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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름 (마1:18-25) / 2003. 7. 27

2010.04.29 10:21

이상봉 조회 수:460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여기에 나타난 주님의 이름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예수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이고 셋째는 임마누엘이다.


1.예수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여호와가 구원하신다)를 헬라식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 뜻은 '구원자'이다. 구약 시대에 이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으며 성경 인물들 중에서 이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 여럿 있다. 여호수아, 호세아 등은 다 같은 이름이다.

예수는 주님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분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흔한 이름이었으므로 주님의 이름은 그냥 예수가 아니라 출신 지명을 붙여서 종종 '나사렛 예수'로 불렸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직접 부여하신 이름으로써 주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로 오셨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구약에는 이미 이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주 예수님이 성취하게 될 이 구원의 역사를 미리 나타내 보인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이다. 히브리서 3장과 4장을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안식)으로 이끌려고 했는데 그것이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점이 있으며 또 결국 가나안에는 들어갔지만 그 자리가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안식의 자리는 아니었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더 완전한 구원과 안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식으로 이끌 구원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처럼 예수라는 이름은 그 이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뿐 아니라 구약 시대 여호수아의 역사(歷史)가 나타내고 있는 의미까지를 포함하여 주님이 수행하게 될 구원자로서의 사역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2.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메시야에서 온 것인데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이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이름은 고대 중동 지방에서 높은 직임을 맡은 사람에게 널리 쓰인 이름이다. 즉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등과 같이 높은 직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어 권위를 부여하고 성별(聖別)하는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왕상19:16, 시133:2) 그러나 이 그리스도라는 이름 앞에 정관사 '그'(the, 헬라어 ho)를 붙여서 '그 그리스도'라고 할 때는 은 일반적인 위임자가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특별한 한 사람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실 한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삼상2:10, 시2:2, 요20:31)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서로 전혀 성격이 다른 이름이므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두 이름 중 어느 것이 나은가 더 좋은가 하는 질문은 성립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두 이름의 특성이 다르므로 비교는 할 수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주님이 한 '사람'으로 탄생할 때 붙여진 이름이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에게 처음부터 붙여진 이름이므로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이름보다 더 영원하고 큰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는 주님이 사람으로 태어날 때 주어진 이름이지만 '그리스도'는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으로부터 우주의 진정한 주권자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인정받을 때) 주어진 이름이다.(행2:36)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종종 함께 쓰여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 예수로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용법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주님 안에" 또는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예수 안에" 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살전4:14에 "예수 안에 자는 자들도" 라는 말이 한 번 나오나 이것의 원문은 'dia tou iesou'(through Jesus) 즉 '예수를 통하여 자는 자들'이므로 오역된 것이다.

왜 "그리스도 안에"는 되는데 "예수 안에"는 안되는가? 그것은 주님이 인생으로 땅에 계실 때는 사람이 그와 연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자(人子)로서 주님은 사람과 연합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 안에 있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들이 예수와 다른 인격과 다른 삶을 나타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사람은 부활하여 영으로 오신 주님과만 연합할 수 있다. 인자(사람)로서 주님은 그 인격이나 사역에 있어서 모든 인간을 월등히 능가하는 뛰어난 분이셨다. 이러한 주님의 인생(人生)만을 놓고 말하자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할 몫이 없다. 그는 하늘에 속한 존귀한 분이시고 우리는 땅에 있는 죄인이라는 것만 비교될 따름이다. 그의 사역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구세주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구세주와 어떻게 연합이 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예수와 하나가 되어서 사람들을 구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는 연합할 수 있다. "주님 안에" 또는 "그리스도 안에" 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라는 말은 다 그것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들이다. 이 용어는 하나님이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님을 그리스도로 만드셨고 그 그리스도 안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그 부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아들과 맺으신 약속에 따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케 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많은 아들들을 얻으실 수 있었고 그 아들들이 '한 몸' 곧 '그리스도'라는 '단체적 인격'을 이루도록 역사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개인적 이름이지만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개인적인 이름인 동시에 단체적인 이름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도 그러하니라" 라고 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라고 하고 있다. 그것은 머리와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있지만 '예수인'이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주님과 동일한 아들의 생명, 부활 생명을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 실제로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인자로서 주님이 땅에서 가진 그의 체험과 사역을 말해주는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빛나는 영광이 있지만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주님의 완전하신 인격과 삶을 나타낼 따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머리뿐 아니라 몸에도 적용될 수 있는 단체적 이름이다.

이런 까닭에 성경은 사람으로서의 주님을 가리킬 때는 그리스도라고 일컫지 않고 예수라고 일컬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 후 교회의 머리가 되신 때로부터는 단지 예수라고 일컫지 않고 "그리스도" 또는 최소한 "주님"이라고 일컫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부활과 (우주를 다스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도행전과 서신들 가운데서 주님을 더러 예수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의 인성을 특별히 고려하여 그렇게 부른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주님을 호칭할 때 그냥 예수라고만 일컬을 것이 아니라 "주 예수"라고 일컬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주님의 직분, 직무와 관련된 이름이므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대할 때 우리는 이 이름이 나타내고 있는 바 주님의 직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주님의 직무는 보통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선지자이고 둘째는 제사장이고 셋째는 왕이다.

첫째, 주님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며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주신 선지자이셨다. 그가 수행한 선지자 사역은 완전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뜻과 비밀을 다 드러내셨을 뿐 아니라 성육신을 통해서 사실상 하나님 자신을 완전하게 계시하셨다. 그의 가르침이 완전한 것은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골2:3) 그러므로 그는 세상에 계실 때 참으로 세상의 빛이었다.

둘째, 주님은 세상에서 확실하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드리셨다. 시110:4에서 하나님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계열에 속하는 불완전한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임명에 의한 완전한 제사장임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막이나 성전에서 봉사한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단지 장차 오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흉내만 낸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에는 세 가지 일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제사장으로서 담당하신 첫 번째 일은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확증하는 것과 죄인들을 구속(救贖, 속죄)하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은 구약 시대에 천년 이상 지속된 제사 제도를 통해 예표되었으며 특히 유월절에 이루어진 어린 양의 희생을 통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레위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의 제사는 상징적이고 반복적인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번에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효력을 가져오는 완전한 제사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바로 (동물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의 직접적인 죽음을 통한 하나님의 공의의 확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어떻게 죄인의 직접적인 죽음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바로 인류의 원형이시고 진정한 대표자이시고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인류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첫 인류의 죽음이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을 당하셨고(고전5:7),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됨으로써(히9:28)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서 담당하신 두 번째 일은 '기도'이다. 주님은 단지 인류를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히4:6) 주님은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눅11:1-4, 마6:9-13) 누구든지 진실로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보증해주시며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탄원하심으로써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해 주신다.(요16:23,24) 주님은 그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셨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 중재하시고 변호하시는 대언자로서 일하셨다. 그리고 이런 일은 땅에 계실 때(눅22:32, 23:34, 요17장) 뿐 아니라 하늘에 오르신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롬8:34) 주님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고 계셨으며 인간의 필요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사람을 위해 일하신다. 그의 기도는 이러한 사역의 표현이다.

그리스도가 제사장으로서 담당하신 세 번째 일은 '그 백성들을 위해 복을 비는 일'이다. 구약 시대 제사장의 임무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안수하며 그들을 축복하는 일을 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 때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민6:22-27)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에게 복을 가져왔다. 그가 오신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이었지만 거기에 더하여 주님은 직접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축복하셨다.(눅24:50,51) 또한 지금도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 백성들에게 빌어주신다.(엡1:3)

셋째, 주님은 구약의 왕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직분을 수행하셨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구약의 인간 왕들은 제도와 물리적 힘에 의해 백성들 위해 군림하여 다스렸지만 주님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점이다. 그는 공의와 사랑과 진리로 백성들을 다스렸으며 지금도 그러하시다. 구약은 수세기 동안 주님이 수행할 왕으로서의 직무에 대해 말해왔다.(창49:10, 사9:6, 미5:2, 시110:1,2, 슥9:9)
주님의 왕권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나타났던 이스라엘 신정 정치의 왕권을 통해 잘 예표되었다. 그러나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언약) 안에서 계시된 메시야 왕권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그 나라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3.임마누엘

이 이름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생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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