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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비유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밭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씨를 뿌려 놓으신 곳이므로 교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 마귀도 와서 거짓된 씨를 함께 뿌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일컬을 만한 참 교회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지상 교회가 이런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옳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따라서 교회는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주님이 가르치신 생각이 아니라 교권주의자들이 심어놓은 생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포함된 세상일뿐이다. 만일 교회가 참으로 하늘에 천국과 같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거처라면 위에서 말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회는 결코 전적으로 옹호되고 보전되어야 할 완전한 하나님의 집이 아니다. 그것은 계속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함으로써 거룩케 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6,27)

교회는 장차 거룩하고 흠 없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단장되어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교회는 지금은 흠이 많고 더러운 곳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심판되고 개혁되어야 한다. 교회는 옳고 완전하다고 칭송되며 옹호되고 보존되어야 하기만 할 곳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온전히 행하도록 단속되고 비판되고 정화되어야 한다.

세상은 아예 아무런 희망도 가능성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심판하고 개혁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결국 그대로 있다가 하나님의 최후 불 심판에 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비) 불 심판을 거쳐 정결케 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도록 단련될 필요가 있다.

밭에는 주인이 심은 곡식 종자뿐 아니라 잡초도 있다. 즉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참 신자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그 안에 있는 거짓 신자도 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교회라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신자들만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어느 새 잡동사니들이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시작한 사람들이 순수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룟 유다는 주님과 함께 시작한 자요 순수한 신자처럼 보였지만 나중에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이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당연한 일로 보신다. 세상에 마귀가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가라지를 무리하게 제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가라지를 그냥 두는 것이 좋거나 그대로 놔두어도 되기 때문이 아니라 가라지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곡식과 가라지는 그것들이 다 자라기까지는 외형상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곡식에서 가라지를 억지로 분리하려고 하다가는 곡식을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최후의 순간에 그것들을 가려내실 것이며 또한 신실한 종들을 통해 그 날이 이르기 전이라도 진리의 말씀으로 가라지들을 드러내고 제거하여 교회를 순전하게 보존하시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신다.

그리고 가라지를 무리하게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은 그런 일 자체가 사탄의 또 다른 올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잘 따라가는 것이지 세상을 없애고 개혁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도 있다.(요일3:8)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견고하게 세우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마귀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며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비를 가리는 일과 비판과 가르기와 싸움을 자꾸 하다보면 사람이 거칠어지고 악해져서 마귀의 의도대로 되고 말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그런 일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해 다 알고 계셨고 또 직접 피해를 보고 계셨지만 거기에는 관심을 두시지 않고 다만 자기 길을 갔으며 할 일만 하셨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헤롯당 사람들이 주님을 반대하며 대적할 때도 주님은 그들에 대해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 정도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 분명히 그런 자들에 의해 어지럽혀지고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몰두하셨던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은 그들과 시비하고 싸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세상에 뿌려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된다.

교회 생활이든 개인의 삶이든 내부적 혼란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 삶의 혼란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도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만 어느 때는 마귀의 거짓말과 독한 시기와 사특한 마음이 우리 마음을 흔든다. 이럴 때 우리는 그것들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제거하려고 해도 잘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제거했다 싶은데 나중에 가보면 다시 그런 것이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본다.
이러한 상태에 대한 주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내버려두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의 시선이 그런 데로 향하지 말고 주님 자신과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만 고정되도록 하여 그런 것들이 저절로 사라지게끔 만들라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가 되심으로써 유지되는 것이지 발에 무엇이 묻어 있는가에 의해 그 내용과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할 일은 주님으로 참 교회의 주인이 되시게 하고 그 말씀에 복종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주님의 생명(말씀)이 압도적으로 교회를 지배할 때 교회는 그 속에 아무리 많은 가라지가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된다. 문제는 교회에 (주님께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주님의 생명이 약화되고 진리가 분명하지 않게 될 때이다. 그럴 때는 마귀의 세력들이 교회를 지배하게 된다.

다만 한 가지, 교회가 분명하게 가라지에 대해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은 교회의 순결과 진리를 깨는 명백하고도 현저한 범죄 또는 그릇된 일이 교회 안에 나타났을 때이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1-6)

바울은 음행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쪽 구석에서 벌어지는 범죄일지라도 교회의 기치(旗幟)를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교회는 심판을 통해서 그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체가 무엇이며 우리의 길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때 교회는 주저 없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바로 알고 바로 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소한 속에 들어와 있는 거짓 세력들에게 거꾸로 영향을 받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진리의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악한 영과의 영적 싸움이지 정치적으로 편을 갈라서 정죄하며 사람과 싸우는 싸움이 아니다. 영적 싸움은 진리를 확실하게 하고 아들의 생명이 교회 안에 분명하게 나타나도록 함으로써 세상적인(가짜) 신자들이 견딜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아직 세상에 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싸움은 어떻게 싸우는 싸움이냐 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가라지를 뽑아버리려고 나서면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다. 가라지로 인해 괴로워하고 염려만 하는 것도 합당한 태도가 아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참된 길은 진리 안에 있는 자들이 더 주님 안에 견고히 붙어 있음으로써 모든 삶에서 더욱 진실하고 더욱 생명으로 충만케 되어 주님의 영광을 (교회 안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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