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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2:1-10)


마태복음 2장은 주님의 탄생 후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멀리 동방으로부터 이방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려고 찾아온 것과 그 소식을 들은 유대 왕 헤롯이 주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주님이 탄생한 직후 동방(아마도 페르시아)의 어떤 사람들이 별을 관찰하던 중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것으로 느껴지는 한 별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메시아의 탄생을 직감한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서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 유대를 방문하였다.

동방 박사라고 서술된 이 사람들은 바벨론으로부터 온 점성학자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방인인 그들이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살던 곳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된 후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므로 주님 탄생 당시 바벨론에는 그들의 후손인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박사들은 그들로부터 메시아의 소망에 대해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은 아마도 다니엘의 예언 및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던 같다. 6세기 말 경에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콰이어(Melchior), 발타살(Balthasar) 그리고 가스페르(Gasper)로 밝혀진 바 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이 말은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대인들에게 물은 말이다. 그들은 메시아에 대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메시아에 대해 '다윗의 자손'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고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메시야 대망(待望)'은 모든 유대인들의 공통된 소망이었을 뿐 아니라 바벨론에 의해 온 세계로 흩어지게 된 유대인들이 이 소망을 유대뿐 아니라 온 세상에 널리 퍼뜨림으로써 주님 탄생 당시에는 '유대에서 나시는 메시야가 유대를 구하고 또 온 세상도 그로 인해 축복을 받는다'는 사상이 다른 이방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 박사들은 헤롯 왕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당연한 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모든 유대인들이 주님의 탄생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즉 별을 본 후 여러 날의 여행을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그 무렵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이미 (자기들보다 먼저) 그들의 왕을 만나 경배하며 기뻐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한다던 유대인들은 정작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오직 베들레헴의 몇몇 목동들을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들만 주님의 탄생을 알고 경배했을 뿐 유대의 지도층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주님의 탄생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멀리 이방 땅에 사는 이방인들은 주님의 탄생을 알고 와서 경배했는데 본국에서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것은 분명히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은 우연한 일도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탄생을 알게 된 이들(동방 박사, 베들레헴 근처의 목동들, 안나와 시므온...) 역시 모두 성령께서 어떤 식으로든 그 사실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안 것이지 저절로 알거나 자기들이 알려고 해서 안 것은 아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택하심)을 입은' 사람(남은 자)들만 그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6-8)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롬11:19,20)

이 말씀은 유대인이라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다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제로 약속을 믿고 붙잡는 사람이라야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약속을 실제로 믿는(붙잡는) 사람은 이스라엘 안에도 있지만 이스라엘 밖에도 있을 수 있다. 마태복음 2장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약속을 믿고 붙잡고 있는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멀리서 동방 박사들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그 미리 하신 약속을 따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도록 역사하시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박사들이 동방에서 본 별의 실상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으로 보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혜성이나 폭발로 인해 엄청난 양의 빛을 몇 주 동안 발하는 초신성(超新星)으로 보았다. 어떤 형태로 나타났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성령님께서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그것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표적임을 알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한편 마태는 이 부분을 기술하면서 적어도 민수기 24:17에 나오는 발람의 예언 곧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염두(念頭)에 두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문은 피해망상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헤롯은 전에 그의 망상증과 불안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한 바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역시 그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거는 기대와 소망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로 인해 헤롯이 자극을 받으면 또 유대 사회가 얼마나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인가를 우려해서였다.

어쨌든 박사들의 말로 인해 헤롯과 유대인들에게는 '소동'이 일어났다. 헤롯은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소집했다. 그가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날 것인지를 물었을 때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 미가 5:2 말씀을 인용하여 유대땅 베들레헴이 메시아가 태어날 장소라고 대답해 주었다.

헤롯은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일러주면서 만일 아기를 찾거든 자기도 가서 경배할 수 있도록 돌아올 때 자기에게 그 구체적 장소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장소를 알려달라고 한 것은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로 지목된 그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 였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영적 현주소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일컫고 있던 이스라엘의 왕과 관원들이 오신 메시야를 경배하고 섬기기는커녕 합력하여 메시야를 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편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시2:1-3)
문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여 헛되이 분노하고 헛되이 대적하는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데 있다.

이것은 곧 이제 세상에는 혈통과 민족, 국가라는 단위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없고 오직 누구든지 약속을 실제로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원칙에 따르면 국가로서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유대인, 종교로서 여호와 일신교(유대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무 특별한 지위도 의미도 없는 것이다.

주님의 탄생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도 주님의 탄생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도리어 이방인들이 그것을 알고 경배하러 왔다는 점, 별이 유대 땅까지 박사들을 인도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나타나지 않다가 예루살렘 밖으로 나오자 다시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헤롯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는 점, 이 모든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목자들과 같이 가난하고 곤고한 자리에서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자들 그리고 시므온, 안나와 같이 약속을 붙잡고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탄생이 계시되고 보여졌지만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대인, 유대교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되었다.

또 제사장 자손으로 태어난 세례요한이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처럼 제사장으로서는 적합지 않은 거친 음식을 먹으며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 거주하며 외쳤다는 사실 역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받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오직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과 정신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 선생)이 주님의 탄생에 대해 정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지식이 그들을 실제로 메시야께로 인도하고 생명의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풍부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주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진리의 빛(계시)이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볼 때 진리의 빛은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비추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적어도 말씀(성경)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즉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같이 성경을 익히 알고 있고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리의 빛은 결코 (객관적으로 볼 때) 제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어둠 가운데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에게 자기 생각과 자기 목표, 자기 인생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나라와 의를 사모한 것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서 육신의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 주기를 원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눈을 가리웠고 그들로 빛으로 나아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19-21)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은 단순한 성경 지식이 아니라 약속을 알고 믿고 사모하는 마음이다. 구하는 자가 얻으며 찾는 자가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를 사모하고 기꺼이 들어가고자 하는 자에게 열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한편으로 모든 사람에게 닫혀 있는 나라이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지식을 가졌으나 기꺼이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온 이방인들에게 활짝 열려 있었지만, 많은 지식을 가졌으나 지금 소유한 땅의 영광과 자랑을 잃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유대인들에게는 완전히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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