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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지난 주에 우리가 상고한 말씀의 제목은 '능력과 믿음과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 제목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 일이 성취되는 과정을 가장 간단하게 나타낸 말이 바로 이 말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거기에 능력은 따르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일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심(계획하심)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능력과 권세가 나온다. 이것은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보내심, 위임 권세)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이런 믿음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우리는 못할 일이 없다. 산을 옮기는 것도 그리 큰 일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될 작은 일이다. 거기에 비해 죽은 자를 살리고 죄인을 변하여 의인으로 바꾸는 것은 큰 일이지만 그것도 할 수 있으며 그 역시 겨자씨보다는 크지만 호박씨 정도 만한 믿음만 있으면 될 일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일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런 뜻을 세우셨느냐 하는 것과 하나님이 그 일을 하라고 우리를 보내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고 우리를 보내셨다면 우리는 (믿음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야기 곧 주님이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서 성전세를 내신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것은 주님이 기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신 예 중 하나다. 주님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일을 대할 때 먼저 주님의 기적적인 행위에 눈이 간다. 그러나 앞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산이 옮겨지든지 고기가 입에서 돈을 내놓든지 하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며 단지 작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왕으로서 자기를 종처럼 낮추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낸다는 것은 그가 성전의 주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주인이요 세상의 구원자(메시아)가 아닌 일개 죄인인 것처럼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바로 앞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몇 번씩이나 자기가 사람들의 손에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떻게 왕이 종의 손에 죽을 수 있는가? 어떻게 창조자가 피조물의 손에 죽을 수 있으며 의인이 죄인의 손에 정죄를 받고 사형을 당할 수 있으며 생명의 주(구원자)가 죽은 자들의 손에 멸시를 받을 수 있는가? 그러나 주님은 그런 일을 자초하셨다. 누가 억지로 씌워서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낮추셨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큰 일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세이며 (주님에게서 드러난 모든) 능력의 원천이다.

물고기 입에서 동전이 나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볼거리(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사 구원코자 하는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거기에 순종하여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내어준 것은 그런 볼거리(일의 수단)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놀라운 역사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주시다. 즉 그는 우리에게 믿음을 창조해주는 분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그를 따라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행동 원리는 그를 바라보는데서 나온다. 그의 원리는 무엇이었는가? 그는 어떤 일이든지 억지로 즉 사람들의 요구나 강권에 의해 한 적이 없고 언제나 자발적이며 자기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성령)을 따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행동 원리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을 할 때 법이나 타인의 강제에 의해서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한다는 식으로 해서도 안된다. 왜? 우리는 종이 아니고 아들이며 또한 타인의 뜻에 의해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창조자시고 세상의 왕이요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내 일로 내 것으로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장과 종업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같은 원리로,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 책임이나 의무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나그네요 이방인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삶의 목표와 내용, 법과 질서, 책임과 의무, 권리와 자격 이 모든 것은 다 우리 것이 아니고 그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는 세상 일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언젠가 끝날 일이며 우리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어떤 사람보다 더 법을 잘 지키고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고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우리 집이고 세상 모든 것은 우리의 소유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것들을 되찾고 다스리도록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같이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할 일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서 품으신 그 뜻 안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코자 작정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주님이 안식일을 어기고 죄인들을 수납하고 안내도 될 성전세를 낸 것이나 성전에 들어가서 관리인도 아니면서 성전을 엎으신 것은 다 이런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세상 법과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 안에서 우리의 방향을 찾으며 우리의 일과 믿음과 능력을 얻는다. 우리는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세상에서 먼저 영적인 회복을 도모하고 다음으로 만물을 그 본래의 목적과 질서대로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세상의 요구와 상관없이 우리 자신(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세상을 돌보며 사랑하며 섬긴다.

국세청에서 세금을 내라 하기 때문에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할 때 그 일이 필요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생각되면 자발적으로 내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대신 일할 사람을 써서 일하고자 하니 비용이 필요할 것이고 따라서 내가 그것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일은 내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내라 마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종노릇하는 자리에서 건지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선 자리는 종의 자리나 타인의 자리, 손님의 자리가 아니라 내 자리고 아들의 자리고 주인의 자리이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병자를 고치지 못한 것은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고 맡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 속에서부터 아버지의 마음이 나와서 병자를 긍휼히 여기고 마귀를 책망하며 내 것을 찾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권세 있게 대응했다면 병자를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일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었다. 다만 주님께서 보내셨으니 한다는 식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믿음이 안 나온다. 그리고 믿음이 안 생기면 능력은 안 나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남의 요구나 억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뜻에 의해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일을 몸 아끼지 않고 하는데 왜 일이 안됩니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내 생각이 아니라 다른 데서 온 것인 경우가 많다. 즉 내 생각이고 내 마음이고 내 필요라고 하는 것이 실은 세상 상식이고 마귀로부터 온 거짓말(속임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과 거리가 먼 것이며 내 것이 아니다. 만사를 세상의 주인이요 세상의 통치자요 주관자요 조정자로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면 시각이 바뀔 것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오직 아버지를 바라보고 그의 뜻을 생각하고 그의 일하심을 주목하는 것이 아들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다. 거기서 목적과 목표가 나오고 계획이 나오고 믿음과 능력이 나온다. 오직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일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고 일의 성취가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행동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나온다. 즉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온다. 믿음의 주라는 말이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여기서 믿음의 주란 믿음을 창조하는 분이라는 말이다. 믿음을 만들어주는 분이 있는 것이다. 믿음은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가 믿음이 생기도록 만들어주어야 믿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어떻게 가지는가? 그 아이가 여러 면에서 지금 훌륭한 사고와 훌륭한 행동을 함으로써 나에게 신뢰를 주어야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는 일마다 실망스럽고 싹수가 안 보인다면 나 혼자 아무리 믿음을 가지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내게 믿음을 주어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가 그의 뜻을 알고 그의 능력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육체의 정욕대로 갈 때는 믿음이 안 생긴다.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이 확신과 평안을 주지 않는 일을 해 보라. 믿음이 생기는가.

믿음이 안 생기면 능력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은 그들에게 열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라고 그 아이를 고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구하지 않았겠는가? 구했을 뿐 아니라 요즘 말로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강한 믿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몰랐다. 지금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 모르는 것이다.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신 후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이 시대(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또한 세금을 내기 위해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기도 하는 것이다. 기적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주님처럼 메시아적인 표적을 항상 나타낼 수도 없다. 그러나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이런 모양으로든 저런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종종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1등을 하고 싶거나 사람들에게 나를 적극적으로 알려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일(자기 PR)을 하고 싶거나 무언가 가지고 싶은 것을 싸워서 쟁취하고 싶을 때가 있어도 그것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내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즉 마음에 그런 일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왜 자신이 없는가? 두려워서? 그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주로 힘(능력)의 문제이다. 내게 있어서 어떤 일을 썩 나서서 이루어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힘이 없고 약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 힘은 없다가도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힘이 없지만 너끈히 어떤 일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에 강한 의지와 확신과 자신이 있으면 없던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에 확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자신이 없는 것은 마음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확신)이 있으면 능력이 없어도 일을 꾀하고 시도하며 심지어 환경과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도 일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목표에 거의 다 가서도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면 왜 믿음이 없는가? 왜 확신이 없는가? 믿음을 가지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우리가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에게서 나는 것이다. 즉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지시하고 지지하고 힘 주시고 보장하는 일이라야 확신(믿음)을 자신 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 믿음은 우리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말씀, 뜻)은 믿음에 우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셔야 그것을 믿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주님 자신의 믿음도 그랬다. 주님은 할 수만 있다면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이 그것이라는 사실을 계속 확정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선포했고 제자들에게 자주 고지했다. 그것은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행위의 반복이었다. 여기서 그의 믿음이 나온 것이며 기적을 행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능력과 권세가 나온 것이다. 우리 안에 이러한 것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공감과 순종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권세와 권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항상 창출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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