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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모든 비유를 마치신 후에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권세가 있어서 듣는 사람이 다 놀라며 그 지혜와 권능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분명한 말씀과 삶, 놀라운 증거(표적)들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외모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주님의 육신적 모습(외모, 외형)이 그들의 기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주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그의 외모와 관련된 것이다. 주님의 외모는 유대인들의 기대에 너무나 맞지 않았다. 그는 메시야로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출신 성분이 좋지 않았으며 너무나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유대교 지도자들은 대체로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고향 사람들 역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주님을 배척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과 표적을 보았지만 단지 주님을 인간적(육신적)으로 잘 안다고 하는 사실로 인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님을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하는 사실이 주님을 남보다 더 친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지 않고 도리어 배척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해 근거 없이 신비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그리스도)이라면 사람이 아니거나 만일 사람이라면 감히 짝할 수 없는 출중한 (육신적)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젊고 초라한 주님이 어찌 사람들에게 메시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는가? 아니, 주님이 상당히 좋은 외모를 가지고 나타났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은 그를 이리저리 재보다가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천사처럼 육신을 입지 않은 신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누가 와도 수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는 주님의 행동(일)과 관련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크게 걸림이 된 것은 주님이 안식일에 일(善行)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사람이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들은 주님이 이런 말과 행동을 했으니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메시아)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님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생명을 따른 것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었지만 사람을 생명(인격)으로 판단하지 않고 형식적인 의문(儀文) 율법)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태도 역시 생명으로 판단하지 않고 외모로 판단한 것이다.

주 예수님만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다 이러한 대접을 받는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후10:7) 이 말씀은 바울도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님이 당하신 것처럼 배척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외모로 판단하여 거절하고 배척한 이 일은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를 던져준다. 첫째는, 오늘 우리는 과연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따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둘째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님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배척을 받았는지 그 과정과 주님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셨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대로 살지 않고 또한 사물(사람)을 육신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사람을 육신대로 알 때(판단할 때) 우리는 그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게 된다. 육신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결국 감추어진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하늘)께 속한 모든 것은 오직 영으로만 알 수 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9-14)

사람을 육신대로 안다는 것은 사람을 외모(외형)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런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자들에게 보화로서의 그의 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만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주님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1-3)

하나님은 왜 세상의 구원자(그리스도)를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셨을까?

첫째,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행10:34, 롬2:11)
둘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판단하지) 않고 영으로 판단하며 속의 생명을 따라 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세상에 예비해 두셨으며 오직 그들만 그리스도를 취하여 그와 연합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택함 받은 복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자들이다.

외모(외형)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잘 나고 못남, 많이 배우고 못 배움, 많이 가지고 못 가짐, 많은 일을 해 놓고 해 놓지 못함 등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이러한 외형을 보시지 않고 오직 그 생명(인격)과 생명에서 나온 행위(진실한 행위)를 보신다. 하나님이 보시는 외형은 오직 생명의 열매(표현)로 나온 행위뿐이다. 그러므로 행위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진실한 행위라야 한다. 하나님은 행위의 겉(외모, 결과, 꾸밈)과 속(실제, 동기, 과정)을 구별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사물을 대할 때 이러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약2:1)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을 조금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창기와 세리도 주님으로부터 똑 같이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원수들조차 인정하였다.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막12:13,14)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주님의 원리에 따라 행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을 때도 주님의 원리를 따라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
이런 원리에 따르면 사람들이 우리를 육체로 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육체로 인해 우리를 좋게 말해도 우리는 그것을 기뻐해서는 안되고 반대로 나쁘게 말해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 비유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바로 밭에 감추어진 보화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는 분명히 세상에 공개적으로 오신 분이요 세상에다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신 분인데 왜 밭에 감추어진 보화라고 되는가? 그것은 그의 외모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체적 초라함이 사람들의 구원에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역사하신다. 우리를 세상에다 드러내실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다 드러내시지만 한편으로는 감추신다. 우리는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즉 우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감추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때로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할 때에라도 서운하게 생각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0-27)

가장 권능을 많이 행한 고을들이 가장 크게 회개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천국을 받아들였어야 하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이 일에 대해 주님은 처음에 실망했으나 곧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고 평안할 수 있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요6:60-70)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3-17)

누가 감추어진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여러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며 끝까지 따를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가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1-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그는 보화지만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자들에게는 감추어진 존재이다. 그러나 이 계시를 가진 사람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주님을 끝까지 따르게 된다. 이 계시를 가졌던 베드로는 배신과 방황 후에도 결국 주님을 다시 따를 수밖에 없었고 또한 같은 계시를 가졌던 바울 역시 그 계시로 인해 많은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었다.


특히 요한복음의 여러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이유로 배척되었으며 또한 주님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요2:23-25)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13-26)

주님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때도 그것이 주님의 생명(진리의 말씀, 천국 복음) 때문이 아니라 외모(병 고치고 떡을 주는 행위와 능력) 때문임을 아시고 그들에게 자기를 의탁하지 않으셨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들은 결국 외모로 인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중에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십자가를 지게 되자 주님을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즉각적으로 버렸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1-38)

주님은 세례 요한의 (주님에 대한) 증거조차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런 것에 의지하여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속의 생명(의 판단)으로 주님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39-44)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사람(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결코 그리스도를 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광(영광스러운 외모)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 모든 사람의 영광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가 자기들을 부정하며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님은 사람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며 심각하게 추구하는 것들(세상 영광)을 결코 옹호하거나 인정하지 않으신다. 도리어 그 모든 것들을 허무한 것으로 돌려버리신다. 그는 오직 하늘(아버지)로부터 오는 참 영광만 추구하셨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자기를 부정하며 자기들의 세계를 버리려고 작정하지 않는 한 절대로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7:11-17)

누가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가 알아본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만이 주님의 말씀이 (그의 초라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권세 있는 자의 말씀이며 진실한 것임을 알아본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요7:21-32)

주님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 자체가 유대인들에게 걸림이 된 궁극적인 사유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기들로 필요에 따라 그런 일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님의 외모가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 영광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요7:33-36)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21-23)

하나님 또는 진리의 말씀을 아는 지식(계시)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어디서 났으며 어디에 속했는가 하는 것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초라하지만) 진리를 따라 행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영원히 그리스도를 찾다가 자기 죄 가운데서 죽고 말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3-27)

주님은 결코 자기를 감추시거나 모호하게 밝히신 적이 없었다. 그는 분명하게 자기를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드러내셨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말씀(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다. 그러나 다수의 유대인들은 주님에게 정체를 드러내라고 다그쳤다.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가 있는 사람만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은 영원한 원리이다. 이 말을 듣는 모든 형제들에게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지식과 계시가 충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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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형 제 (마12:46-50) / 2005. 4. 10 이상봉 2010.04.30 3793
104 주님의 형제와 자매와 모친 (마12:46-50) / 2005. 4. 3 이상봉 2010.04.30 3638
103 빈 집 (마12:43-45) / 2005. 3. 27 이상봉 2010.04.30 3735
102 신앙과 표적 (마12:38-45) / 2005. 3. 20 이상봉 2010.04.30 3859
101 생명과 열매 (2) (마12:33-37) / 2005. 3. 13 이상봉 2010.04.30 3594
100 생명과 열매 (1) (마12:33-37) / 2005. 3. 6 이상봉 2010.04.30 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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