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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때 제자들은 사람들이 혹은 주님을 세례 요한으로 혹은 엘리야로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주님을 그렇게 안 것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주님을 그런 사람 중 하나로 본 것은 매우 좋게 본 것이다. 이스라엘의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판단은 틀렸다. 예수는 선지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요 '나타나신 하나님'이었다.

유대인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그런 생각들이 하늘(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선하고 좋은 생각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생각들 곧 계시로 말미암아 온 생각만이 옳다. 계시를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닌 모든 생각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도 없다. 땅에서 온 지식, 육에서 나온 지식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주님을 육신대로 아는 것은 표면적인 지식이지 영적 지식은 아니다. 오직 위로부터 온 계시를 가진 자만이 영에 속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영적인) 일은 신령한 것으로(영적인 사람만이) 분별하느니라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0-16)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실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다 자기 생각대로 알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생각들은 전혀 근거없이 나온 것들은 아니다. 그것들은 다 성경 지식이나 여러 사람들의 견해, 지식 있는 자의 가르침,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들 등에다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배경들은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알지 못하고 위대한 선지자들 중의 하나로 안 것이 정확하지 않은 것처럼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주님에 대해 품고 있는 그럴듯한 생각들 역시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나 오늘이나 사람들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이다. 내 자리에서 본다는 것은 내 필요와 내 경험, 내 지식 안에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사물을 본다는 것은 주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도 아니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시각을 갖는 것이다.
사람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사람은 언제나 외모를 본다. 왜냐하면 그것밖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며 영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를 보아도 눈에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속에서 가르치고 일깨우는 대로 본다. 다만 눈으로 보고 머리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서 보고 영으로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신 주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직접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으신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대답은 정확했다.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선지자나 선각자나 선생이 아니요 하나님의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 구원자,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은 아주 정확한 규정(規定)이므로 더하거나 빼서는 안된다. 주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요 아들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정확하게 주님은 그리스도이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더한다는 것은 주님을 우상처럼 신격화(神格化)하여 하늘에 올리는 것이고 덜한다는 것은 주님을 보통의 사람과 같이 여겨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그는 신성(하나님의 성품)을 가졌으므로 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인성(육신)을 가졌으므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은 그의 존재적(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의 근본적인 지위이므로 그를 신이나 인간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나 성인군자나 혁명가나 새 종교의 창시자 또는 혹세무민하는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은 다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그것도 일부만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님을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가? 그를 왜 보냄 받은 자라고 하는가? 그것은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항상 자기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냄 받은 자로서 살았다. 하나님을 위해 살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는 말이다. 그는 혼자 있지 않았고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았고 자신을 그의 아들로 알았다. 그는 아버지로 말미암았고 아버지를 위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인생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라고 불린 한 사람의 가장 큰 특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하나님(아버지)과 분리할 수 없는 자로 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홀로 설 수 없는, 그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를 증거하는 자들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야)라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구원자라는 말이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신 그 메시아였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실제로 사람들을 구원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랬는가? 그의 외모와 행사가 사람들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로 알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 외모가 매우 특별하고 출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오랜 소망을 단번에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에 오셨을 때 보잘것없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는 마구간에서 났으며 나사렛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으며 가난한 목수로 살았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그리스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사역을 시작한 후로도 많은 표적과 기사(奇事)와 선행을 나타내었지만 로마 군대를 쫓아내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의 소망을 다 들어주신 것도 아니고 부자와 권세 있는 자의 소망을 들어주시지도 않았다. 그는 누구의 기대나 소망도 만족시켜주지 않았고 사람들이 소망하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하나님)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義에 대해서 眞理에 대해서 그의 나라(천국)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그리스도(구원자)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그리스도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질 그 구원자였다. 그는 어떻게 무엇으로 사람을 구원했는가? 바로 말씀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사랑)과 뜻을 나타냄으로써 그리고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는 정확하게 구원자였다. 그가 자기 백성들의 구원자인 것은 그가 실제로 자기 백성들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저주에서 그들을 구원했다. 표적과 기사와 선행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고 희생을 통해서 약속의 자녀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와 같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그런 분으로 알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의 눈을 열어주셨다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 눈꺼풀이 벗겨지도록 어떤 신비적 역사를 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볼)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계시를 주셨는가? 우선 하나님은 그를 예수께로 인도하셔서 제자가 되게 하셨고 그와 함께 살게 하셨고 그로 인해 그의 말씀과 삶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주셨다. 이것은 가장 큰 은혜이다. 단지 그리스도를 자기가 필요할 때만 접촉하는 자는 그의 인격과 능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와 함께 범사를 같이하며 같이 사는 자만이 그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에게는 오직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든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든 그것과 상관없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타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다. 주님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몰랐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 하는 것은 엉터리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6,7)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기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도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주님 당시와 달리 예수(그리스도)가 유명한 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안다고 한다. 그들은 마치 유대인들이 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그들이 교회를 아는지를 보면 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도 알고 그리스도도 안다고 하면서 교회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면 안다 하면서도 그 몸인 교회에 대해서 말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교회라는 이름이나 단체(조직)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야 다 안다고 하지 누가 모른다고 하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성령 안에서 연결되고 인도되는 교회의 실체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고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성령이 머리가 되시고 각 사람들이 몸의 지체로서 사랑(아들의 생명) 안에서 하나로 엮어져 있는 신비한 하나의 우주적 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교리나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를 알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말은 믿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그리스도는 (마치 하나님이 그의 독생자를 통해서만 자기를 나타내셨듯이) 오직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교회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은 계시가 없는 자이다. 교회를 사람의 단체로 아는 것, 교회를 친목 단체로, 천국 대기소로, 이익을 얻기 위한 장소로, 설교나 좋은 강연을 듣는 곳으로, 선한 일을 위한 사업 단체로, 하나의 종교 집단으로 아는 것은 위로부터 온 계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시가 없는 자는 곧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교회를 알려면 반드시 위로부터 온 빛(계시, 말씀)이 있어야 한다. 이 빛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을 통해서 비취며 때로는 성령의 직접적인 일깨우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춰진다. 이 빛이 없이는 사람이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볼 수 없으며 사람들이 모인 곳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알아볼 수 없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사람 속에 열어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열어 보이시며 그것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며 공감하게 만들기를 기뻐하신다. 계시는 말씀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므로 우리가 (누구를 통해 어떤 모양으로 전달되든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계시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의 말과 본(本)을 통해서든지 성경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세계를 열어 보이실 때 우리 마음이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고 그때 우리는 계시를 받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여러 표적과 기사(奇事)를 경험했는데도 왜 몇몇 주님의 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아들)로 깨닫지 못했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 생각 안에 갇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열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잠시 먹고 배 부르는 썩는 양식은 필사적으로 구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은 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눈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들의 마음이 사탄에게 붙잡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하늘로 올라가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과 교회를 통하여 온 세상 속에서 자기를 더 폭넓게 나타내고 계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작은 한 몸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우주적 몸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려면 반드시 이것을 보아야 한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영원한 아들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로 조성되어 가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똑똑히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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