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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이 산더러 저리로 옮겨지라고 명해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어렵게 생각한다. 이것은 너무 엄청난 말이라서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과장법을 쓴 하나의 언어적 표현이거나 비유컨대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산이 옮겨질 수 있다는 말은 엄청난 정도가 아니라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허풍스럽게 말씀하거나 말을 복잡하게 하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분명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하셨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이 말씀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산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질 필요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우리의 집행(명령)을 통해서.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가정이지만 사실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뜻을 세우시고 그것을 명하신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참으로 믿고 순종한다면 산이 옮겨지거나 뽕나무가 뿌리채 뽑혀 바다로 심기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눅17:6)  

사람들은 산이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는 일이 어렵다는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이 산과 바다 더 나아가서 하늘과 땅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며 또 어느 날 그것들을 모두 불로 소멸하여 없애실 분이라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생각에는 여기 있는 산이 저리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하나님은 그가 세우신 법칙에 충실한 분이어서 함부로 만물을 흔들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 옮겨가는 일이 가장 큰 일은 아니다. 그보다 더한 일도 있으며 하나님은 지금 세상에서 그것을 벌이고 있으시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마귀의 종으로 살던 자가 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일은 세상 어느 일보다 더 크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 역사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 있고 집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집을 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집보다 더 큰 것이다. 사람과 산 중 어느 것도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산과 들은 집이고 사람은 그 속에 사는 주인이다. 사람이 집을 이리 저리 옮기는 것이 하나도 큰 일이 아닌 것처럼 사람의 필요가 있다면 산도 옮겨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제는 다만 집은 짓거나 허물거나 옮길 필요가 있지만 산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산도 허물고 없던 산을 만들기도 하고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믿음은 없지만 기술과 시간을 사용하여 대 역사를 이루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깨닫는 것은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이 옮겨지는 일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일어날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해 두자.

그러나 환경을 변화시키고 삶의 여건들을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렵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려워 보이더라도 하나님께는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들이 사람의 뜻대로 쉽사리 바뀌지 않고 요지부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의 변화가 불가능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만 그것이 사실상 (사람의 삶에) 그리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다지 바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물리적 환경을 너무 크게 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 있는 산이 저리로 옮겨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단지 작은 일이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로 그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엄청난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 정말로 큰 믿음이 필요한 큰 일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마귀의 종이 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메말랐던 생명이 다시 자라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모세는 바다를 갈라서 마른 땅을 만들었고 구름 기둥을 양산처럼 그리고 불기둥을 횃불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떡이 내려오게 하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했다. 여호수아는 손 하나 안대고 겹으로 싸인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고 전쟁을 하다가 시간이 모자라니까 하늘의 해와 달을 붙들어 매놓기도 했다. 또 엘리야는 물로 적신 제단을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태워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게 했으며 삼 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도 했고 그런 가운데서 마른 하늘에 폭우가 쏟아지게도 했다. 이런 일들은 물론 모세나 엘리야 자신이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기도와 금식(믿음과 순종)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역사들을 통해서도 죽은 자가 살아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산을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놀라운 역사들을 통해서도 사람은 안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런 모든 역사를 거치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실로 사람이 그 죽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게 되는 일은 산이 여기서 저리로 옮겨지는 일보다 훨씬 더 크고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는 큰 믿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절대로 사람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은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고 불도저로 밀면 느리지만 옮겨진다. 그러나 사람의 어떤 수고와 노력과 지혜로도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만 가능하다.(고전2:4)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런 일을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구원을 위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놓으셨다. 사람의 죽음과 부활 곧 우리 옛 사람이 처리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미 기초가 닦여져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자기 생명(운명)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적용시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받아들여서(믿어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사람을 살리는 그들의 일이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엄청난 일이지만 이미 그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섰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과 권세가 위임되었는데도 그들이 그것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역은 되지 않을 일을 억지로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다 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챙기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고 오직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것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뭐 어렵겠는가? 여기에는 육체의 능력과 지혜가 필요 없고 오직 믿음과 순종만 있으면 된다. 하나님의 마음(뜻)을 알고 하나님의 역사(능력)를 알고 자기를 낮추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와 금식'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새벽기도, 철야기도, 산기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고 소원을 빌거나 죄를 회개하는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신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같은 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자기 부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밥 안 먹는 금식기도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라고 하는 진정한 절망과 겸손의 자기 낮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는 상한 심령밖에 내 놓을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선을 행하시고 성을 쌓으십시오' 라고 했던 다윗의 절규와 금식 같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것이 있으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며 그의 약속과 구원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다.

오늘날 나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무능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느낀다. 속에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위엄과 역사가 나오는 것을 별로 볼 수 없다. 처음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해서 썩 나선다. 그러나 조금 해 보면 만만치 않고 잘 안 되는 것을 느낀다. 그런 다음에는 점점 자신을 잃고 일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와 부딪히면 도망가고 피하기 바쁘다.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일을 너무도 버거워한다. 마귀가 작심하고 대들며 버티면 아무 것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이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켜야 하지만 도리어 세상 권세와 영광 앞에 눌려서 지배를 당하고 마는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신자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런 자리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보자. 그는 우리에게 없는 전능한 창조주의 능력으로서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키며 다스리고 지배하신 것이 아니다. 물론 그는 그런 지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만 한 작은 사람으로 행했을 따름이다. 그는 오직 '아버지의 아들로서' 행했을 따름이다. 그의 권능은 다만 그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순종'에서 나왔다.

아들의 권세는 곧 믿음의 권세요 순종의 권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권능을 행사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면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며 지배할 수 있다. 주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그들에게 이런 마음과 이런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생은 그들보다 더 약한 자리에서 하늘의 권세를 마음껏 구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따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한다.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도 그리고 조금만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알아도 우리는 산을 저리로 옮기는 것쯤은 시시하게 여길 정도의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즉 죽은 사람을 살리고 구제불능의 인간을 놀라운 영광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을 옮기는 것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될 작은 일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호박씨 만한 믿음이 있어야 될 꽤 큰 일이다. 그러나 그 둘 다 그리 크지는 않다. 겨자씨나 호박씨나 다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라고 우리를 보내셨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영광스럽게 변화되고 엄청난 지위와 권세를 얻었는지 알기를 바라며 그것이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넉넉히 사람을 살려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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