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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새해 첫 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와 형제들의 삶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랄 것은 그것뿐이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복 주심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으며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새해 첫 날인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되새기고 자랑하며 찬송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은혜는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고 그로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상 다른 은혜들을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있고 복음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부수적이고 잡다한 은혜만 누릴 뿐 그리스도라는 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자기를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깊이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라는 이 최고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 필요하다. 오늘 새해 첫 날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특별한 은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다.(마19:16) 이 기사는 누가복음 18장과 마가복음 10장에도 나온다.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눅18:18-23)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라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17-22)

이 내용을 종합해 보면 주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젊은 청년이요 재물이 많은 부자요 또 관원이었다. 그는 참으로 종합적인 부자임이 틀림없다. 그는 젊음과 건강과 재물과 권력과 선한 삶(율법을 잘 지킴)을 다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 청년이 주님께 와서 영생의 길을 물은 것은 그가 영생에 관심이 있고 또한 주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며 존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율법 선생처럼 전적으로 주님을 시험하거나 자기를 의롭게 보이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몰라서 물었을 수도 있고 자기가 생각하고 추구한 것이 옳은지를 확증하기 위해서 물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주님께 영생의 길을 물었다.

이때 주님은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는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는 이 말은 무슨 말인가? 그 의미는, 만일 사람이 선을 행하여 영생 얻기를 원한다면 사람에게 그 기준을 물을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내신 분이신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선을 행하려면 사람의 기준에 따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선한 일을 해서 천국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는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상대하여 그의 뜻을 알아야 하며 그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선한 사람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과 상대해서 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한 분밖에는 참으로 선한 자가 없기 때문에 선을 논하자면 하나님과 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주 예수님이 선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길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행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키는 수준이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 순종할 수 있어야 선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주님의 답변은 이것이다. "네가 너의 선한 것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모양인데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람들에게 물어서 선하다는 인정을 받을 정도의 선(善) 가지고는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선하다고 인정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자신 있게 자기가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심으로써 그가 결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 주셨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의 온전치 않음은 어디서 드러났는가? 그가 부자로 있다는 사실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자신의 말대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완전하게 행했다면 그는 벌써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자로 남아 있는 것이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라고 해서 다 온전치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그가 이러한 주님의 요청에 결국 부응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주님이 그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고 결국 고민하고 근심하다가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는 자기 실제와 자기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구든지 선행이나 자기 의로 구원을 얻거나 천국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자기 목숨은커녕 돈 하나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한다. 부자는 돈을, 박사는 그 지식을, 권세자는 그 권력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면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얼마든지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은 그가 그것을 자기 생명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그는 그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주님의 요청 이전에 벌써 다른 사람들의 요청과 마음의 부담으로 인해 돈을 많이 풀어헤쳤을 것이다.

사람은 돈이든 건강이든 권력이든 선행이든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며 의지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기 영광이요 자기 인생의 상급이요 분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조금 가지면 안되고 많이 가져야 한다. 그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그것을 굳게 붙잡는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은 천국을 얻기 위해 자기에게 있는 장애물을 버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야 버릴 것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만 많이 가진 자 곧 육체를 자랑할 만하고 육체를 신뢰할 만한 사람은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내려놓기 어렵다. 육체의 영광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를 신뢰하며 자기의 소유물로 자기 생명과 영광을 삼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한 첫째 조건은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신 것은 공연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부유한 자가 억지로 가난하게 내려가라는 말이 아니라 다만 자기 자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기 위한 첫째 조건, 영적 삶의 승리를 위한 첫째 조건은 바로 이와 같이 자기를 아는 것이다. 자기의 할 수 없음, 자기의 죄인 됨, 육신의 연약함과 사망을 아는 것이 은혜를 누리기 위한 첫째 조건이요 그 자체가 은혜 중의 은혜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으며 자기를 낮추고 비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주목하며 의지하게 된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이 이 부자 청년에게 이 말씀을 던지신 것은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은혜(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소화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악한 자가 아니요 불성실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부자일 뿐 아니라 관원이요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실하게 행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가 주님께 영생의 길을 물었을 때 그는 정말로 그 문제에 대해 물은 것이다. 그는 진지하게 길을 물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만일 전에 그의 부와 권력과 젊음과 성실함과 선행으로 행복했고 만족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다면 그는 영생에 대해 다시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에게 영생의 길은 하나님께 물어야 하며 하나님은 이미 그 길을 알려주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셨다. 실제로 그렇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에게 '그대로 행하면 생명을 얻는'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레18:5)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겔20:11) 이 말씀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주심으로써 사람에게 생명을 누릴 길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생명의 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당신의 말씀(진리)대로 살 때 생명을 얻도록 미리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생명의 길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예를 몇 가지 열거하셨는데 그것은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들이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기에 마태복음 19장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더 있다.  

이런 길이 이미 제시되었다. 문제는 사람이 이것을 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가? 이것을 사람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행할 수 없다. 사람은 육신의 속성상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본성상 간음하지 않을 수 없고 살인하지 않을 수 없고 도둑질하지 않을 수 없고 거짓 증거하지 않을 수 없고 부모를 거역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어째서 그런가? 많은 사람이 십계명에서 말하는 그런 내용대로 살고 있고 또 여기 이 부자 청년도 자기가 그것을 다 지켰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라. 가슴 설레게 하는 환상적인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한 번 안아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청년이 있겠는가? 만일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탓하지 않고 당사자도 좋다 한다면 그는 그 앞에 있는 여인이 남의 부인이라도 할지라도 한 번 끌어안아 보려고 할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님은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하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생각만 해도 그것은 간음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화가 나고 마음에 안 들 때 그를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주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하셨다. 또 눈 앞에 큰 돈 다발이 떨어져 있다고 하자. 그리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자. 그것을 줍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은 분명히 누군가가 떨어뜨려 놓은 것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그것을 줍느냐 안 줍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다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육신이 쾌락을 좋아하고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또 육신에게는 강한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것을 가르치기까지 하더라도 몸은 반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젊은 부자 관원은 영생의 길로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 부족함이 없으며 다른 조건들이 있다면 그것도 기꺼이 만족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온전치 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착각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한 가지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 곧 여전히 한 가지 부족한 그것을 내놓으실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 온전케 되기를 추구한다면 하나님은 계속 우리 앞에 여전히 부족한 한 가지를 내놓으실 것이다.

여러분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정욕을 절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하여 그것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월이 지나 그가 정욕과 돈의 관문을 다 통과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가 늦잠 자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가 정욕과 돈과 늦잠 자는 습관을 다 처리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내놓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급한 성질과 화를 잘 내는 것을 드러내실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 괜찮은데 수다스럽고 말이 많으며 어떤 사람은 다 괜찮은데 군것질을 좋아하거나 오락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다 되었다고 생각할 그 때에 우리는 항상 우리 안에 있는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것은 더 큰 은혜를 위한 예비 은혜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로 아무리 해도 여전히 부족한 한 가지를 드러내신다. 그때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근심하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주여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오직 당신의 은혜를 바랄 따름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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