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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의 복됨 (마20:29-34) / 2006. 2. 12

2010.04.30 15:43

이상봉 조회 수:3539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마20:29-34)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받아주실 줄 믿고 나아가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여리고 근처에 살던 이 두 소경은 주님께 나아갈 때 바로 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주님께 나아갔다가 즉각 구원을 얻었다. 그들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부터 주님의 소문을 듣고 주님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마침 주님이 근처에 왔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소리질러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눈을 뜨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서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은 첫째, 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단순하게 받아들일 만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기의 구하는 것을 주님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났을 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자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전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8:2,3)

이것은 단순한 마음이며 참된 믿음이다. 이것은 복 있는 마음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자연적인 일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손에 닿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고 마음이 불안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하물며 이적을 구하면서도 그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큰 신뢰의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이 그 마음 문을 여신 복 있는 마음이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전부 누린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눈을 뜨는 것은 영혼의 눈을 뜨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며 영생이신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는가? 출발이 좋은 사람이 결국 종점까지 잘 달린다. 그들의 열린 마음 그리고 단순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복 있는 마음이다.

둘째, 그들이 소경이고 가난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또한 복이다. 그들은 어째서 주님을 그렇게 남달리 강력하게 열망하며 영접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남달리 가난하고 빈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으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한 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복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가난한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2-24) 고기 먹어 배부른 사람에게 보리떡을 먹이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아무리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오직 배고픈 사람에게 달고 귀하지 배부른 사람에게는 다 관심 밖의 것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이 소경들처럼 예수를 추구한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 이 소경들처럼 예수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요 누구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누렸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다른 이유도 아니고 바로 그러한 사유 곧 누구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그 사유로 인해 주님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주님의 구원을 누리지 못했다. 이것은 사람의 부와 교만의 내용이 반드시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을 부유하고 높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다 위험한 부(富)이다.

오직 이 소경들처럼 그 인생에 있어서 달리 소망할 것이 없고 달리 의지할 것이 없는 지극히 가난한 자리만이 사람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들어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 가난과 곤고함은 진실로 복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난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것이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높고 교만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있거나 다른 데서 소망을 찾고 있다면 주님의 구원을 목매어 구하지 않을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로 하나님의 징계로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 인해 극히 곤고하고 가난한 자리에 처했지만 그들의 심령은 가난하게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리와 가난한 심령 두 가지가 다 중요하다.

열 명의 문둥이가 주님의 고침을 받았지만 그 중에 주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표시한 문둥이는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7-19) 같은 문둥이라도 이스라엘 문둥이하고 사마리아 문둥이가 달랐다. 사마리아인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자들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이 높았기 때문이다. 은혜는 아무튼 낮은 자리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곤고한 것도 복인 줄 알아야 한다. 그 가난한 자리 자체야 복이 아니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복을 접할 때 그것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그 자리는 복의 예비 또는 후보(候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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