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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충성되고 지혜로운 종 (24:45-51)

이 비유는 달란트 비유와 매우 유사하다. 성도는 주님의 집을 맡아 있는 청지기와 같다. 청지기가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며 집을 돌본다는 것은 곧 성도가 주님이 오시기까지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며 자기의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의 형제들을 섬김으로써 주님의 몸이요 집인 교회를 건축하고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집 맡은 자가 갖추어야 할 2대 요건은 충성과 지혜이다. 지혜는 사리를 올바로 판단하며 맡은 일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에 좌우되지만 일 맡은 자의 마음 자세와도 관련이 있다. 충성된 자는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충성이다. 충성이란 주인이 보든 안 보든 주인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인해 언제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거나 주님이 일에 대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책망(징계)하시지 않더라도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곁에 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일을 하는 자이다. 반대로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거나 또는 주님이 즉각적으로 불성실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자로 여김 받게 될 것이다.

어리석고 악한 종은 언제나 평소에는 실컷 놀다가 주인이 올 때쯤 미뤄 놓았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여 주인의 회계를 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주인은 언제나 종이 예상치 못했던 불시에 나타나서 종과 회계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평소에 충성되지 못한 어떤 자가 주님의 오심을 요령껏 대비하여 겉으로는 경건하고 열심 있는 신자인 것처럼 꾸민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과 생각(인격)을 살피시는 주님을 속이지는 못하며 결국 위선자로 판정을 받아 버림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 참으로 복된 자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님이 언제 오셔서 보시더라도 칭찬하실 수 있도록 늘 깨어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는 자이다. 그런 자에게는 위기의 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상관없다. 지금 주님과 동행하며 주의 나라와 일에 동참하는 것을 영광과 복으로 알고 행하는 자만이 주님의 오심이 늦어지더라도 개의치 않고 마지막까지 자기 일을 충성되이 하다가 주님을 기쁨 중에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마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은 주님의 생애 중 마지막으로 하신 講話가 되는데 이것은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셔서 신자들을 심판하실 때 있게 될 상황을 비유로 묘사한 것이다.  

2.열 처녀의 비유 (25:1-13)

팔레스틴 지역의 결혼 예식은 오늘날의 서구형 결혼식과는 모양과 달리 저녁에 치러졌다. 여기에 나오는 처녀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parthenos) 역할을 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신부집에서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랑 일행들을 기다렸다가 그들을 영접하여 혼인 잔치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역사상 주님을 안다 하는 모든 자들(소위 신자들)을 신랑을 기다리는 열 명의 처녀로 비유했다. 여기서 신랑은 주님이고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와 성도가 연합하는 천국 잔치이다.

이 비유는 앞의 비유들(24:37-44, 24:45-51)의 연장선상에 있는 비유이므로 그 교훈은 앞의 비유들의 교훈과 마찬가지이다. 곧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기대보다 늦게 오실 수 있음을 예고하셨다. 신랑이 올 때 처녀들이 다 졸며 잤다는 말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주님이 오시기 전에도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늦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더 이상 긴장한 채로 깨어 있지 못하고 일상적이고 느슨한 상태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슬기로운 처녀로 비유된 참 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는 다 같이 신랑을 기다렸으며 다 같이 등불과 기름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 같이 신랑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졸며 잤다. 그런데 어째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나머지 다섯은 들어가지 못했는가? 그 차이는 하나 뿐이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올 것’을 준비했느냐 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신랑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오든지 신랑을 맞이하는데 어려움을 당치 않도록 기름을 넉넉히 준비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참 신자들과 거짓되고 어리석은 신자들 간의 차이도 이 한 가지뿐이다. 참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고 주님이 미처 생각지 못한 때에 불시에 오신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평소에 그 삶과 인격을 성령 안에서 신실하게 준비한다. 그들은 외적으로 특별히 경건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연단을 받아서 그 인격과 믿음이 견고하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국이 완성되기 전에도 이미 천국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들은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없이 언제나 주님이 받으실 수 있는 삶과 인격을 갖추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항상 등불을 밝힐 수 있는 넉넉한 기름 준비이다.

그러나 거짓 신자들 곧 주님의 생명을 실제로 누림이 없이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불성실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 인격과 믿음이 천박하다. 이들은 얼른 보면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마음을 품고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모하며, 더디 오는 주님과 천국보다는 세상 삶과 영광에 더 마음을 두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주님의 관심사에 자기 마음을 맞추려 하지 않고 언제나 자기의 관심사에 주님을 맞추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주님을 맞이할 신부로서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가 건축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에서의 자기 삶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만족스럽게 되기만 바란다. 결국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신자들이 실제로 주님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모하며 그의 나라를 기다린다면 참되고 거룩한 교회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도록 힘써야 한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주님을 대망한다는 많은 신자들과 교회들이 이러한 주님의 관심사에는 전혀 마음을 두지 않고 단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주고 축복해주기만 바라고 있다. 교회들이 타락하여 엉망이 되고 신자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전혀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지 않아도, 또 그로 인해 세상에서 주님이 욕을 먹어도 그들은 그것을 심상하게 여긴다. 그러면서 언제나 말하기를 ‘지상교회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혹은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한다. 모든 것을 자기 관점에서 사람의 관점에서 볼 뿐 주님의 관점에서 보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 잘되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언제나 아무 일도 없으며 진실한 성도들이 깨어 근신하며 탄식하는 것을 괜히 난리를 피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많은 신자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이유는 주님이 자기를 위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속히 이루어주시지 않으면 주님을 원망하며 믿음과 소망의 필요성을 잃고 만다. 이들은 조그마한 어려움과 환난이 닥쳐와도 흔들리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거나 큰 인내가 필요한 환난의 때를 만나면 주님을 떠나거나 주님께 합당한 거룩한 성도의 삶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가버리고 만다.

문제는 신자들이 아예 등불도 준비하지 않고 기름을 채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분하게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말로 주님을 만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주님을 만날 마음이 있고 주님께 마음이 있고 거기에만 소망이 있다면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기어이 맞고야 말겠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예 (일상적) 삶의 구조를 주님 중심으로 굳힐 것이다.
다 교회에 다니며 다 신앙 생활을 하며 다 재림하실 주님과 천국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넘어서 주님만을 사모하고 기어코 주님을 만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겠다는 열망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 이것이 주님이 오실 때의 상황이다.

신랑이 아무리 더디 온다 할지라도 그 날 밤이 다 가기 전에는 온다. 그러므로 처녀들이 기름을 아무리 많이 준비해야 하더라도 아침 전까지 쓸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이면 된다. 신랑을 꼭 맞이할 마음이 있는 자라면 2시간이나 3시간 분량의 기름만 준비하지 않고 만일을 대비해서 10시간 정도의 기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무한정의 인내와 사람이 할 수 없는 특별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은 언젠가는 오실 것이며 또 그 사이에 유지해야 할 긴장과 인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종말 준비는 특별한 행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서 그 생명을 깊이 누리며 그 인격을 닮아감으로써만 된다. 주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저절로 재림에 대비가 되는 것이다. 주님은 특별한 행동을 하거나 특별한 무엇을 갖춘 사람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같은 생명, 주님과 같은 인격을 지닌 사람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이 일은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는 것도 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성령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하고 영광스런 교회가 되는 것도 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느냐 하는데 있으며 정말로 주님을 맞이할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정말로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는 결국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스스로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성령께 맡기고 철저히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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