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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後嗣)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바리새인들이 주님께 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지 내지 않는 것이 옳은지를 물음으로써 주님을 시험했을 때 주님은 지혜로운 대답으로 그들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다음으로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이었다.

사두개인(사두개派)은 다윗 시대의 유명한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유래된 유대교의 한 집단으로서 특히 제사장직을 소중히 여겼고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제사장의 역할을 가장 존중하였다. 따라서 사두개인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제사장들이었으며 대제사장에게 충성했던 가족들과 예루살렘의 부유한 귀족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두개인은 성경에서 말하는 공회 즉 유대인의 중앙 사법기구인 산헤드린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은 헤롯궁이나 로마에서 파견된 집정관들과 연합하여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유력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백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사두개인들은 자주 바리새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두개인들은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오직 기록된 성경(토라)만 인정했고 바리새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구전(口傳)적 토라는 거부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요 세속주의자들이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달리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믿지 않았다.  

이러한 사두개인들이 주님을 시험하러 온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음으로써 주님을 시험했다.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성경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으로서 단지 인간의 희망과 염원이 담긴 하나의 거짓된 교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은 주님께 계대(繼代)법에 의해 일곱 형제의 아내 되었던 한 여인에 대해 물었다. 그 여자가 죽은 후에 만일 부활한다면 그는 일곱 남편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질문을 통해 부활의 비논리성과 터무니없음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주님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주님의 지혜와 지식이 어떠한지를 그렇게 시험하였다.

이에 대해 주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성경에 기록된 바 부활을 시사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평소에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 곧 사람을 능히 살리시는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왜 이런 이상한 문제를 내 놓았는가? 그들은 왜 부활을 믿지 않았는가?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고 있었어야 할 분명한 진리들을 왜 부정하려고 들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몰랐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나타내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면 부활을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줄기만 남기고 나머지가 다 죽지만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꽃이 핌으로써 다시 소생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매년 보아왔으므로 내년에도 나무가 마른 가지에서 다시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소성(蘇醒)할 것을 자연스럽게 믿을 수 있다. 이러한 믿음 또는 예측은 전에 일어난 역사를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성경은 지나간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기록한 역사(歷史)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알면 하나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실 것인지 알 수 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에서 자기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뽑아서 사용하고 싶은 부분만 취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하나님의 약속과 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부활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성경 안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사람을 살리고 돌보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과 같이 자연 법칙 안에서만 운행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적을 일으키며 끊임없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다. 꼭 신비적인 방법으로서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꾸준히 사람을 살리며 사람의 생명을 풍성케 하는 역사를 해 오셨다. 주님이 죽은 나사로나 과부의 아들을 살린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죽은 자의 부활은 하나님의 생명의(살리는) 역사의 최종 사역이다.

만일 고린도전서 15장이나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그간에 행하신 모든 역사는 완성될 수 없다. 아브라함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볼 것이며 야곱과 요셉을 비롯하여 약속의 땅에 소망을 두고 살다가 사라져간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약속의 성취를 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 약속과 부활을 통째로 안 믿든지 아니면 다 믿든지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경 말씀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체험으로 아는 영적 지식도 있어야 한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라는 말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치 않고 어리석은 길로 행치 않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풍성히 담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무엇이라고 약속하셨는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모르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다.

또 우리는 성경 곧 우리 바깥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뿐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은 그의 율법을 우리 속에 넣어주셨다.(히브리서 8장)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것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불렀다.(로마서 8:2) 이것이 바로 주님이 언급하신 바 '하나님의 능력'과 같은 말이다. 요한은 요한일서 2장에서 이 생명의 법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완전하게 가르치고 인도하기 때문에 이것만 따라가면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요일2:27) 이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의 법, 생명의 법,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수 없으며 진리에 대해 사두개인들처럼 무지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답변하셨는가? 그는 한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출3:6) 이 말씀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다 놓고 하신 말씀인데 당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수 백년 전에 죽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장차 부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이미 죽은 자의 하나님으로 소개한 셈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다. 그들은 비록 잠시 죽어 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다시 살아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크게 보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죽은 자를 자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주님은 꾸며낸 거짓 이야기를 가지고 부활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던 사두개인들을 그들이 사용한 논리적 방법으로 확실하게 누르셨다.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부정했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보다는 성경을 많이 알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성경을 온전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성경의 증거를 받고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사두개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한 아들을 들어서 마귀를 이기며 사람을 구원하며 만물을 다스리게 하실 수 있음을 믿지 못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피상적이고 주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산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멀리 동방으로부터 온 점술가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과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물은 것이 나온다. 그때 헤롯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탄생하는가를 물었다. 그때 거기 있던 선생들은 즉각적으로 그것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다. 어느 한 사람도 집에 가서 성경을 찾아보아야 하겠다든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메시야를 찾아 박사들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난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성경을 알기는 하지만 거기서 말하는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다.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배웠다면 실제로 메시아가 탄생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내신 약속을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은 아마 과거에 바벨론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다니엘을 통해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별을 연구하던 중에 메시아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그를 찾아 먼 여행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성경 지식을 조금만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믿었다. 그러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로 믿지 않았다. 성경 지식을 조금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유대인의 왕을 찾았는데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주님을 찾아서 먼 길을 여행한 동방박사들은 결국 메시아를 만났다. 그러나 풍부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 메시아가 행하는 모든 하나님의 일들을 눈 앞에서 목도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결국 메시아를 만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 지식만 가지고 있는 것은 절대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성경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때만 이런 일이 있은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요11:50) 이것은 무슨 말인가? 주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온 어린 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말한 셈이다. 그러나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는 주님을 죽이도록 판결하였다. 이 얼마나 불행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성경 지식만 가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무익하다. 주님을 대적했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모두 다른 기준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죽였다. 그들은 율법이결국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전혀 보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31:33,34)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세운 궁극적 언약은 그들이 하나님을 속에서부터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밖의 지식으로 말씀(성경)을 아는 것은 충분치 않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 속에 기록되어야 한다.

성경을 두뇌로만 아는 것은 불완전한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가르치심)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알 때 그 사람 안에는 그릇된 진리의 지식이 있게 될 것이며 그것은 마귀에 의해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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