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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나님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을 그들의 불신앙과 거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품으려고 애를 쓰셨다. 주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그 사역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타내셨다. 그는 제자들을 천국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내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5-8)"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을 챙기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자기 땅에)에 보내신 것 자체가 암탉이 새끼를 품으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하나님은 당신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셨는가? 그렇다. 물론 대부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끝내 거절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패하신 것이 아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9-13)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역의 열매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것이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롬9:27-29)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 무위로 끝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6-29)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다가 나빴다 하면서 변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기 일을 하셨다. 그들이 멀어 있을 때도 하나님은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이기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을 때도 하나님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계셨으며 사람들을 향해 팔을 벌리고 계셨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외형은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의 태도 곧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시각과 일하시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 따라 사람들을 돌보고 교회를 돌보고 하나님의 일들을 대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것들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 그런 것들이 우리 눈에 시원치 않고 온전치 않다고 해서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거절하거나 버리거나 소망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간주하셨고 그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알고 끝까지 용납하며 사랑하시며 챙기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에 대한 마태복음 23장의 책망은 그동안 하나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참고 사랑으로 품으시며 회복시키려고 애를 쓰셨는가 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주님은 참으로 그들을 건지려고 애를 쓰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무시하고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며 그들을 거두려고 하셨다. 그 결과 베드로와 요한과 바울을 비롯한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고 그들로 인해 온 세상이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려고 하는 것처럼 주님이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애쓰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이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품음으로써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과 수고가 없이 저절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 아니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언제나 우리의 이상과 별로 일치하지 않으며 그 겉과 속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아니, 교회가 아름답고 영광스럽지 않다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그런 존재이며 우리 자신이 그렇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하다. 그러나 어쨌든 아름답고 향기롭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그다지 애정과 소망과 기대를 가지지 않게 된다.

교회의 실상은 서글프고 초라하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지 어떻게 아는가? 다 조사해 보고 관찰해 보았는가? 사실 힘들게 살피고 연구 분석할 것도 없이 그저 눈을 들어 휙 한 번 살피기만 해도 우리 주변의 교회들과 신자들의 실상이 형편없다는 것은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그 교회들의 구성원인 신자들 자신들이 스스로 탄식하며 자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런 교회 밖에 있으며 그들보다 좀 더 진보된 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그들에 대해 모으고 회복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일에 익숙하기 쉽다.

그러나 비난과 비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죄인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는 사람, 곧 하나님과 거리가 먼 죄인들 안에서 사역하는 것이 괴롭고 내키지 않지만 그들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나라와 그 의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 안에서 모으고 회복하려고 수고하는 사람에게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둘째, 표면적인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사람 즉 실제는 하나님과 무관한데 이름만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들로 인해 혼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껍데기만 하나님의 것인 거짓 신자와 거짓 하나님의 일들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품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발걸음을 사마리아와 다른 이방 땅으로 옮기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끝내 그리스도를 거절했지만 이방인이나 다를 바 없는 사마리아인들은 다수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2-1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4:39-42)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는 방식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님은 한 번 방향을 정하면 뒤로 물러가는 법이 없고 오직 계속 앞으로만 진행하시는 분이다.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겔1:12)

사람에게만 일이 있고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하나님대로의 일이 있고 계획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중요하며 급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사람이 따라오면 좋지만 끝내 따라오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취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게 하신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에스더 4:14)

지나간 것들 곧 하나님께서 더 이상 쓰시지 않고 버리신 것들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답답한 사람들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하나님의 현재적 임재의 자리를 찾아서 그 길에 서 있는 것이다. 묵은 일과 묵은 형식, 묵은 사람, 묵은 장소를 붙들고 있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하나님의 성령께서 현재 역사하고 있는 새 일과 새 형식, 새 사람, 새 장소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끝까지 한국교회들에 대해 그리고 그 신자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형제들을 대하여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사랑하며 모으기를 힘쓰는 것은 사람 자체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때문이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15:35,16:1)

하나님이 지금 어디서 일하고 계시며 성령께서 어디로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우리는 항상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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