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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1-20까지의 주님의 말씀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유대인들이 어떻게 사탄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더러운 것을 어떻게 깨끗하게 포장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더러워졌으며 어떻게 깨끗해 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더러워지고 깨끗해지는 것은 위생 문제(손을 씻지 않는 것)나 의식 문제(거룩한 의식을 이행하지 않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의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며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마귀의 거짓말이 있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손이 더럽고 음식이 더러워서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 곧 그 말과 생각이 더러움으로써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10-15)
이것이 사람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더러운 것이다. 더러운 환경으로 인해 사람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생명이 더럽기 때문에 밖으로 그 더러움이 이런 저런 계기를 타서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이다. 속이 더러우므로 밖도 더럽게 되는 것이며 내 더러운 것이 남도 더럽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더러운 것이 어떻게 전파되고 확산되는가? 우리가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악한 말과 행동을 밖으로 드러내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 자신이 더러운 사람이 될 뿐 아니라 그러한 내 악함과 더러움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악영향을 미침으로써 이 더러움이 안에서 밖으로 확산되고 보편화되는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들에 대해 하나님을 입술로는 존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다고 하셨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에게 관심이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받들 뿐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없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도 몰랐다.

속을 깨끗케 하지 못하고 겉만 깨끗케 하려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39-44)

유대인들이 주님을 믿지 못한 것은 주님께 소위 '사람의 영광' 곧 육신적 영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이었다. 스스로 높다 하고 스스로 존귀하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들처럼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추구하기 때문에 외식하고 또한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다. 육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히 사람을 외모로 밖에 판단할 수 없고 속보다 겉을 깨끗하게 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영이 다시 살고 그 영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죽을 몸도 살리심을 입고 그로 인해 최후에 만물(환경)이 다시 사는 것이다.(롬8:9-23 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성령 안에서 우리 영이 다시 살고 활력을 얻는 것이다. 즉 말씀 안에서 영적 생명을 얻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로 가지 않고 거꾸로 가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육신의 영광을 도모하는 자는 육신의 영광도 영의 생명도 얻지 못하고 망하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진리와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얻게 될 것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5-28)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문제는 손을 씻거나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고 오직 그 속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 생각과 자기 필요대로 이해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은 인류의 오래된 습관이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대로(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는 문자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해석을 붙여서 왜곡시키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대로가 아니라 그 속의 정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문자대로(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 채로 형식적으로) 시행해 왔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정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사람으로 안식일에 아무 일도 못하도록 묶어놓는 데만 중점을 두었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그와 반대로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나 예물로 대치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이러한 실패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왜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땜질했는가? 부모를 사랑(공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씀은 사람만큼 이해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인격과 생명만큼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거나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명의 인도를 따라 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다 죽은 의문 율법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얼마나 많이 밖의 깨끗함 즉 밖의 씻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가? 그러나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러한 외적인 씻음이나 외적인 경건이 아니라 생명의 변화와 그것을 믿음으로써 실제로 누리는 일이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씻음이다. 그의 생명을 공급받을 때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충만해질 때, 우리 안의 더러운 생각이 사라지며 우리 생명을 해치는 모든 외적 환경적 위협 또한 극복할 수 있다.

더러운 음식과 병균보다 더 씻어내어야 할 것은 더러운 사람 곧 더러운 생명과 거기서 나오는 욕과 더러운 말과 더러운 생각들, 위협들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병균을 떨쳐내기 위해 손을 씻듯이 떨쳐내어야 할 본질적 더러움이다.

이런 것들은 손을 씻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도덕 윤리 강연을 듣는 것으로 혹은 선한 마음을 품고 결심을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이것들은 마귀의 거짓말에 속은 더러운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 속의 생명이 온전케 됨으로써만 씻어질 수 있다. 교회 생활은 이러한 씻음을 추구한다. 교회 생활은 외적인 씻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우리의 속 생명을 충만케 함으로써 내적인 씻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참으로 정결을 추구했다면 그들은 반드시 생명의 온전함을 추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적인 정신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주님이 율법의 더 중한 바라고 말씀하신 의와 인과 신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본질적인 정신 즉 말씀의 알맹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것을 제쳐놓고 껍데기만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책망을 받은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죄와 세상을 미워하고 피할(씻을) 뿐 아니라 우리의 자연적 생명 즉 우리 자신의 육적 생명과 우리 자아를 미워하며 제거해야 한다. 바깥에 더러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더러움이 있음을 항상 직시해야 한다. 거룩과 정결과 승리는 자기의 죄악된 본성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깨끗해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할 수 없는 자기의 본성을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 안으로 날마다 자신을 가져갈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깨끗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씻는 것은 비우는 것이다. 그러나 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채우는 일이다. 우리는 비우기를 힘쓰기보다 채우기를 더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으로 속을 채우면 씻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이 소제되어 있던 빈집이 나중에 일곱 귀신으로 말미암아 전보다 더 더러운 상태가 되었던 것은 그 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로 채워져 있지 않고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고 그를 위하며 그 안에서 그와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비어 있는 집과 같으며 항상 허전하고 공허하여 원수가 틈 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생이다. 손을 씻는 것처럼 (바깥의) 더러운 환경을 멀리하는 것만으로 속의 공허함과 쓰레기로 채워져 있는 왜곡된 내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심으로써 우리의 속과 겉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오늘 이 말씀이 육신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말씀을 근거로 육신적 삶의 건강 비결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이 부분에 대해 중요한 암시를 주고 있으므로 건강 원리에 대해 한 말씀을 드리겠다.
그것은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몸의 건강과 위생에 신경을 쓰기보다 속(영적) 생명의 건강에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영적 건강의 지표는 온전한 믿음(영적 안식, 마음의 평안)과 거룩한(진실한) 삶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며 연장시키는 더 큰 원동력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6,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7:1)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0-23)

무엇이 건강과 생명을 가져다 주며 그것을 보장하는가? 밥과 운동과 휴식과 위생인가? 그것들은 작은 요인에 불과하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공급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생명을 주시면 우리는 산다. 하나님의 정신이 사람 속에서 사람으로 바른 길을 알게 하며 바른 삶을 살게 할 때 영혼과 육체가 다 온전하고 건강하게 된다.

더러운(해로운)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 건강을 해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술이나 몸에 해로운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이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인생이 괴롭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고 영적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육체의 욕망대로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술이나 고기나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이 문제가 아니라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그런 것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정신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는 아무리 음식과 위생을 주의하려고 해도 그것이 잘 안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게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생명을 공급하셔서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가? 그의 아들에게 그렇게 하신다. 즉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6:12-14)
바울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먹거나 안 먹거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의 몸에 생명을 공급하셔서 주님을 위해 얼마든지 몸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몸은 주를 위하고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이것이 바로 위생과 섭생과 운동에 힘쓰는 것보다 앞서는 건강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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