강하게 되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으로 강한 자를 이기는 것이다. 약함의 능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함이다. 약한 자리에서 겸손과 순종과 의지(믿음)이 나온다. 생명과(生命果)의 원칙은 순종과 의지(依支)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7)

그러므로 교회에게는 여자가 많다. 하나님의 뜻은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이며 미련한 자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이유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4,15)

주님은 무엇으로 승리하셨는가? 십자가로 승리하셨다. 이것은 곧 아버지께 순종함으로 승리하셨음을 의미한다. 강함으로 승리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달림으로 승리하셨다. 육체의 영광과 능력으로 사망 권세 잡은 자를 없앤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 즉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꺼이 사망을 받아들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사망 권세 잡은 자를 이기신 것이다.
약함으로 강함을 이김, 생명으로 사망을 이김, 여자로서 뱀을 제압함,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으로 원수를 잠잠케 함,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전4:7-12)

승리는 이기려 하고 지배하려 하고 살려고 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생명 얻음)을 위해 내가 사망에 처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내가 손해를 보는데서 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역사할 수 있도록 십자가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는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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