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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생명에서 나오는 합당한 말


  마태복음 12:33-37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잘 생기면 그 사람이 잘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얼굴이 사람의 신체(몸)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을 대표하는 것이 얼굴이라면 사람의 마음을 대표하는 것은 말이다. 말은 사람의 마음(인격)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말이 진실하고 아름다우면 우리는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말은 사람의 다른 어떤 행동보다 그 사람의 인격과 마음의 어떠함을 잘 드러낸다. 그 까닭은 말이란 통제하기(꾸미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2-8)

이처럼 혀는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이기 때문에 말을 마음(인격)과 다르게 계속 꾸미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잠시 그렇게 할 수는 있겠지만 항구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말은 사람의 속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다. 마음과 말은 언제나 같이 가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잠16:23)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잠18:7)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은 다 그의 말로 자기의 실상을 드러내는 법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람의 실상 곧 신자의 빈곤한 영적 상태를 드러내는 여러 가지 합당치 못한 말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난 주에 폭설이 와서 대부분의 형제들이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

1.남을 비판하거나 폄론하는 말을 함

이것은 그 사람 안에 강한 '자기 의(義)'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별로 없음을 나타낸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결국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실상을 알면 남의 말을 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된 실상을 가장 먼저 보게 만든다.


2.거짓말을 함

이것은 그 사람이 성령의 통제를 별로 받지 않고 육신의 성질대로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래 거짓말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거짓말 안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것이 힘든다. 이것이 영 안에 있는 사람의 성질이다. 그러나 육신의 성질은 반대이다. 사탄에게 속은 사람의 특징은 꾸미는 것이다. 이것은 외식이고 위선이다. 지식은 있는데 생명(의 능력)은 거기에 이르지 못할 때 사람은 결국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좋게 보이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면 잘했을 때는 자랑과 교만이 나타나고 못했을 때는 변명과 위선과 거짓말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이 육적이고 마귀적인 상태에 놓여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기를 좋게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이 배경에는 종종 열등감이나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거나 우습게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3.원망과 불평의 말, 죽는 소리를 함

이것은 그 사람 안에 생명의 여유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언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안식이 없다는 것이다. 안식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에 처한 환경이 좋지 않다는 말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없다는 말이고 그래서 그의 속 사정(영적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고 담대하며 여유로운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불평과 투정과 하소연이 쏟아진다면 우리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4.너무 말을 많이 함

말을 쉴 새 없이 많이 하는 사람, 틈만 나면 말을 하는 사람, 사람만 만나면 무언가 말부터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 속이 공허하고 허전하다는 것의 표현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거나 무언가 맺히고 답답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좀 알아달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심심해서건, 자기 답답함을 좀 알아달라는 마음이 있어서건, 자기를 자랑하고자 해서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성령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은 절제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5.말이 너무 없음

말해야 할 때도 말을 안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그 사람 안에 사람에 대한 실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절망, 포기, 낙심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마음의 건전성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이다. 말문을 닫는 것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이고 성령 안에서 생명의 활력을 얻어야 한다.


6.남의 말을 많이 함, 남의 생활에 대해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짐

남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런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일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어떤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돌아가는 모든 일에 관심이 있고 입을 댄다. 이것은 호기심의 표현이거나 또는 선생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호기심은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나 종종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호기심은 사람의 마음을 생명과 진리에서 벗어나 헛된 일로 돌이키게 만들려는 마귀의 수단으로 쓰인다. 만 가지 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꼭 신경을 써야 할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못 가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남의 말을 하는 것은 육신의 죄악된 본성이다. 남을 말을 하는 것이나 남의 말 듣는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26:22) 왜 이렇게 재미가 있는가?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자기를 높여 선생과 주관자와 판단자의 지위에 앉혀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의 말을 많이 하거나 지나치게 남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령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왜곡된 한가한 마음이다. 자기 할 일이 있는데 엉뚱한 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빨리 돌이켜 자기 자리로 가야 한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4,5)


7.자기 자랑의 말, 육신을 자랑하는 말을 함

이것은 결국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으며 자기의 초라함과 죽었음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 큰 자랑거리(천국,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것을 자랑할 것인데 그것을 모르니 작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함

이것은 그 마음이 세상을 자랑하며 세상을 지향하며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관심이 하늘(그리스도)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 세상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여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자랑, 우리의 관심은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 얻은 우리의 새로운 삶이다. 우리가 모이면 해야 할 말이 바로 이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은 언제나 그 생명대로 표현한다. 생명만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자연인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피조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우리이다. 우리는 아들의 생명을 따라 살고 말한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생명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다. 그 생명을 우리 삶 속에서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을 깊이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어떠한 분인가? 그 생명은 어떤 생명(어떤 말을 하게 하는) 생명인가? 이것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속에서 마땅히 나와야 할 합당한 말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주님의 생명은 진실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 이것은 성경에서 주님이 말(언어생활)과 관련하여 제일 먼저 언급하신 말씀이다.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한다는 것은 옳은 것은 옳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확한 말, 진실한 말을 하라는 것이다. 자기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말을 진실치 않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따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아들의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주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마귀를 따르는 자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이 누구를 따르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진실한 말을 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는 마귀의 거짓말을 듣고 그와 같이 거짓말을 한다. 무릇 사람은 좋게 생각하는 것을 따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좋게 보이면 그것을 따르고 마귀의 거짓말이 좋게 보이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다.

마귀의 가장 큰 거짓말, 마귀의 대표적 거짓말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뒤엎고 우주에 인간(마귀) 왕국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거짓말의 근본이다. 아담 이래 온 인류가 마귀의 이 거짓말에 속아 망상에 빠져 헤매고 있다. 모든 거짓말들이 다 여기서 나온다.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겠다는 것,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마귀의 원천적 거짓말로부터 온 인류의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을 받아들이면 사람은 다음부터 계속 다른 거짓말들을 하게 된다. 그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든 거짓말들은 다 합력하여 마귀의 왕국을 이루는데 기여한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행하는 크고 작은 모든 거짓말들은 다 직간접적으로 마귀를 이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허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을 단순한 잘못된 말 정도로 여기지 말고 하나의 영적 세력으로 알아서 강력하게 대적해야 한다. 일체의 거짓말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부하고 대적해야 한다.  

거짓말은 일단 '사실에 일치하지 않는 말'이다. 진실은 말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최소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면 마귀는 즉각 그 부분으로 틈을 타서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우리 안에) 거짓말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으며 얼마나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는지는 점검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누구든지 '지금부터 나는 일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고 자신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체크해 보기 전에는 자기가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우리 안에 매우 뿌리깊게 박혀 있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거짓말은 거짓된 생명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진실한 생명을 받은 사람이라도 순간 순간 닥쳐오는 마귀의 공격(거짓말, 거짓된 생각, 유혹)을 그대로 두면 거짓말을 제것처럼 하게 된다.

거짓말은 거짓된 생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거짓말 자체가 사람의 생각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생명을 축내기도 한다. 자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나중에 생각조차 거짓되게 되어 무엇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렵게 된다. 오늘날은 거짓말이 너무나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거짓말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거짓말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1.거짓말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한다면 그 말은 거짓말이다. 어느 때에는 "예" 했다가 필요하면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이 다 거짓말이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5:37)

2.거짓말은 자기 좋은 대로 말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에 대해 말하고 싶은 부분은 말하고 그 나머지는 감추는 것,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사실 중 그에게 해로운 것만 말해주는 것 등은 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된다. 또 남의 과오는 크게 말하고 자기의 과오는 작게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3.자기 소원대로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말은 그 결과의 어떠함을 보기 전에 그 생명의 어떠함을 따라 말하는 것이다.

4.사실에다 자기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도 거짓말이다. 한 말이 여러 사람을 거치는 동안 내용이 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기의 생각이 사실에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TV에 이런 풍자극이 나온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옆 집 아주머니가 피로해 보이더라"고 말했다. 그 말이 한 사람을 거치자 "그 아주머니가 몸살로 앓아 누웠다."가 되었다. 이 말이 또 다른 사람을 거치자 이제는 "그 아주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로 바뀌었다. 이 말이 또 다른 사람을 거치는 동안 "그 아주머니의 병이 중하다"로 바뀌었다. 이 말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서 "그 아주머니가 중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가 되었다. 이 말이 마지막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 아주머니가 앓다가 결국 죽었다"로 바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처음부터 철저히 사실만을 말하며 자기의 생각을 부주의하게 덧붙이지 않도록 하기를 배워야 한다. 하와의 타락은 바로 이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주의하게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데서 시작되었다. (창2:9,16,17, 3:1-5)

5.교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또 하나의 거짓말은 [과장된 언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부정확한 숫자를 많이 말하고 사실에 대해 부정확하게 적당히 말하는지!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부정확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부적합하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고 진실하게 증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자기 편한 대로, 자기 마음대로 적당히 해석하여 전하므로 하나님께 적합하지 않다. 교회 집회 숫자를 과장하는 것도 엄연한 거짓말이다.


둘째, 주님의 생명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이다. 따라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오직 사람을 살리는 말,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 꼭 필요한 말을 한다. 무엇보다 생명의 말씀(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

아들의 생명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 곧 해로운 말이나 무익한 말을 하지 않고 반드시 사람(생명)을 살리는대 필요한 말만 한다. 남을 비판하거나 상처를 내거나 시험에 들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은 아닐지라도 시간만 축내는 쓸데없는 말도 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쟁의 씨앗이나 뿌리면서 남을 비방하고 다니는 사람, 남의 말을 하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남을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남을 중상모략하며 알지 못하는 일에 자기 생각을 쓸데없이 말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다 무익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모든 말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이라고 다 말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말을 한번 지껄이다 보면 계속 지껄이지 않으면 허전해져서 또 지껄이게 된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병든 마음에서 나온 악한 습관이다. 이것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람의 다른 죄는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지만 무익한 말로 짓는 죄와 음행하는 죄는 그럴 수 없다. 그것은 음행은 몸 안에 짓기 때문이요 말로 짓는 죄는 되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그릇된 말을 거절하고 오직 정확한 말, 꼭 필요한 말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를 지녀야 한다. 우리는 자신과 남에게 무익한 말, 자신과 무관한 말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거짓말을 하며 쓸데없는 말을 하며 부주의하게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손에서 절대로 크게 쓰일 수 없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절대로 (마귀의 충동에 의한) 악한 말, 패역한 말은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살리는 말, 사랑의 말, 축복의 말만 한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 순간에는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며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벧전3:9-12)  

그리스도인은 악한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의 생명이 선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싸우며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상대가 악한 욕을 하면 좋다고 받아서 같은 욕으로 상대한다. 그러나 주님은 누가 먼저 그런 말을 했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우리가 악한 말,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그런 말을 했느냐 안했느냐만 주의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남이야 (내게) 무슨 말을 하든지 우리는 거기에 휘말려서 같이 악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언제나 아들의 생명에 맞는 좋은 말만 함으로써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어주는 하나님의 여유를 우리 안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주님의 생명은 우리로 육체의 욕구대로 다 말하지 못하게 통제한다. 나서기를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게 되면 틀림없이 거짓말, 무익한 말, 악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내 형제들아 많이 선생 되지 말라"(약3:1) 어디서든지 남을 가르치려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끼여들어 자기 생각을 늘어놓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악한 말로 사람들을 괴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  사람이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지의 여부는 그가 자신의 말을 통제할 수 있는 지의 여부에 달린 것이다. 自制 즉 굴레 씌우는 것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 철저히 훈련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말을 철저히 절제하는 사람이다.  

혀의 영향력은 말의 재갈과 같고 배의 키와 같이 사람의 전부를 좌우하는 엄청난 것이다. (약3:3-6) 그러므로 말을 적게 하기를 배워야 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0:19)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


셋째, 주님의 생명은 우리로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 생각을 강하게 말하거나 자기 뜻을 주장하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도리어 자기의 죄와 연약함과 실패를 말하며 그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에 대해 말한다. 말할 때 오직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를 힘쓰며 성령의 부담을 따라 말하거나 말을 자제한다.


넷째, 주님의 생명은 우리로 복음 진리에 대해, 생명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 안에서는 세상 이야기나 죽은(무의미한, 망해 가는 세계의 망한) 이야기, 남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다섯째, 주님의 생명은 우리로 화를 내거나 다투거나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하게 만든다.

주님은 누구와 싸우거나 길에서 소리가 들리게끔 큰 소리로 말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주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 아니었고 또한 그렇게 하실 필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말을 들을 사람은 조용히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해도 듣고, 안 들을 사람은 큰 소리로 말하고 강하게 말해도 안 듣는다.


여섯째,주님의 생명은 우리로 잘 말하기 전에 먼저 잘 듣게 만든다.  

말을 바로 하는 것과 아울러 남의 말을 잘 듣고 바로 듣는 것도 훈련되어야 한다. 그릇되고 무익한 말이 사라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듣는 자가 자기의 가려운 귀를 막도록 해야 한다. 교회에 수많은 불필요한 말과 거짓말이 돌아다니는 이유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하는 가려운 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말들을 자꾸 들어주다 보면 더 힘이 나서 그런 말이 더 풍성해진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쓸데없는 말을 할 때 자기 혼자 떠들도록 조용히 놓아두자. 그리고 받을만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은 합당치 않으므로 하지 말도록 합시다" 하고 권고하자. 교회의 수많은 잘못된 말들은 시작되자마자 총력을 동원하여 꺼야 하는 지옥불과 같은 것이다. 둘째, 더 나아가서 우리는 아예 귀먹은 자가 되어야 한다. (시38:13-14, 사42:19)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는데 우리의 입을 쓰며 형제의 입에서 나오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데 우리의 귀를 쓰는 외에는 우리의 입과 귀를 아예 쓰지 않는다면 세상에는 헛되고 무익한 말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악한 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는 지경에 이른 데는 그들의 귀가 잘못되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들, 자기를 좋게 말하는 거짓된 말들만 들은 것이 한 원인이 된다.

헛되고 무익한 말을 하는 것이나 귀가 가려워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언어 습관은 우리 육체의 본성으로 말미암은 뿌리 깊은 것이며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므로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철저히 주님의 생명으로 행하여야 하며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훈련을 통하지 않고서는 허튼 말과 혀를 제어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시편 141:3에서 다윗이 말한 것처럼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주님께 항상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말할 때 사탄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직 우리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생명을 좇아 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선하고 온전한 삶을 획득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다.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룰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사탄에게 속지 않는 것이다. 마귀의 일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붙어 있지 못하도록 분리시키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를 속여서 여전히 육신대로 살게 만든다. 그는 여전히 우리가 육신대로 말할 자인 것처럼 우리를 속여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머리를 붙잡고 자라가야 한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매 순간 바라보며 붙잡고 그의 승리와 그의 영광을 우리 것으로 누려야 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1-24)

바울은 우리가 받은 아들의 생명을 실제로 챙기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아들에게 합당한 진실한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강조함으로써 우리로 생명 안에서 행하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5-27)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일은 단순히 무익하고 거짓된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틈타 우리를 속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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