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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즉 유다의 수도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공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요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신앙 중심지)가 된 것은 다윗 때였다. 그전에 이스라엘의 수도는 실로, 길갈 등이었다. 예루살렘은 본래 가나안 정복 때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이었으나 그곳이 산지인데다가 그곳 원주민인 여부스 사람들이 견고한 성을 쌓고 강력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실제적으로는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 여부스 사람들의 땅이었다. 그런 곳을 다윗이 점령하여 성막과 언약궤를 안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치 신앙 중심지로 만들었다. 나중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다.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한 모리아 땅과 같은 곳으로 간주되고 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기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하나님께 기꺼이 바치려 했고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그가 예비하신 또 다른 한 생명 곧 어린 양으로 상징된 자기 아들을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믿음과 순종, 헌신과 구원을 상징하는 장소인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형이 험악하고 저항이 강해서 오랫동안 뺏지 못하고 있던 그 땅을 기어이 점령하려고 한 이유, 그리고 성막과 언약궤를 거기에 두려 한 이유, 그리고 솔로몬이 그 자리에 성전을 지으려 한 것은 다 그 땅이 이런 기념비적인 헌신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루살렘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파송하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장소 곧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곳으로 변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앙의 중심지였지만 겉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려 왔으며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수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바로 여기 예루살렘에서 죽거나 핍박을 당했다.(대하24:21-22, 렘37:15-16, 마21:38-39) 이곳은 외식하는 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가 생명을 잃고 종교화되고 화석(化石)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대적한 것은 겉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며 선지자를 존중히 여겼지만 속으로는 그 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어떻게 겉으로는 선지자를 존중하면서 실제로는 거절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은 이것이다. 지나간 선지자들 곧 이미 죽고 현재는 없는 선지자들은 공경하고 현재 살아서 활동하는 선지자들은 거절하는 것이다. 현재 자기들에게 아무 간섭도 영향도 미치지 않는 과거의 선지자들은 공경하고 추모하지만 지금 살아서 자기들을 가르치고 책망하는 선지자들은 이단이나 거짓 선지자로 몰아서 거절하고 박해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식 선지자 대우법이다. 모든 선지자를 다 거절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옹호하고 인정하는 선지자들은 우대하고) 오직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선지자들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실 수 있는 구조는 거절하고 오직 자기들이 하나님께 다가가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구조를 원했다. 성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고 오직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식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선지자는 어떤가? 성전과 반대이다. 선지자는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활동을 구경하는 자가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나타내는 자요 하나님의 활동(액션)을 펼치는 자이다.

그래서 성전과 제사와 율법 준수를 비롯한, 종교에 속한 모든 것들은 육체의 영광을 추구하고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자들의 사랑을 받고, 반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며 진리 안에 있기를 원하고 하늘의 생명을 누리고 싶어하는 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선지자를 필요로 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필요로 하고 하나님과 그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어느 쪽이었는가? 예루살렘은 성전을 꾸미고 지나간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비석을 꾸몄지만 현재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통로인 주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죽이는 쪽이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육체를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세상에 보내신 실질적 목적은 그들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곧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빛을 추구하는 자들을 구별하여 모으기 위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9-2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39-44)


주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성전과 예루살렘을 가리켜 '내 집'이라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 집'이라고 일컬으시며 그것이 마침내 완전히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나 껍데기를 보시지 않고 오직 그 생명과 실제를 보신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하나님과 무관한 곳이었다.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성전과 하나님을 거절하는 하나님의 도성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주님은 암탉이 새끼를 그 날개 아래로 모으는 것같이 이 도성의 사람들을 돌이켜 구원하시려고 여러 가지로 힘을 쓰셨다. 그러나 그들의 완고하고 교만한 마음 속에 더 이상 생명이 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보시고 그들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되는 것은 반드시 그 건물이 주님을 거절한 유대교의 상징물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돌로 만든 성전이 없어져야 할 진정한 이유는 그것의 실체인 참 성전(그리스도)이 왔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지만 영원하고 참된 하늘의 성전 자체는 아니며 오직 장차 올 참 성전의 그림자와 모형일 따름이었다. 땅에 있는 성전의 실제는 하늘의 성전이며 하늘의 성전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다.(히 9:23,24, 요 2:21, 4:20-26)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셨고 또 그 자신과 그의 몸인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게 된 이상 돌로 지은 성전은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계 21:22)

유대인들은 죽은 것, 지나간 것,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예루살렘 성전과 구약 종교)을 붙잡다가 산 것, 새롭고 완전한 것, 참 것(주님과 그의 교회)을 놓쳤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A.D. 70년 로마의 장군 디도(Titus)에 의하여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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