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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22:13-15)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니라 하는도다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16-22)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3:25-28)



주님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이것은 장차 화 곧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있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그들의 상태를 말한 것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지만 현재 이미 저주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그리스도를 대적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자요 버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나타내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이와는 반대되는 자들 곧 복 있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신 바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죄와 저주의 상태를 깨닫고 의와 진리와 하나님의 구원 및 그 다스림을 사모하였다. 그러나 여기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과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주님은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할 때도 8번 정도로 그 상태를 나누어 설명하셨는데 여기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곧 복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7,8번 정도로 그 상태를 나누어 설명하셨다.

먼저 우리는 주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을 저주하거나 그 저주의 상태를 공개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주 예수님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더욱 특별한 일이다. 주님이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셨다는 것은 결국 최종적인 멸망을 선고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왜 이런 심판을 받았을까? 성령을 거스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죄를 짓는 일반적인 죄인이 아니고 죄를 옹호하고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사탄의 손에 단단히 잡혀서 그 도구로 사용된 자들이었다. 주님이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막고 성령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실수를 했다거나 무지하다거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막3:28-30)

예수님과 그 사역을 보고 귀신이 들려서 그런 일을 한다고 말하던 자들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했는가? 자기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보존하고 자기를 옹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나타난 명백한 하나님의 역사까지도 자기를 다치게 한다고 느낄 때 사정없이 깎아 내리고 거부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다.  

주님이 모든 세상 죄인들을 용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으신 것은 이런 사람들을 용납하면 세상 죄인들을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이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고 교회가 세워진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에 대한 심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그대로 두면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일을 계속 훼방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흩어 망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주님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저주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사람들에게 심판이나 저주를 선포해서는 안된다. 마구잡이로 책망을 해서도 안된다. 어떤 사람이 단지 죄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진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마구 책망을 하고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외식(위선)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외식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그들이 주님을 대적하고 성령을 훼방하게 된 동기가 바로 외식에 있기 때문이다.

외식은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율배반적이란 한 사람 안에 두 가지 상반된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한편으로는 재물이나 명예나 권력이 무가치하고 더럽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외식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주님이 사용한 외식(hypokritai)이라는 단어는 가면을 덮어쓰고 연극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외식이란 가면을 덮어 쓴 상태 곧 겉과 속이 다른 상태를 말한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요 지식과 행함이 따로 노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이 말씀은 외식이 무엇인지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라 하겠다. 외식은 자기를 꾸미는 것인데 이러한 행동이 바로 마귀의 가장 현저한 특징 중 하나이다. 누가 자기를 꾸미겠는가? 자기 속에게 영광이 없는 자이다. 또한 영광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자가 자기를 꾸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기를 꾸밀 자인가? 그렇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요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그 자리에만 있으면 전혀 자기를 꾸밀 필요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으면 항상 부유하고 아름다워서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꾸밀 필요가 없다. 꾸미는 것은 오직 영광 없는 자 곧 하나님이 지으신 자리를 이탈하여 본래의 영광을 잃어버린 자가 하는 것이다. 꾸미는 것은 오직 자기를 하나님만큼이나 높다고 착각하는 마귀가 그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일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버렸으므로 영광이 없게 된 자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영광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자기를 꾸미는 것이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이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계17:4-6)

이것은 요한이 계시 중에 본 마귀의 모습이다. 겉은 고상한 금잔인데 속은 더러운 것들로 차 있는 상태 바로 이것이 마귀의 모습이며 이렇게 자기를 꾸미는 것이 마귀의 일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거짓으로 꾸미는 외식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다.  

위의 음녀는 마귀와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거짓된 종교 세계를 가리킨다. 이 음녀는 무엇으로 자기를 꾸미고 있는가? 바로 금과 보석과 진주이다. 금과 보석과 진주는 계시록 22장에서 천국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묘사된 물질들이다. 즉 그것은 의와 진리와 거룩과 경건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마귀는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 지식으로 자기를 꾸밀 뿐 아니라 하늘에 속한 거룩한 성분들로도 자기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 세계란 세속적인 것들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영적인 가치들로 자기를 꾸미고 있는 자들의 세계이다. 실제로는 세상이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고 거룩한 척 경건한 척 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세상 것들, 세상 영광과 세상 가치들이 무가치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추구한다.  

만일 우리가 실제로는 돈을 사랑하고 돈을 소중히 여기는 자요 세상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돈(세상 재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요 세상 사람이다.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눈이 두 개냐 세 개냐 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눈에 보이는 세계와 그 영광을 붙들고 있느냐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붙들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두 가지를 다 쥐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외식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상 영광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그렇다고 떳떳이 말하고 그렇게 살면 되지 왜 안 그런 척 하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안에 양심이 있고 본성적 지식이 있어서 허무한 것들을 좇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육신의 영광이라는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외식은 종교인들이 하는데 그들은 어느 정도 하나님의 영광을 (희미하게나마) 보았기 때문에 외식한다. 성경을 아는 지식이 있고 양심이 있고 상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고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외식으로 나타난다. 다른 것은 다 놔두고라도 자기 양심에서 육신의 지나친 욕망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음성이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주님을 대적하고 성령을 거스른 유대인들의 행동의 근원은 외식이다. 외식은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다. 왜 자기를 포장하는가? 자기를 높여서 영광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서 외식과 꾸밈과 포장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대적하게 만든 외식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나서 진정한 영광이 없어진 인간이 거짓으로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 의가 없는 자가 억지로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은혜와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고 좋지 않은 마음이다. 이 외식하는 마음은 본인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즉 사람으로 이중적이고 잘못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다. 위선자는 은연중에 위선을 전파하며 가르친다. 외식은 하나의 삶의 방법이요 형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짓말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잘못이 아니고 하나의 잘못된 삶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단지 어떤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일관된 하나의 삶의 형태요 방법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늘 그렇게 거짓말하게 되어 있다.

외식하는 자는 바로 이러한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며 사람이 그렇게 살 수도 있다는 안심을 준다. 이것이 바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아서 자기도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힘들게 교인을 얻어서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외식하는 거짓 선생들이 사람들을 속인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을 영과 육신으로 분리하여 생각하게 한 것이다. 사람은 영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영은 영대로 살고 육신은 육신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길을 두 갈래로 나누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사람이 육신대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영과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은 육신과 영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육신(몸)을 지닌 영이다. 즉 사람은 단지 영이다. 그렇지 않다면 육신(육)일 뿐이다. 사람은 영이든 육신이든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면 영이고 그렇지 않으면 육신이다. 사람들이 인간은 영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철학과 사상일 뿐이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깃든 육신을 일컬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영이다. 사람은 영적 존재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이 빠져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 되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의 변화를 타락이라고 한다. 타락은 사실 사람이 조금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위를 아주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육체(육신)가 되었다는 것은 곧 사람이 사람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하나의 동물, 하나의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므로 어떤 피조물을 영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아는 존재라는 뜻이다.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과 천사밖에 없다. 그런데 천사는 몸(육신)을 안 가진 영이고 사람은 몸을 가진 영이다. 천사뿐 아니라 사람도 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두 성분으로 나누어 육신은 육신대로 맞추어줄 수밖에 없고 영은 영대로 맞추어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육신이라는 것이 따로 있고 그것의 욕망과 요구가 절대적이어서 반드시 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고 마귀의 거짓말이다. 육신은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정상이다. 그것이 사람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만 정상이고 온전한 사람이다. 영의 인도를 받지 않고 속에서 육신의 동물적 욕구대로 끌려 다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의 종인 새 피조물이요 하나님이 짓지 아니한 괴물이다.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을까? 돈보다 하나님이 귀하다는 것이나 자기를 높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그들은 세상의 도덕 윤리, 상식도 몰랐으며 성경의 가르침과 정신과 원리를 몰랐을까? 물론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삶과 육신의 욕망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들었다.

그들은 육신의 욕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극단적인 두 생각을 가졌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이 (영적 욕망에 반하는) 그릇된 것이므로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은 금욕과 고행을 추구했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은 사람이 동물(육신-타락하여 영의 지배보다는 동물적인 욕구에 더 끌리는 처지에 놓임)인 이상 그것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선을 정하여 (도덕이나 윤리에 어느 정도 어긋나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육신의 욕망이 워낙 강해서 어쩔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돈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돈이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음으로 양으로 그것을 중시하며 추구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끼리는 묵시적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그런 방식으로 행했다. 사두개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

이에 비해 바리새인들은 금욕적인 방법으로 육신을 쳐서 경건을 이루고자 하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결국은 사두개인들과 마찬가지로 돈과 권력을 추구했다. 차이가 있다면 공개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음으로 한다는 것이 바로 외식하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돈이 최고야 여자가 최고야 권력과 명예가 최고야 한다면 외식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세속적인 것이요 원색적으로 더러운 것이다.

물론 세속을 추구하는 사람도 외식한다. 금욕을 추구하는 사람만 외식하는 것이 아니라 원색적으로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도 외식한다는 말이다. 금욕을 추구하는 사람이 외식하는 것은 육신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속화를 추구하는 사람 곧 원색적으로 정욕대로 행하는 사람은 왜 외식하는가? 양심과 다른 사람의 눈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과 타협을 하게 되어 마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외식의 위험성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이중적이고 외식적인 사람 곧 세상과 경건을 동시에 추구하는 거짓 종교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외식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기를 경건으로 포장하여 스스로를 기만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어려움에 빠뜨린다는 데 있다. 회칠한 무덤, 평토장한 무덤은 사람들을 속여서 부지중에 그것에 접촉케 함으로써 그들을 부정케 만든다.

인간을 양면으로 생각하게 하여 육신은 육신대로 행하고 영은 영대로 행하게끔 가르친다면 그것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능히 섬길 수 있다고 하셨으며 실제로 일어나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게 만든다면, 몸은 결국 육신의 욕망과 성질대로 살 수밖에 없으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마귀의 거짓말을 취하는 것이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려고(제어하려고) 하지 않고 육신대로 사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그 결과는 외식에 빠지는 길뿐이다. 이런 사람들 안에서는 아무 변화도 진보도 없다. 항상 혈기대로 행하고 감정대로 행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그리고 자기는 안 그런 척 한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2:1,17-24)

우리는 우리 생명이 어디서 난 생명이며 어떤 생명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더 이상 육신의 지배를 받을 자가 아니다. 영으로 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아야 한다. 육신대로 살면 죽는다. 육신대로 사는 것을 허용하면 사람은 외식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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