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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마13:3,7)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13:22)


뿌려진 씨의 비유에서 우리는 신자가 겪게 되는 서너 가지의 시험에 대해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마귀의 시험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자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핍박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생각해 보았으므로 오늘은 세 번째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말씀을 받은 신자에게 주어지는 세 번째 종류의 시험은 '생활에 대한 염려'와 '세상 재물과 영광에 대한 유혹'이다. 이 두 시험은 밖에서 오는 시험이 아니라 신자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시험이다. 씨가 자라서 큰 식물로 성장하려고 할 때 가시덤불이 그것을 가로막는 것처럼 마귀는 신자가 성장하여 결실하지 못하도록 신자 속에 왜곡된 마음을 불어넣는다. 마귀가 신자 속에 불어넣는 왜곡된 두 마음은 간단히 말해서 공포(두려움, 염려)와 탐욕이다. 염려라는 것은 마귀의 사망 권세에 굴복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공포의 표현이다. 그리고 탐욕은 사람이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눈이 어둡게 됨으로써 가지게 되는 잘못된 욕망(생각, 소망)의 표현이다.

생활에 대한 염려란 사람이 생존에 대한 염려 곧 죽을까 싶어서 하나님의 뜻을 제쳐놓고 삶 자체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재리(財利)의 유혹이란 육신의 즐거움 곧 재물이나 명예나 쾌락에 대해 지나친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시험은 기본적으로 믿음과 계시의 부족에서 온다. 세상 염려는 하나님이 그 자녀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고, 세상 영광에 대한 욕망은 영원한 영광에 대한 빛(계시, 확신)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다.
탐욕과 두려움,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삶에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과를 먹지 않고 그가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생겨난 결과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생명)을 듣지 않고 마귀의 거짓말을 들은 결과, 이 두 가지 잘못된 감정과 욕망(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항상 이 두 가지 왜곡된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 마귀는 항상 우리로 염려(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을 염려하게 만들며, 추구(갈망)하지 않아도 될 것을 추구하게 만든다.  

우리가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탐욕과 두려움은 잘못된(왜곡된) 것일 뿐 아니라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키를 한 자 더 키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고 해서 키가 더 자라는가? 또 키가 안 크면 어떻게 되나 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한 자라도 더해지는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25-32)

삶(을 유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다.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튼튼한 생명의 나무 줄기에 잘 붙어 있어야지 다른 일을 힘써서는 안된다. 삶을 잘 유지하려면 사람을 참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해야지 그것을 제쳐놓고 다른 일을 힘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7-10)

바울은 이와 같이 생활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사랑이 믿음과 반대되는 것이며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사탄의 올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사람이 이런 헛된 염려와 탐욕에 빠지게 되는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밝혔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


생명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잠4:23) 그러므로 마음을 단속하고 간수하는 것이 참으로 사는 길이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해야 관리해야 하는가?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바울이 먼저 말한 것은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이다. 즉 마음을 낮추라는 것이다.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자기의 약함과 사망(죽을 운명임)과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인생 곧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쳐두고 가야 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면 많은 일들을 꿈꾸거나 정함이 없는 일(재물)들에 소망을 두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연약함과 죄인됨으로 인해) 많은 일들과 많은 재물, 큰 세상 영광들을 만나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자요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범죄할 수도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쓸데없이 많은 일(영광)들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세계에 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 땅에서 즉 우리 육신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분명히 미래(마지막 날)에 가서 이루어질 부분들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현재의 삶은 이러한 미래적 소망을 이루기 위한 준비(연단)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준비는 구원의 준비나 사역의 준비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사역)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곧 우리의 거듭난 생명과 믿음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마귀의 공격은 계속 될 것이고 우리의 연약함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구원(생명)을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 같은 소망과 은사를 가진 형제들과 말씀 교제에 힘써야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울이 디모데전서 6:18,19에서 말하고 있는 바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며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마음)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라(나타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은 선행으로 자기 의를 나타내거나 그것으로 구원의 근거를 삼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차원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연약한 우리 마음을 간수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차원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선행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과정이요 결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하고 급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간수하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고 거기에 투자하는 것 즉 선한 일을 힘써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보전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진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스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환경 정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절대적으로 말씀 안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 안에 붙어 있으려면 말씀이 있는 곳(교회)에 붙어 있어야 하고 교제를 힘써야 하고 말씀을 실천하기를 힘써야 한다. 말씀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야 한다. 다른 것이 침범하면 결국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

씨가 떨어져 깊이 묻히는 밭,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좋은 밭이란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런 곳에만 씨가 깊이 떨어졌을 때 깊이 묻혀서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한 심령, 가난한 마음, 이것이 바로 좋은 땅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부딪혀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확실히 비춤 받아야 한다.


믿음의 세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기도 전의 초보적인 단계에서 진행되는 마귀의 시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마귀의 시험을 제외하면 신자가 일상 생활에서 항상 겪을 수 있는 중요한 시험은 환난과 핍박, 불신앙으로 인한 생활에의 염려, 세상 재물과 영광에 대한 유혹, 이 세 가지이다. 크게 보면 이것 자체가 다 환난이다. 우리가 마귀가 없고 시험이 없는 곳에 산다면 이런 것들은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이 그렇지 못하므로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피할 수 없고 다만 싸워서 이겨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행14:22,23) 바울은 자신과 형제들의 삶(미래)을 항상 주님께 부탁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理想)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온전할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이 능력이라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없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우리의 마음조차 지켜내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항상 주님의 은혜에 부탁한 것이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이것은 제자들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약속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신 후 주님은 곧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고 말씀하셨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주님은 분명히 베드로가 이길 것을 알고 계셨고 그가 형제들을 굳게 하는 지도자가 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것은 그의 운명이 하나님에 의해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이 진실하며 주님을 위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심지어 그가 주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22:33,34)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22:33) 이것이 신자의 마음이고 전도자의 마음이다. 바울도 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소아시아 여러 교회들의 형제들도 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 우리 중의 여러 사람들도 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제(능력)가 이 마음을 그대로 실행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13:38, 눅22:34) 이것이 우리의 실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기는 것은 오직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도 적지만 그 이기는 자도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약함과 실패 속에서 주님의 도움(생명의 능력)을 의지하여 이기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6장에서 신자들에게 진보(성장) 없는 신앙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6:4-8)

그러나 그는 형제들의 상태가 이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9-12)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왜 이런 경고를 했는가? 형제들의 상태가 제법 괜찮고 또한 어차피 교회라고 하는 것이 그 속에 성장하고 열매 맺는 사람 따로 있고 처져서 나가떨어지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라면 권면이나 경고를 하나 안하나 각자 제 갈 길로 갈 것인데 무엇 때문에 경계와 권면이 필요한가?
경계(경고)와 권면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경계와 권면은 소수의 앞선 사람들뿐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기는 자가 되도록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몇몇 사람만이 아니라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다가 마침내 약속(구원)을 누리게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라는 교회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신 것이다.(엡4:11) 그들로 형제들을 섬기게 하심으로써 교회 전체를 온전케 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만 승리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형제들이 다 이기는 자가 되도록 서로 돌아보고 가르치며 경계하고 권면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골3:16) 만일 소수의 신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자들이 진리에 무지하고 연약하여 범죄하며 그릇 행하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는 목표는 달성될 수 없게 되며 마침내는 교회 전체가 타락하게 될 수도 있다.

둘째, 이기는 사람 곧 성장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결실을 맺는 참 신자라 할지라도 경고와 권면과 격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사람은 저절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시험을 이기고'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이 겪는 모든 과정을 다 겪고 이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탁하지 않으면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 세상에는 반드시 구원 받는 자가 있고 구원 받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이기는 자가 있고 실패하는 자가 반드시 있게 된다. 비유를 조금 응용하여 적용한다면 가시덤불은 누구에게나 드리워질 수 있다. 다만 은혜 안에서 보존되는 사람만 그것을 뚫고 결실하는 것이다. 다 주님의 은혜 안에 항상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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