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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초 (마16:13-20) / 2005. 9. 4

2010.04.30 15:21

이상봉 조회 수:3855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가졌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것은 큰 계시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가진 베드로에게 주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계시를 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중심이고 전부이다. 참으로 그리스도는 모든 것 되시며 알파와 오메가이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그 아들을 우주 가운데서 으뜸으로 높이시는 것이며 그리하여 만물이 그 발아래 복종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만물 가운데서 주와 왕이 되어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는 홀로 거하지 않고 그에게 속한 사람들 곧 그의 생명을 받은 자들, 그의 말씀을 가진 자들, 어디로 가든지 그를 따르는 자들과 생명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여 우주적 몸을 이루시며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시며 교회 안에 거하시며 교회와 함께 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하려면 반드시 교회를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주님도 자신에 대한 계시를 말하는 자리에서 교회에 대한 계시를 함께 주신 것이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이 반석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로마교회(천주교)는 이 반석이 베드로라고 생각한다. 즉 주님의 권세를 위임받은 어떤 사람(여기서는 베드로)을 교회의 기초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베드로가 주님의 이 말씀(위임)을 통해 교회의 首長(敎皇)으로 임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와는 달리 개신교의 어떤 사람들은 이 반석을 그리스도 자신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교회의 기초는 작은 돌이 아니라 크고 견고한 반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문에 반석은 petra로, 베드로는 작은 돌을 의미하는 petros로 되어 있다) 누가 크고 견고한 반석이겠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주님 자신이 교회의 기초라고 하는 것이 합당하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개신교의 해석은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 곧 베드로가 밝힌 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하는 이 신앙고백이 바로 교회의 바탕과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의 기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교회의 기초는 과연 무엇인가? 교회의 기초를 알려면 먼저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생명(말씀)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리스도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자, 그리스도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자, 그리스도와 같은 일을 하는 자,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와 생명을 같이 하고 운명을 같이 하는 자들의 집단이 교회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다른 말로 '말씀'으로 표현할 수 있고 '영'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주님을 말씀을 가진 자가 곧 주님의 영을 가진 것이며 주님의 생명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 생명, 이 말씀, 이 영이 교회의 기초이다. 이것은 다 한 가지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뭐라고 표현하든지 이 '위로부터 온 생명'이 있어야 한다. 사람 안에 이것이 들어가면 사람은 속에서부터 변화되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즉 거듭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혼 즉 생각이나 의지나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 이 생명, 이 말씀, 이 영을 가진 자는 그 속에서의 요구가 있을 때 거절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육신의 욕망과 상충되므로 거절하고 저항하고 갈등하지만 결국은 그것을 거스르지 못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이 말씀들이 보여주는 바는 어떤 말은 사람의 속에서 주권을 가지고 역사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생각이 되고 저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저렇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역사하는 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들은 말은 사람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그 들은 말씀이 속에서 역사를 한다면 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사람의 말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그 말씀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말씀(생명, 영)을 달리 표현한 것이 바로 계시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기초는 개신교에서 생각하는 대로 베드로가 가진 그 계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 하늘에 속한 세계를 아는 지식,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지식, 영생(영원한 구원)과 천국에 대한 계시, 이것이 사람으로 교회 되게 하는 바탕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계시가 교회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반만 맞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반만 맞다고 하는가? 개신교의 실패는 로마천주교의 실패와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천주교의 실패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천주교는 교회를 단지 사람 위에 세웠다. 즉 교회를 육신 위에 세운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한 후 그 결정에 따라 교회를 만들고 유지했다. 영의 인도를 따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에 좋은 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하고 훈련된 육이라도 육은 육일뿐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영으로 하지 않고 육으로 결과 천주교가 지배하던 중세교회는 타락과 죄악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교황이나 신부들이 적그리스도로 행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그들 개개인이 무지하고 악한 자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제도적, 시스템적 문제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구조가 문제였는가? 교회를 단지 사람 위에 세운 것이다. 영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인간적 제도와 인간의 선한 상식(이성)과 각종 인간적 안전 장치들만 믿고 사람으로만 교회를 한 것이다. 결국 입으로는 떠받들던 성령도 성경도 다 권위를 잃고 오직 사람만 득세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모든 것은 '교회'의 이름으로 시행되었다. 주님이 아니라 교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사람의 의논과 의견이 성령의 인도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섰고 거기서 결정된 것은 실질적으로 성경의 권위 위에 섰다.

개신교는 이러한 천주교의 실패의 바탕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처음부터 철저히 사람을 배제했다. 오직 성경과 계시만을 중시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실제적이지는 않았다. 교회는 사람으로 구성되니 교회의 기초는 기본적으로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도외시하고 교리와 지식만을 받드니 교회는 허공에 뜰 수밖에 없었다. 성경 진리와 계시를 높였을 때 실제로 나타난 결과는 교회가 진리 위에 견고히 서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교리 다툼과 분열, 신자들의 거짓된 자기 부정 즉 '사람은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죄인이고 교회는 이런 죄인들의 바탕 위에서 서는 것이 아니라 성경 진리 위에 서는 것이니 나는 적당히 살아도 괜찮다' 하는 생각에서 나온 방종과 무책임이었다.

즉 개신교의 실패는 교회가 사람을 기초로 한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이때 말하는 사람은 육신적인(동물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의 새로운 인격으로서의 사람이다. 어떤 主義나 主張과 같은 사람의 생각이 교회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계시를 통한 고백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아닌 사상이나 정신 자체가 곧 교회의 기초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 몸은 반드시 생명(인격)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사람이기는 사람이되 아담에 속한 자연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터와 반석이 되신다. 그 위에 그와 동일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로 하나님의 집이 건축되는 것이다.

분명히 교회는 베드로 위에 건축되었다. 그러나 그 베드로는 초대 로마교황이나 신비적인 권세를 지닌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아는 계시를 가진 사람, 곧 그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아들이 된 사람으로서 교회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바탕과 재료는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 곧 '계시를 가진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는 인격이다. 물론 베드로나 오늘의 우리가 그렇듯이 계시를 가진 자,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해서 전적으로 천국적 성분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베드로는 이 고백 후 곧 실족하여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씨(생명)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사람 속에 있는 천국적 성분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우주적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이다.

오늘 교회에는 신앙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고 신비한 능력과 체험이 많은 사람도 있고 봉사와 전도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였는데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착한 사람, 의로운 사람,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 모였으나 서로 한 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먹고 그리스도를 그 생명 안에서 날마다 깊이 누리는 사람만이 교회를 이룰 수 있다.

그리스도는 주님의 직분, 사역과 관련된 이름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주님의 인격과 관련된 이름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라고 고백한 것은 "주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실 유일하신 분입니다" 라는 고백을 한 것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것은 "주님은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참 사람의 완전한 인격을 지니신 분입니다" 라는 고백을 한 것이다.

베드로가 사람이신 예수님을 그렇게 보았고 또 그렇게 아는 예수님을 따른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또한 주님의 그 세계로, 그 인격으로, 그 자리로 이끌려가기를 원한 것이다. 오늘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로 주 예수님의 그런 자리 곧 자기를 바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시키는 자리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우리 인생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아들의 삶으로 바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주 예수님이 반석(큰 돌)이라면 베드로나 우리는 산 돌이요 작은 돌이다.(벧전2:3-8) 다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성전으로 드려져야 한다.  

누구든지 이 계시 위에 분명하게 서 있지 못한 사람은 교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결국 주님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떠나라고 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더 이상 따를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주님으로부터 어떤 세상적, 육적 필요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주님께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그런 것을 만족시켜주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오직 영원한 생명뿐이다.(요일2:25) 그러므로 오직 계시를 통해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영생)을 보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만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으며 그의 몸 된 교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요6:6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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