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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우리는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궁극적으로는 천국에는 큰 자도 작은 자도 없고 오직 하나님이 있을 뿐이다.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 곧 그리스도 안에 우리 생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있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그리스도는 하나의 몸이고 하나의 생명이고 하나의 인격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큰 자도 없고 작은 자도 없고 다만 지체들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몸 안에 큰 자가 어디 있고 작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지체에도 큰 지체가 있고 작은 지체가 있지 않은가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크기가 큰 지체는 있을지라도 높은 지체는 없다.

몸 안에는 많은 지체가 있고 그것들 중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많이 쓰이는 지체도 있고 적게 쓰이는 지체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몸에 필요해서 붙어 있는 것이며 다 소중한 지체이다. 우리는 바울의 이 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0)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스스로 크다 칭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지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스스로 크다 하거나 큰 자가 되기를 도모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도 있지 못할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의 나라이다. 이는 곧 천국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말이다. 천국은 아버지의 나라이며 또한 아들의 나라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졌으며 착하고 충실한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다른 어떤 이유가 없더라도 우리는 결국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못난 형이고 못난 동생이라도 우리가 (함께 살 동안, 아버지 집에 있는 동안에는) 사랑하고 용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바로 그 못난 형과 동생과 같은 자며 아버지는 동일한 이유(우리가 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받아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 어떤 감정,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형제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태도는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이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 면에서 만질 수 있다.

먼저 주님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1-4)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이 말씀은 천국의 특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천국은 아버지의 나라이며 또한 아들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원히 아들의 위치를 견지해야 한다. 어린 아이란 말은 곧 아들이란 말과 같은 것이다.

어린 아이의 특성은 무엇인가? 어리다는 말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하다는 점이 있다. 성인(成人)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인이 온전하고 구비된 존재라면 아이는 온전치 못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불완전하고 미약한 존재로 있기를 원하신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그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될 작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아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다. 6살 먹은 아이도 3살 먹은 아이에 비하면 어른이다. 반대로 다 큰 어른도 노인 앞에서는 아이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버지를 닮아서 온전하고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아버지 안에 거해야 하고 그를 의지해야 한다. 그의 구원이 없고 그의 생명 공급이 없다면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사람(아들)으로 설 수 없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아이로 여기고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 노릇뿐 아니라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노릇을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사람이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자기를 높이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자기를 크다 하는 자는 언제나 자기를 모르는 자이며 그럴수록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지며 영광과 권세가 없게 된다.

주님이 우리에게 적용되기를 원하시는 어린 아이의 진정한 특성은 겸손이다. 어린 아이는 비교적 겸손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든지 묻고 조심하며 인도를 바란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첫째,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인정하기) 때문이며 셋째,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시험을 당했을 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완전하며 완전하게 행했다고 주장했다. 즉 자기가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모르는 사실들을 열거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고 수없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는 정도였다. 결국 욥은 항복하고 말았다. 자기가 굉장히 많이 알고 있고 굉장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38:2,3)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우리는 "우리가 언제 모든 것을 안다고 했습니까? 저는 그다지 교만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욥도 그랬다. 하나님이 그에게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시자 욥은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심판을 피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욥40:2-8)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자기가 옳고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은 불공정하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이처럼 자기 의를 주장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불평과 원망을 하며 형제를 판단하거나 작은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또는 하나님처럼 옳고 크고 온전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라는 사실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약1:5) 그리하여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실상이 그러한데 그것을 감추고 안 그런 체 하는 것은 진실치 않은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아들로 행할 자이다. 이것은 우리의 수치가 아니라 영광이며 복이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세계에 참여하여 삶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의 것이며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것이다.


다음으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소자(小子)를 업신여기지 말고 영접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18:5-7)

아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곧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대접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소자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공경하며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소자란 어린 아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약하고 보잘것없는 죄인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디서도 크게 여김 받기 어려운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자들을 영접하며 소중히 여기기를 원하신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은혜와 긍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주님 자신이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을 외모와 행위대로 판단하지 않고 긍휼과 은혜로 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분이다.

다시 말하지만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이며 그의 생명을 받은 아들들의 나라이다. 천국은 언제나 장소나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사람 문제이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천국을 생각할 때 언제나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강퍅하고 그 마음이 교만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며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들어간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떤 형제에게 '주님께서 형제더러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과장법을 사용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형제는 '그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형제를 바보라고 생각하며 멸시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원리에 따라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하나는 형제를 실족케 하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하는 (앞에 읽은) 말씀이고 또 하나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 말씀이다.

특히 후자의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 말씀에도 나오는 말씀이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목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져 죽는다든지 손이나 발을 자르거나 눈을 뽑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므로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다 생명(영생)과 관련된 이야기요 천국과 관련된 이야기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항상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천국과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추구하는 자들의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영을 좇아 행하는 자들의 것이다. 육체에게는 육체대로 성질이 있고 욕망이 있다. 문제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육체(의 성질)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자기를 높인다. 그것도 자기보다 못한 자를 업신여김으로써. 그리고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육체의 정욕을 위해 일하고 그것을 위해 필요하다면 죄도 짓는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육신이 편하게 느끼는 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하나님은 우리로 육신대로 행하지 못하도록 우리 옛 사람을 이미 십자가에 못박았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믿느냐 하는 것이며 이것을 믿음으로써 날마다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고(육체의 욕망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원만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떤 은혜인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은혜이다. 성령께서 십자가를 우리에게 적용시켜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미 죽었고 그리하여 더 이상 육신의 감정과 욕망대로 살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날마다 확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낮추실 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로 영생을 실제로 누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헛되이 높이지도 않고 자기보다 못한 형제들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대신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영접하게 만드심으로써 우리로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만드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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