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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에는 화 있는 자들 곧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여덟(일곱) 번에 걸친 주님의 책망(저주)이 나온다. 마태복음 5장에는 복 있는 자들에 대한 여덟 번의 언급이 나오는 데 여기 있는 것은 그것과 정 반대되는 내용이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은 주 예수님 자신과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 마태복음 23장에 나오는 화 있는 사람은 주님을 거역하며 외식하는 유대 종교인들을 가리킨다.

주님의 책망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 첫 번째 책망의 내용은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라는 것이다.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추구한다는 자들이 천국 문을 닫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주님의 두 번째 책망 가운데서 나타나 있다. 두 번째 책망은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라는 것이다.

이 첫 번째 책망과 두 번째 책망은 주님을 거절함으로써 성령을 거스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종교적 열심과 그것의 허무한 결과에 대한 지적이다.
주님은 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가? 그들이 사실은 천국(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의 의, 그의 약속)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가장(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천국으로 부르는 것처럼 해 놓고는 사실은 가장 교묘하고 가증한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부르기는 예루살렘으로 불렀는데 그들이 있는 자리를 보니 바벨론이었다는 것이며 천국으로 부르는 것 같았는데 사실은 지옥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제일 먼저 지적하신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악은 천국을 전하러 온 주님을 거절함으로써 자기도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다. 그들은 주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와서 회개를 촉구했던 세례 요한의 경고(회개의 洗禮)도 거절했고 주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증거한 것도 거절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이스라엘과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정면으로 훼방했다.

이것은 곧 성령을 거스른 것이며 하나님의 오랜 약속의 성취를 방해한 것이다. 주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있었다고 지적하신 것은 특히 그들이 진리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여 꼭 쥐고서는 그것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써 마땅히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과 약속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치고 전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그들의 거짓된 생각과 탐욕을 백성들에게 퍼뜨렸다. 그들은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과 아울러 그들의 위선적이고 거짓된 삶을 통해 사람들을 진리에서 떠나 실족케 했다. 주님은 이러한 죄가 하나님 앞에서 매우 크다고 지적하셨다.

이천 년의 교회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 때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수많은 외식적인 종교인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들이 자기의 의무를 저버리고 도리어 진리 안에서 행하려는 진실한 성도들을 괴롭히고 방해한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이 외식적인 종교인들로 인해 이단이나 교회를 해치는 자로 몰려 배척 당하고 투옥되고 죽임을 당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교황을 비롯한 많은 외식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진리에 대한 모든 통로를 닫아놓고 오직 자기들의 거짓 가르침만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파함으로써 그 시대의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우맹(愚氓)으로 만들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중세 때만의 일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천주교나 이단들이나 생명 없는 여러 종교 단체들은 오늘날에도 이처럼 사람들을 성령(생명)의 방법이 아닌 거짓된 인간적 방법을 통해 교육하고 세뇌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종교인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종교적 인간으로 개조된 사람들은 나중에 아무리 진리로 바로 잡으려 해도 그것이 잘 안된다. 한 번 종교화 된 사람들은 좀처럼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어떤 종파에 속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어떤 형식, 어떤 교리를 취하는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음으로써 속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변화가 되느냐 하는 데 있다. 주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유대교로 개종된 이방인들이나 오늘날 생명 없는 인도자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된 많은 이방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영접했다고 하지만 실은 삶의 모양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자기를 놓지 않고 있으며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행동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그 사람 자신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그들을 불러 가르친 사람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가장 참담한 것은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하는 사람이 그들의 본래의 죄에다 바리새인의 죄(외식)까지 보태져서 전보다 더 흉악한 지옥 자식이 되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성경 전체 기록을 종합해 보면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탐욕과 외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책망을 하신 것이 분명하다. "너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을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14절, 눅20:47참조) 이 내용은 어떤 사본에는 들어 있지만 다른 사본에는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후대의 성경 필사자들이 가필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기록되었든 안 되었든 내용 자체는 사실이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율법을 안다고 하면서도 율법의 최고 정신인 '형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율법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형제 사랑은 없고 오직 제사와 기도와 금식 같은 외적 형식들만 붙잡고 있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일이다. 말씀을 맡은 자(롬2장, 3:2)는 곧 하나님을 나타낼 자이다. 그런 자들이 말씀의 정신을 거스려 행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가장 오해를 받게 하는 일이요 세상과 마귀로부터 멸시를 받게 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런 자는 가장 크게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네 번째 화}는 하나님 자신보다도 하나님과 관련된 물건이나 일을 더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지라" 그들은 성전보다 성전의 금을 더 권위 있고 가치 있게 여겼으며 제단보다 제단 위의 예물(祭物)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肉은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서 얻는 이익과 재미를 사랑하려고 하며 주님을 나타내기보다는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서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려고 한다. 육적 신자들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주님 자신이 동기가 되고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주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거기에다 무엇인가를 덧붙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자기를 덧붙이며 자기 이익과 자기 영광을 덧붙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주님의 이름' 곧 주님 자신이다.(계3:9,12, 요14:13) 주님의 이름은 주님의 인격과 생명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그의 가르침과 삶, 그가 이루신 역사들보다 우선하며 우위에 있다. 주님의 모든 가르침과 일들은 다 이 주님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의 인격과 생명은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주님의 사업'이나 '주님의 능력'이나 '주님의 가르침'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물며 주님과 관련된 사업에서 나오는 부수적 영광이나 이익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주님이 언급하신 성전의 금이나 제단 위의 제물은 바로 이런 부수적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다.

참 생명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필요와 가치를 알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주님 자신을 원한다. 그러나 생명 없는 자들 곧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면서도 그리스도는 보지 못하고 자기의 육적 필요와 세상 영광에만 주의한다. 예컨대 교회를 추구할 때도 그냥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무슨 무슨 대교단에 속한, 어떤 건물을 가진, 유력한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얼마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대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또 죽은 자들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안식하고 형제들의 사랑 가운데서 안식하는 것보다 육적 필요를 이룰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받기를 더 간절히 원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바로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성전보다 성전의 금을, 제단보다 예물을 원하는지 모른다. 주님보다는 교회를, 교회보다는 교인을, 교인보다는 교인의 돈을 더 원하며 거기에 더 관심이 많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은 그때나 오늘날에나 변함없이 사람들을 곁길로 인도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이 교정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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