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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


주님은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 즉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문제는 누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의 능력)을 그 속에 가진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안에 이런 생명(의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마귀에게 속아 타락한 후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과 지위를 잃고 말았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떠난 그 순간 영이 죽음으로써 육체의 종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죽을 육체만 사랑하게 되었으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육체의 덧없는 욕망만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 사람 안에 있는 이 육체의 욕망을 덧없는(정함 없는)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이 사람을 속여서 그 욕망을 계속 변동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오직 자기만 아니 자기 육체의 정함 없는 욕망만 사랑한다. 혹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극히 일 부분일 뿐이다. 기껏해야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는 것이며 좋아도 하고 싫어도 하는 그런 수준이다. 즉 기분이 내키고 좋을 때는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려면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절감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그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서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생명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할 수 있는 생명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가 내 주인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며 내 생명이며 내 운명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이제는 이전의 육신의 감정대로 살 자가 아니요 육신의 요구대로 응할 자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살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기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를 가르치며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상을 잘 아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 자연적인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후에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신30:1-8)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을 예견한 말씀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 놓인 복과 저주 중에서 (복은 못 받고) 오직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 이스라엘 중 어떤 사람들이 자기의 죄와 무능을 깨닫고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구원을 바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며 은혜(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그들 안에 들어가셔서 그들의 심령을 회복시키고 인격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게 되며 그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생명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사람은 실패로 말미암아 철저히 낮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으며 은혜를 사모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며 그로 인해 징계를 받고 고생을 하는 것은 우선은 괴롭지만 결국 좋은 일이다.  

모세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쫓겨간 자리에서 기억하고 찾게 될 언약이란 무슨 언약인가? 바로 아브라함 언약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택하여 복 주시겠다는 그 약속, 곧 이스라엘을 큰 나라가 되게 하며 그 백성으로 만국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이다. 구약(시내산 언약)은 이것을 계승한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이것은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은 착하고 선한 백성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다. 즉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을 잘 따라오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요 복의 근원이요 삶의 근거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따라오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 곧 나라와 영원한 후사에 대한 약속 또는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기대라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또는 성령 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이 닥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전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이때의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행동 원리는 말하자면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행위 원리'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며 나의 의(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실패하고 망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실패의 자리에서 행위의 길 또는 자기 의를 버리고 비로소 은혜와 믿음으로 사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들 속에서 역사하셔서 그들로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만드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할례(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사람은 절대로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할례 베푸심 곧 성령으로 말미암는 십자가의 역사에 달려 있다. 다시 신명기 30장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②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30:9,10)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①) 이 말은 얼른 들으면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행동 여부에 달려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이 적용될 때의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저주 가운데서 망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율법을 지키거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열심이나 순종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행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을 내놓고 하나님을 찾고 은혜를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기 제시된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개와 순종은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하나님이 되사 복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②)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마음을 낮추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의 의미를 상세히 살펴보자. 여기에는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둘째는 목숨을 다하는 것이고, 셋째는 뜻을 다하는 것이다.

첫째, 마음을 다하는 사랑이란 문자 그대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아닌, 즉 수단적이고 외식적인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의미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사랑이다.

둘째, 목숨을 다하는 사랑이란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하는 사랑을 말한다. 소위 죽고 못 사는 사랑이다. 이것은 연애 감정으로 불타는 젊은 남녀의 사랑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돈이나 시간이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다. 주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몽땅 부어버린 여인의 사랑, 그리고 자기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헌금통에 바친 여인의 사랑이 바로 이 목숨을 다하는 사랑이다. 옥합에 든 향유 그리고 동전 두 개는 그들의 전 재산이었으며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던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목숨을 다하는 사랑이다.

셋째, 뜻을 다하는 사랑이란 맹목적이고 무지한 사랑이 아니라 왜 사랑하는지 근거가 있는 사랑이다. 상대가 누군지 어떤 매력이 있고 어떤 가치가 있어서 그렇게 사랑하는지 분명히 알고 하는 근거 있는 사랑이다. 즉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더 귀하게 여기게 되며 더 깊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 안에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파고들면 들수록 좋은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안 좋은 사람은 처음에는 끌려서 사랑하게 되지만 오래 같이 하면 할수록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되며 사랑이 식어지게 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은 처음에는 별로 끌리지 않아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끌리게 되며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 그 속에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안 섬기면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로 인한) 두려움이나 협박으로 인해 억지로 사랑해야 하는 분이 아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며 참된 친구요 영원한 반려자시다. 그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며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또한 우리는 그에게서 났고 그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존재이다. 즉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존재로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사는 것이 가장 적합하며 그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고기가 물에서 놀도록 되어 있듯이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를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억지로가 아니라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 앞으로 재어보나 뒤로 재어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옳고 합당하다.

이것이 바로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즉 지식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왜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덮어놓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만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달라야 한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우상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에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우상이야 그 실체가 마귀의 속임수일 뿐 실재하지도 않으니 알래야 알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요 인격이시므로 그를 섬기려는(사랑하려는) 자는 반드시 그를 알고 섬겨야(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의 사랑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을 알고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의 바탕 위에서 하나님을 합당하고 견고하게 사랑해야 한다.

우상을 섬기는 자는 자기 목적을 위해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부처를 섬기든 산신령을 섬기든 그것을 섬기는 자의 목적은 오직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섬김(사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디. 그러므로 진실한 사랑이나 마음으로부터의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고향이며 우리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다.

이 차이는 마치 육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술집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그 사랑과 달라야 함과 같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특징은 내가 먼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것의 반응으로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가 필요에 의해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나를 이끈 어떤 분과의 운명적인 사랑이다. 먼저 어머니가 나를 낳고 나를 먼저 사랑했으며 그리하여 그 안에 안식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서 사랑하는 그런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감정에 끌려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랑인 것이다. 충분히 사랑할 이유가 있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사랑하는 그런 사랑인 것이다.

이런 사랑을 하려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사랑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먼저 베푸신 것이다. 그는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시며 이를 위해 (그 아들을 통해) 목숨까지 버리셨다. 하나님은 이런 사랑을 통해 우리를 그런 사랑의 세계로 즉 자기의 영광스러운 세계로 인도하셨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이끌림 안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세계를 맛보고 그것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충동적이고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라 만세 전부터 계획된 그의 영원한 뜻에 의한 분명하고도 확고한 사랑이다. 즉 마음과 뜻을 다한 사랑이다. 바로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체험하고  이 사랑 안에 확고히 거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그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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