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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오늘은 나무와 열매 곧 생명과 그 열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이 주님의 말씀에서 나무는 사람의 인격 또는 생명의 어떠함을 말하고 실과는 그의 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은 그의 인격과 생명의 표현이요 열매인 것이다.  

주님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일이 귀신의 왕바알세불의 힘을 빌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고의로 주님께 악한 말을 했다. 이때 주님께서 그 말을 한 바리새인들에게 위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말한 것은 무엇인가? 주님의 일은 선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주님이라는 사람은 악한 자라는 것이다. 즉 주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하나님이 할 법한 일)인데 주님 자신은 마귀에게 속한 악한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말은 그들 자신이 바로 모순된 사람이요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님이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 복음을 전하는 등 모든 선한 일을 하신 것은 주님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선한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은 어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모든 사역은 주님의 인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하신 모든 선한 일들이 귀신에게서 나왔다고 말함으로써 '선한 열매'가 '악한 나무'에서 나왔다는 {거짓말} 또는 {무익하고 악한 말}을 한 것이다.

열매로 나무를 판단하는 원리는 사물의 어떠함을 판단하는 일반 원리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주님과 그 사역을 판단할 때 이 원리를 적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판단할 때 이 원리를 적용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주님은 악한 말을 쏟아내는 바리새인들이 악한 자임을 밝히셨다.

주님의 모든 착한 사역들이 주님이라는 선한 나무(인격)의 열매라면 진리를 거부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바리새인들의 악한 말과 행동은 자기를 거짓으로 꾸며 경건한 체 하던 위선적 종교인 즉 악한 나무(인격)의 열매인 것이다. 그들이 주님께 말한 모든 악하고 어리석은 말들은 어쩌다 보니 실수로 나온 것이 아니다. 주님의 선한 사역이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듯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선한 사역과 거기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서도 악한 말로 대적한 것은 판단 착오나 실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평소에 쌓아둔 악한 생각과 오랫동안 형성된 악한 인격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은 이어서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 주님께 심문을 받게 될 무익한 말이란 어떤 말인가? 아들(하나님)의 생명과 일치되지 않는 모든 말이 다 주님의 심판을 받을 무익한 말이다. 거기에는 거짓말과 악한 말과 쓸데없는 말과 많은 말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축내는 모든 말이 다 포함된다. 이런 말들은 이런 말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을 그 인격과 하나로 보시고 별개의 것으로 보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각에 있어서 말은 언제나 그 속 생명의 표현이다.

생명과 말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면 제일 먼저 그의 말이 변화될 것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오직 속의 생각이 바뀌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말은 그 사람의 생명과 인격,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사람이 감사의 말과 찬양의 말은 하지 않고 항상 형제를 참소하고 욕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말만 한다면 그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심판 날에 그의 악하고 무익한 말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님은 오직 열매로 생명을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께 속하였는지 아닌지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누가 만일 자신의 말과 행동(생활)이 거칠고 바르지 않는데도 자신을 하나님께 속한 선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거나 말과 행실이 좋지 않은 어떤 사람을 그의 능력이나 다른 사유(어떤 만족을 준다든지 하는 이유)로 좋게 여기며 추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열매는 안 좋아도 나무(사람)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언변이 아니라 실제)은 안 좋은데 생각이나 인격 자체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착각한 것이다. 생명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선한 생명은 선한 인격으로 표현되며 선한 인격은 선한 말과 행실로 표현된다. 따라서 무익하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 진실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온전치 않은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 말과 행실이 진실하지 않고 바르지 않은 사람은 그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 생명과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권위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말을 분별할 때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주님이 여기서 말하는 무익하고 악한 말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말을 잘 못한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을 너무 잘하는 것이 무익하고 악한 말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한다. 합당한 말, 좋은 말은 진실한 말,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 형제를 사랑하고 살리는 말이다. 행실은 따르지 않으면서 말을 번드르르하게 하는 것은 말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짐에 있어서 신약 시대의 원리는 '사람(인격)'을 통해서 일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인격과 별개로 말(하나님의 말씀, 뜻)과 능력만 전달되는 법은 없다. 아주 급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은 때로 악한 자(발람 같은 자)들을 통해서도 일하셨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관계없이 당신의 뜻을 전하셨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게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모든 뜻과 능력과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그의 아들들 안에서만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참된 뜻이다.

그러므로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무정하고 악한 사람은 그 말과 능력이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신뢰해서는 안된다.

말이 사람의 생명과 인격을 나타낸다는 이 원리 즉 겉으로 드러나는 말은 그 속 사람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이 원리를 우리는 제일 먼저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의 말이 어떠한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을 조심하자든지 말을 잘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노력을 하면 말이 조금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속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속의 생명이 거칠기 때문에 밖으로 말도 거친 것이다. 입을 잘못 벌려서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안식이 없고 불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의 형편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좋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리고 성과도 내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속 사정이 어떠하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합당치 않은 말이 나오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교양이 없거나 훈련을 받지 않았거나 부주의하게 행동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생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속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속이 좋지 않은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속이 비고 허전하여 생명이 결핍되었을 때는 생명의 양식이신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그리고 교회 형제들과 생명의 말씀을 나눔으로써 그리고 조용히 주님과 기도로 교통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고 마실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합당치 않은 말과 생각, 합당치 않은 행실들을 온전케 할 수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살피고 또 그것을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말이 생명의 표현임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말을 살필 때 이 말이 그냥 좋다 안 좋다 할 것이 아니고 '내가 이런 말을 하니 내 속 사정이 이렇구나' 하고 깨달아야 한다.  


이런 원리에 따라서 우리 안에서 나오기 쉬운 합당치 않은 말들을 우리 생명의 형편과 관련하여 분석해 보기로 하자.

1.남을 비판하거나 폄론하는 말을 함

이것은 그 사람 안에 강한 '자기 의(義)'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별로 없음을 나타낸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결국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실상을 알면 남의 말을 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된 실상을 가장 먼저 보게 만든다.

2.거짓말을 함

이것은 그 사람이 성령의 통제를 별로 받지 않고 육신의 성질대로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래 거짓말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거짓말 안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것이 힘든다. 이것이 영 안에 있는 사람의 성질이다. 그러나 육신의 성질은 반대이다. 사탄에게 속은 사람의 특징은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외식이고 위선이다. 지식은 있는데 생명(의 능력)은 거기에 이르지 못할 때 사람은 결국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좋게 보이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면 잘했을 때는 자랑과 교만이 나타나고 못했을 때는 변명과 위선과 거짓말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이 육적이고 마귀적인 상태에 놓여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기를 좋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 배경에는 종종 열등감이나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거나 우습게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3.원망과 불평의 말, 죽는 소리를 함

이것은 그 사람 안에 생명의 여유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언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안식이 없다는 것이다. 안식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 처한 환경이 좋지 않다는 말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없다는 말이고 그래서 그의 속 사정(영적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고 담대하며 여유로운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불평과 투정과 하소연이 쏟아진다면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4.너무 많은 말

말을 쉴 새 없이 많이 하는 사람, 틈만 나면 말을 하는 사람, 사람만 만나면 무언가 말부터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 속이 공허하고 허전하다는 것의 표현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거나 무언가 맺히고 답답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좀 알아달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심심해서건, 자기 답답함을 좀 알아달라는 마음이 있어서건, 자기를 자랑하고자 해서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성령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은 절제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5.말이 너무 없음

말해야 할 때도 말을 안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 사람 안에 사람에 대한 실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절망, 포기, 낙심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마음의 건전성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이다. 말문을 닫는 것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이고 성령 안에서 생명의 활력을 얻어야 한다.

6.남의 말을 많이 함, 남의 생활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짐

남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런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일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어떤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돌아가는 모든 일에 관심이 있고 입을 댄다. 이것은 호기심의 표현이거나 또는 선생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나 종종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호기심은 사람의 마음을 생명과 진리에서 벗어나 헛된 일로 돌이키게 만들려는 마귀의 수단으로 쓰인다. 만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꼭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못 가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남의 말을 하는 것은 육신의 죄악된 본성이다. 남을 말을 하는 것이나 남의 말 듣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26:22) 왜 이렇게 재미가 있는가?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자기를 높여 선생과 주관자와 판단자의 지위에 앉혀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말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남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령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왜곡된 한가한 마음이다. 자기 할 일이 있는데 엉뚱한 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빨리 돌이켜 자기 자리로 가야 한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4,5)

7.자기 자랑의 말, 육신을 자랑하는 말을 함

이것은 결국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으며 자기의 초라함과 죽었음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 큰 자랑거리(천국,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것을 자랑할 것인데 그것을 모르니 작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함

이것은 그 마음이 세상을 자랑하며 세상을 지향하며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관심이 하늘(그리스도)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 세상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여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자랑, 우리의 관심사는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서 얻은 새로운 삶이다.


우리가 모이면 해야 할 말이 바로 이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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