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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13:33)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13:34,35)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13:36-43)


마태복음 13:31-33에 나오는 두 비유 곧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그 앞에 나오는 비유인 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세 비유를 들은 후 오직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해서 주님께 질문을 했고 주님 역시 그것의 의미만 설명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이 비유의 의미만 이해하면 나머지 두 비유의 의미도 저절로 이해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겨자씨 비유가 말하는 것은 천국(교회)은 밭에 심겨진 겨자씨 한 알처럼 작게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큰 나무와 같이 거대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깃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가루 속에 넣은 누룩 비유 역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비유를 주님께서 교회의 외적 성장에 대해 말씀하신 것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실제로 교회는 크게 성장하여 세상 속에서 상당하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바가 과연 그것뿐일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모든 비유는 다 천국(교회)의 미래에 대해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 세상 속에서 천국의 전개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귀가 세상에 있고 그가 교회를 그대로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두 비유 앞에는 밭에 뿌려진 씨들의 비유 및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고 뒤에는 밭에 감추어진 보화 비유와 그물에 잡힌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의 비유가 있다. 이 앞뒤의 비유들은 모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교회는 세상에서 거대하게 확대될 것이며 크고 위대한 존재로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가? 그것이 아니고 사탄의 방해 공작으로 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어찌 보면 세상에 드러나 있지만 감추어진 존재로서 세상과 상관없이 자기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땅에서 전개되는 천국은 어둠의 세력들과 뒤섞여 그 정체성에 위협을 받으며 여러 가지 혼란을 겪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님에 의해 보존되어서 마지막에 그 영광스러운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이 여러 비유들을 통하여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이 두 비유도 그런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천국의 외형적 확장이 아니라 천국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곧 원수와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먼저 겨자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것은 앞에서 나오는 씨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약간씩 강조점이 다르다. 밭에 뿌려진 씨는 첫 번째(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지만 두 번째(알곡과 가라지) 비유와 세 번째(겨자씨)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뿐 아니라 그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 곧 말씀으로 형성된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세 비유 중에서 특히 겨자씨 비유에서 강조된 바는 그 씨가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즉 교회는 세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매우 작은 존재라는 사실이다.

겨자씨는 겨자의 씨이다. 겨자는 어떤 식물인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은 나무라고 불릴 수 없는 식물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풀 또는 채소이다. 어떤 사전에 보니 겨자는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겨자과의 2년초 또는 한해살이풀]이라고 되어 있고 다른 사전을 보니 겨자는 [배추과의 1년생 또는 2년생 초본식물, 키는 60cm - 1.5m 정도까지 자란다]고 되어 있다. 겨자는 상추처럼 생긴 잎을 가진 밭 식물로서 채소이지 결코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아무리 커도 커다란 나무처럼은 될 수 없는 초본(풀) 식물이다.

그러나 겨자 가운데는 특이한 변종이 있는데 그것은 겨자씨(향신료)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름을 얻기 위해 재배되는 것으로서 다른 식물들과 격리되어 혼자 자랄 때는 4m 내지 5m까지 자라며 새가 앉아도 될 정도의 강한 가지를 가진다고 한다.

이런 겨자가 있기 때문에 주님이 이 비유를 사용하실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겨자씨가 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이한 현상이고 비정상적인 성장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천국(교회)이 사탄의 방해를 받아서 비정상적으로 확대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겨자씨가 작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천국(교회)이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천국은 세상에서 매우 작은 존재이다. 이것이 세상에서 천국이 지니는 기본 특성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다. 그것은 결코 빛나고 거대한 세력이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처음부터 정해진 교회의 길이다. 교회는 가장 작고 가장 온유하며 가장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예정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결코 스스로를 감추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은 교회의 참 영광과 권세를 끝까지 보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세상 마지막 날 교회의 실상을 드러내시는 그때에 가서야 그것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그 날까지 교회는 세상에 대해 영원히 감추어진 존재로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교회의 실상은 겨자씨처럼 사람들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큰 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겼을까? 창세기 1:11,12에 나오는 창조의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은 각기 그 종류대로 열매를 맺게 된다. 채소는 언제나 채소이며 나무는 언제나 나무이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채소가 나무가 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하지 못하며 풀이 크게 자란다고 해서 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겨자씨가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일이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되기는 되었지만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겨자씨가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교회가 그 본래의 정체성을 잃고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무와 새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나무는 단4:2-22과 겔31:3-6에 의하면 바벨론(앗수르)의 권세와 주권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는 마13:4,9과 계18:2에 의하면 악한 자 곧 마귀나 마귀에게 속한 악한 영들, 또는 세상 죄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2)

"왕의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단4:20-22)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 거하였었느니라"(겔31:3-6)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 비유에서 말하는 나무는 세상 권세 곧 생명의 말씀에서 나오는 영적인 권세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물리적인 권세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는 그런 권세와 상관하는 세상 곧 사탄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죄나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을 적용하면 나무에 새가 깃든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대해 매력 있는 큰 세력이 되어 세상의 관심을 끄는 위치에 있고, 그 교회의 비정상적(세상적) 권세와 영광(매력)에 세상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이야기가 된다.

교회의 진정한 권세와 영광, 교회의 진정한 매력과 자랑은 '십자가를 거쳐서 나오는 부활 생명(영생)'이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요 생수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내놓았다. 그것은 교회가 도저히 내놓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영광과 권세 곧 세상 영광과 세상 권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교회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로 구성된 단체 곧 십자가를 거쳐 나온 자들의 단체요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들의 단체요 세상에 대해 죽은 자들의 단체의 지위를 벗어나 세상 영광을 하나님에게서 구하는 자들의 단체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것이 사탄의 작전이다. 사탄은 간교하다. 그는 씨를 삼키는 것만으로는 교회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단지 교회에 속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타격을 줄 따름이지만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비대화시켜서 새들이 깃들게 만들면 교회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교회는 이러하나 마귀의 획책으로 인해 거대하지마나 껍데만 남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간판은 붙이고 있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팔고 있는 것은 마귀의 상품이다.

계시록 18장은 바벨론에서 팔리고 있던 상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계18:12,13) 교회가 아니면 사람의 영혼을 사고 파는 곳이 어디 있는가? 물론 계시록에서 말하는 바벨론은 크게 보면 일반적인 세상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에 포함되지 말아야 할 교회가 거기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바벨론을 구성하는 구성원이 될 수 없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주님 당시에 세상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어야 하겠는가? 분명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로마인과 헤롯당 정도여야 했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이나 천국이나 약속과 상관없는 '정통' 세상 권세이다. 그러나 정말로 주님을 대적한 세상은 그들이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세상과 합하여 자기의 구주를 대적하였다. 왜 세상도 아닌 것이 세상 노릇을 했는가? 이것이 바로 마귀가 항상 하는 일이다. 마귀는 외부에서만 역사하지 않고 내부에서도 역사한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는 교회가 바로 이런 마귀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망하고 마귀의 의도대로 되어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채소의 뿌리는 기껏해야 10센티나 20센티 정도이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는 나무 줄기보다 몇 배나 더 길며 땅 속 깊이 뻗어나간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도 세속화 되어가고 있으며 세상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채소는 몇 개월 밖에 살지 못하지만 나무는 오래 오래 산다. 채소는 주인의 손 안에 있지 않으면 결코 존재하지 못한다. 관리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운명이다. 교회는 영원히 주님의 손 안에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금방 죽고 만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의 큰 나무처럼 스스로 오래 오래 사는 상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창세기에 나타나 있는 작고 가난한 채소의 상태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나무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교회는 이제 거창한 외모를 갖춘 나무가 되었다. 로마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이 죽었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으며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 200명이 조문을 갔다. 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가장 화려하고 세력 있는 구성원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에 왔을 때 그리고 죽고 부활했을 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오늘날 교회는 거대한 나무와 같이 세상에서 그 외형을 힘있게 드러내고 있지만 실상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회는 그 맛을 잃어버렸으며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참여하여 한 몫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주님이 영광과 승리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마귀가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게 보이는 길 가의 나무가 아니요 숨은 겨자씨와 같은 것이다. 교회는 숨은 보배이다. 교회는 본질상 세상에게 알려질 수 없는 단체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느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교회는 기본적으로 세상과 무관하다.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의 눈에 주목할만큼 보이지도 않는다. 교회는 오직 그 가치를 알아보도록 하나님에 의해 계시를 얻은 복된 자들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작은 상태, 즉 세상에 대해 작고 초라하고 감추어 있는 상태를 우리의 정상적인 상태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쁘게 여겨야 한다. 커지고 화려하게 되고 세상의 주목과 관심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상태를 간직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힘과 위대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으며 세상이 우리에게 몰려와서 세상 속에서 우뚝 서게 되기를 원할 필요가 없다. 세상 영광은 세상 것이며 우리 영광은 따로 있다. 우리의 관심과 소망은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에 있지 않고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가 우리를 알아주고 우리를 영접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알아보고 환영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다.

약간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우리의 소망은 우리 안에 즉 교회 안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존경하며 사랑하며 귀히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으로 지음 받았고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무궁한 생명의 능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작고 초라하게 보이는 지체들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의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알아보고 존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는 어차피 나그네와 행인이다. 세상에서는 의미 없는 존재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요 외롭고 고통 당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끼리라도 서로 격려하고 서로 위로해야 한다. 세상 영광을 가지고 서로 판단하고 서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교회에는 세상 영광 곧 세상에서 잘났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세상에 없는 하늘의 영광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서는 의미 없는 작은 것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지극히 크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가장 작은 자는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이다. 세상 영광으로 자랑하는 자이다. 세상에서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는 천국(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사울이 자신을 작게 여길 때 하나님은 그를 쓰셨지만 그가 자신을 높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으셨다. 그때 택한 자가 바로 가장 작은 다윗이었다. 작은 자, 적은 무리 이것이 바로 세상에게는 감추어진 교회의 영원한 지위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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