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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1-4)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9:48)



사람의 모든 행동은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어떤 동기나 필요가 있어서 하는 것이지 괜히 하는 일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괜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도 알고 보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심지어는 행동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들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나 필요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욕망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인가? 어떤 욕망이 사람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까?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다음 두 가지 욕망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므로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생존하려는 욕망이고 둘째는 영광스럽게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생존 욕망과 크고 영광스럽게 되고자 하는 이 두 가지 욕망은 인간의 다른 모든 욕망의 원천이고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먼저 생존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에게는 살고자 하는 욕망 곧 생명을 유지하고 확대하려고 하는 욕망이 있다. 이것은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다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먹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최우선이다.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하는 모든 것이 다 이 생존을 위한 것이다. 심지어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까지 다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이 아들을 그렇게 간절히 원한 것은 그 시대에는 오직 아들만이 부모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으면 늙어서 살 길이 없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가문의 계통을 잇는다든지 하는 명분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 자기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생존 욕망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지대하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생존 욕망은 본성적이며 생명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그 이상의 또 다른 욕망이 작용한다. 사람은 밥만 먹는 것 가지고는 만족을 안하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할 수만 있으면 됐다 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계속 추구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일들과 문제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존 욕망과는 또 다른 이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크게 되고자 하는 욕망 즉 영광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이것은 사실상 인간에게만 있는 욕망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우두머리가 있고 힘 센 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일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질서 유지와 균형을 위한 본성적 행동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만물의 질서 유지를 위해 생명체들 안에 여러 조치들을 취해놓으셨다. 그 결과 힘 센 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힘 센 자가 약자를 섬기고 희생하는 일도 있다. 가시고기처럼 아비가 새끼를 위해 희생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강자와 약자가 서로의 필요를 위해 공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미물(微物)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들 안에 차원 높은 영적 생명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유지와 질서를 위해 그들의 생명(본성) 안에 어떤 장치를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 크게 되고자 하는 욕망, 다스리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런 차원의 것이 전혀 아니다. 인간에게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지배욕, 크게 되고자 하는 욕망, 영광스럽게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하고 있다. 이것이 어느 정도로 강한가 하면 생존 욕망을 이길 정도이다. 생존 욕망을 이긴다는 말은 죽더라도 그것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을 심하게 멸시하고 억압한 결과 그 사람이 "이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고 느끼게 되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자살한다는 말이다. 자살이 무엇인가? 이것은 생존 본능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 어느 수준의 삶이 안되면 삶 자체를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들에게 의식이 있다면) 이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강한 자의 발바닥을 핥으면서라도 살아야지 어떻게 죽을 수가 있나? 사는 것보다 더 한 일이 어디 있나?"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람 안에 생존 본능(욕망)보다 더한 하나의 강력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생존 욕망과 영광을 추구하는 욕망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우리가 아는 것은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후자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둘째, 마귀로부터 온 것이다. 영광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데서 온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단지 외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생각이 그 속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다. 사람은 단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그 속에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담고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그 안에 지니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일반 생물체가 만족하는 수준의 삶이 아니라 그 속에 계신 하나님이 만족하는 수준의 삶을 요구한다. 하나님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수준의 삶을 살지 않으면 인간은 만족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지배욕, 힘을 추구하는 욕망, 크게 되고자 하는 욕망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14:12-15)

이것은 하나님이 바벨론 왕에게 하신 말씀이다. 바벨론 왕은 끝없는 권력과 지존(至尊)의 영광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본연의 욕망이 아니라 마귀의 욕망이 전염되고 전이되어 사람 속에서 표현된 것이다. 마귀의 독(망상)이 사람 속에 주입된 후 사람 안에는 자기를 끝없이 높이며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거짓된 욕망과 그에 따른 일들이 생겨났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4-6)

이 창세기의 기사는 사람의 교만과 망상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스스로 모든 것(선악)을 판단한다는 것은 마귀의 망상에서 나온 거짓말이다. 마귀의 거짓말이 사람 안에 접수됨으로써 사람은 스스로를 크다 하며 높이는 어리석은 자리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이 타락이다.

본래 사람은 무슨 수를 쓰든지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식의 생존 욕망이나 스스로를 높이며 헛된 영광을 추구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만물 가운데서 (생명의 유지와 보존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보장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가만히 있어도 영광스럽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에 목을 매거나 다른 사람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되려고 스스로를 높이며 헛되이 몸부림치는 것은 다 마귀에게 속아서 안해도 될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러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주님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건지는 것이다.(히2장)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는 것은 생존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인간을 이러한 헛된 염려와 수고의 자리에서 해방시켜 주려고 오셨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주님은 사람이 헛된 영광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자리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서도 오신 것이다.

더 높고 더 크게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주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강하게 역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주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 하고 물었다. 제자들은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볼 때 곧 세상(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설 것을 확신했다. 주님은 그의 큰 권세와 권능으로 머지않아 세상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통해서 그들은 주님이 머지 않아 영광 중에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에 다윗 왕국(하나님의 나라)을 세우시고 왕이 되어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남은 관심사는 이제 그때 자기들 중 누가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존귀한) 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되었다. 그들은 이 문제로 논쟁하다가 서로 다투기까지 했다.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路中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니라"(막9:34)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1-28)

심지어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어머니까지 동원하여 주님께 큰 자리를 부탁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베드로가 나서서 자기가 가장 크고 다음으로 요한이나 야고보가 그 밑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때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와 요한 형제를 격렬히 비난하며 반박했을 것이다.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4-27)
 
크고자 하는 제자들의 관심사에 대해 주님은 누가 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고 도리어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는 큰 자가 아니고 작은 자이다. 그런데 왜 주님은 천국에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가 가장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천국이 바로 어린 양(작은 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나라요 아버지 앞에서 어린 아들의 자리를 견지하신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요 아버지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리스도(하나님)의 생명을 가장 풍성하게 소유하고 있는 자가 가장 큰 자가 된다. 어린 아이와 같이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여 그리스도(하나님)를 가장 많이 가장 깊이 받아들이는 자가 가장 큰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장 낮은 웅덩이가 가장 많은 물을 담음으로써 가장 큰 저수지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자들의 논쟁과 갈등이 천국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천국은 능한 자나 업적과 공로가 많은 자가 최고가 되는 나라가 아니요 산상보훈에서 주님이 이미 밝히신 바처럼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 의를 사모하는 자, 온유한 자,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 화평을 좇는 자, 마음이 단순한 자'가 최고가 되는 나라이다. 즉 천국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자가 가장 큰 자가 되는 나라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裕足)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삼상2:4-8)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1:49-53)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주님의 모친 마리아가 공(共)히 노래한 바와 같이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그리스도의 나라)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속에서 역사하도록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각도에서 말해보자. 누가 천국에서 큰 자인가? 하나님이 높이시는 그 사람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하나님이 높이시는 그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높이시는가? 바로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자기를 작게 여기고 낮추는 자 곧 범사에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가 큰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6-10)

야고보는 누구든지 (스스로 크다 하는)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여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작게 되고 반대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의 높이심에 의해 크게 된다고 말했다. 사람의 위치와 존귀는 근본적으로 인생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

이러한 사실에 대해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8-12)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7-11)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9-14)

이 모든 말씀들이 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그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생각대로 되는 나라요 하나님의 원리대로 되는 나라이다. 세상은 마귀의 뜻대로 되는 일이 많은 곳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나라이다. 물론 세상 일도 대부분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대로 되어진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마귀의 거짓말대로 되기도 한다. 작은 자가 자기를 스스로 높여 크다고 할 때 세상은 그런 자를 큰 자로 여기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크다는 것은 무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이 세든지 가진 것(소유)이 많다는 것이다.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주로 소유와 능력 문제이다. 많은 지식, 많은 재물, 큰 육체적 힘, 많은 권력이 바로 사람을 크다고 평가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천국은 그 원리가 세상과 전혀 다르다. 천국은 오직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이냐 하는 것 한 가지로 어떤 사람의 수준이 결정되는 나라이다.

사람이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평가할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평가할 일이다. 그러므로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내가 어떻게 평가 받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크다 작다고 평가하는가? 소유물이나 힘이나 지식 유무를 가지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점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단지 사람을 표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크거나 작다고 평가하는 실제적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인격 및 나와의 관계이다. 즉 그 사람이 내게 있어서 얼마나 소용되며 얼마나 의미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면 큰 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작은 자, 시시한 자에 불과한 것이다. 필요한 사람 즉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되는 그 사람이 바로 (진정으로)큰 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누가 다른 사람에게 큰 자가 되는가 하는 것이 분명해진다. 상대방을 섬기며 이롭게 하며 봉사하는 그가 바로 (누구에게 있어서든지) 큰 자가 된다는 말이다. 전쟁 때 가장 큰 자는 국민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총 들고 싸우는 사람이고 아울러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여 살려내는 의사들이다. 그들의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거나 키가 크고 인물이 잘 생긴 것은 큰 자가 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소용이 되는 사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소중히 여기며 크게 여기는 사람이 바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사람의 소용과 필요를 따라 사람의 크기가 결정되며 그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크기이다. 사람의 소용이란 그의 인격과 생명의 여유(능력, 권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결국 천국에서 큰 자는 인격이 거룩하고 훌륭하며 생명이 풍성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며 안식케 하며 만족케 하는 그 사람이다.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며 부리며 괴롭게 만든다. 그러니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 곧 지극히 작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며 남을 높이는 사람은 언제나 상대방을 섬기며 이롭게 한다. 이런 사람은 상대방에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 곧 크고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도록 지음 받았으며 운명 지워졌는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동반한 부러움 속에서 큰 자로 여겨지는 것을 원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두 대단하다고 말하며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쳐다보게 되는 사람은 전혀 큰 자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며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도 그와 같이 되고 싶어할 따름이다. 이것은 모두 마귀에게 속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큰 자로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한다.

사랑과 존경은 언제나 (상대를 가르치거나 부리는 데서가 아니라) 상대를 섬기고 이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 주님처럼 온 세상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쳐 섬기면 온 세상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 위에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큰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에 의해 큰 자로 여김 받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진리를 진실로 깨닫고 주님처럼 항상 사람들을 섬기는 자로 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세상에서는 가장 작고 낮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큰 자로 여김 받을 수 있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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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믿음의 주 그리스도 (마17:24-27) / 2005. 10. 23 이상봉 2010.04.30 4003
131 능력과 믿음과 하나님의 뜻 (마17:19-21) / 2005. 10. 16 이상봉 2010.04.30 3590
130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마17:14-20) / 2005. 10. 9 이상봉 2010.04.30 3887
129 베드로의 훈련 (마17:22-27) / 2005. 10. 2 이상봉 2010.04.30 3775
128 오직 예수만 (마17:1-8) / 2005. 9. 25 이상봉 2010.04.30 3531
127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함 (마16:20-26) / 2005. 9. 18 이상봉 2010.04.30 3614
126 교회의 권세 (마16:15-19) / 2005. 9. 11 이상봉 2010.04.30 3780
125 교회의 기초 (마16:13-20) / 2005. 9. 4 이상봉 2010.04.30 3855
124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마16:13-20) / 2005. 8. 28 이상봉 2010.04.30 3784
123 하늘로부터 온 표적 (마16:1-12) / 2005. 8. 14 이상봉 2010.04.30 3990
122 하나님의 나라와 믿음 (마15:21-28) / 2005. 8. 7 이상봉 2010.04.30 3873
121 소경이 소경을 인도함 (마15:11-20) / 2005. 7. 31 이상봉 2010.04.30 5839
120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마15:1-20) / 2005. 7. 24 이상봉 2010.04.30 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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