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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이를 살리시고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신 의미]

주님이 가버나움에서 무리들에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 한 사람이 찾아와서 주님께 자기 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와서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마가복음 5:22(눅8:41)에 의하면 이 사람은 가버나움 회당의 회당장인 야이로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죽어가던 딸은 12살 소녀였다.

주님이 그 요청을 받아들여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고 있을 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불쌍한 여인이 주님의 뒤로 와서 겉옷을 만지는 일이 생겼다. 주님의 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주님은 이 두 사람을 다 고치셨다. 병중에서 주님을 기다리다 죽어버린 그 아이는 다시 살리셨고 자기의 옷만 만진 여인도 영혼과 육체를 온전케 하심으로써 구원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이 역사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먼저 이 둘이 다 이스라엘 사람임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 등장한 두 사람(회당장과 딸 그리고 혈루증 걸린 여인)은 다른 곳에 등장하는 두 사람과 비슷하다. 즉 여기 나오는 회당장은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믿음 있는 백부장과 비슷하고 여기 나오는 병든 여인은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 곧 주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을 다니시다가 만났던, 귀신 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나왔던 여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들과 여기 나오는 두 사람의 차이는 앞의 두 사람은 다 이방인이고 여기 두 사람은 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둘이 다 12년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는 듯 하다. 회당장의 어린 딸은 12년 동안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병든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流出症)으로 그리고 엉터리 의원들로 고통을 받아왔다.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에서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그러므로 12년이란 것은 '찰 만큼 찬' 기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실제로는 전혀 생명이 없고 도리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은 마치 그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병들다가 죽어버린 소녀와 같이 그 존재 목적(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12살에 죽은 소녀는 결국 죽기 위해 12년을 산 것이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으니 그 동안 산 것은 죽기 위해 살았다고 하거나 병으로 고생하려고 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결국 이스라엘의 상태가 심히 위중하다는 것이다. 이 두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병과 사망이 찰 만큼 찼다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피가 밖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생명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말씀이 없고 순종이 없고 찬송과 기쁨이 없는 사회는 혈루증(유출증)에 걸린 사회이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했다면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치료하실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실제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기력했고 부정(不淨)한 채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질적이고 절망적인 증세를 제대로 고칠만한 의원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많은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지만 결국 힘만 탕진하고 효력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때에 참 생명의 주요 참 의원이신 주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완전하게 치료하고 회복시키신 것이다.


마태복음 9장의 이 기사는 마가복음 5장에서 훨씬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그 기사를 참조하여 의미들을 하나 하나 새겨보도록 하자.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 있음]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5:22,23)

이 회당장은 주님을 진실로 믿었지만 백부장과 같은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백부장은 주님이 집으로 오실 필요도 없고 다만 말씀만 하시면 즉 원하시기만 하면 즉각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회당장은 주님이 오셔서 손을 아이에게 얹어주시기를 원했다. 이것은 무언가 하나님이 자기 눈에 보여지고 느껴질 만한 역사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믿음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보지 않고도 즉 다만 약속과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9-11)

때로 하나님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금방 느끼도록 역사하기도 하신다. 그것은 연약한 사람을 배려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애걸하거나 설득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주권자로서 다만 자기가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실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고 치료하시는 것은 그가 그들을 택하여 자기 자녀로 삼기를 기뻐하신 때문이지 사람에게 무슨 빚이 있거나 사람에게 어떤 득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택하신 자들을 오직 자신의 정한 뜻과 정한 방법에 따라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은 택한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으로 그의 약속과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말씀에 무심하거나 불신하거나 시험하거나 막연히 기다리는 중에 일방적으로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에게 그의 약속과 말씀을 알려주시고 그런 다음 그 약속과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의 약속의 말씀을 인내하며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지식으로 금방 다 이해가 되도록 무슨 육신적 감각적 현상을 바라서는 안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오래 참고 먼저 하나님의 뜻과 신실하심과 능력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신다.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막5:24-28)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으며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허비했다는 이 여인의 불쌍한 형편은 그리스도 없는 인생의 무거운 수고와 고통을 대변해준다. 사람이 어리석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팔을 벌리고 구원을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셔도 그것은 맨 나중에 찾는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을 다 해 본 후에 안 되면 그때 그것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사는 자의 특징이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습관 때문이다. 사람은 동물이 아니고 영이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의지하지(신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의지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4:46-48)

그러므로 이 여인의 믿음이나 백부장의 믿음이 회당장의 믿음보다 돋보이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주님과의 은밀한 접촉]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막5:29-31)

사람들은 겉만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보시며 속을 보시며 능력을 보신다. 많은 무리들이 에워싸 미는 것과 믿음의 사람의 믿음으로 주님을 만진 것을 다른 사람들은 분별할 수 없을지라도 주님은 분별하신다. 그리고 주님뿐 아니라 주님을 만진 당사자도 주님의 능력이 자기 안에 역사한 것을 느꼈다. 언제나 참된 교제는 두 사람 안에서 생명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변만 만지다가 변죽만 울리다가 끝나는 교제는 참된 교제가 되지 못한다. 주님과 기도할 때,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주님의 인격이 우리 안에서 만져지고 체험되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2-34)

주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아온 문둥병자나 지붕을 뜯고 내려온 중풍병자를 대할 때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즉 "안심하라, 평안하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주님은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를 어떤 사유로든 거부하시지 않는다.


[믿음의 바탕 위에서만 사역이 이루어짐]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5:35-43)

주님은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불신 속에서 그 사역을 행하셔야만 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님의 사역을 가능하게 만든 그들의 믿음을 발휘했다. 믿음은 주님의 사역의 바탕이다. 죽은 아이가 누운 방으로 들어갈 때 주님은 오직 세 제자와 그 부모만 대동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역사가 불신자들의 영적 훼방 속에서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믿는 자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보존되고 확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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