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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이적을 행하신 후 주님은 다른 지역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 가는 길에 소경 둘이 주님께 나아와서 치료를 구했다. 그들은 주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며 구원을 요청했다.

마태복음 20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마20:29-34)

이 소경들에게는 공통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구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집요하게 주님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주님을 구약에서 약속된 그 구원자(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소경들은 하나님의 약속(구원)을 믿었으며, 또한 (눈으로 아무 것도 본 것이 없지만 - 소경이니까) 오직 들은 소문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었다. 이것은 큰 믿음이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큰 믿음이며 작지만 큰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지금 행하시는 일'을 믿는(인정하고 수납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요체이다.  

주님의 고침을 받은 그 소경들은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이러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분명하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 그 약속을 따라 예수 안에서 펼치시는 현재적 구원을 단지 소문만으로 믿었다.

소경의 구원에서 우리가 하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영적 지각은 육신의 눈과 귀가 성하고 육신의 머리가 성하다(총명하다)고 반드시 밝고 선명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밤에 소리가 잘 들리는 것은 사물이 어두워져 시각 기능이 줄어들고 청각 기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두 정보가 동시에 작용하면 사람의 생각은 혼란을 겪는다. 소리는 청각 하나만 작용할 때 선명하게 포착이 되는데 시각이 동시에 작용하니 뇌의 판단력이 분산되어 판단이 잘 안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로 인해 소경은 정상인에 비해 소리를 일반적으로 더 잘 듣는것이다.

육신의 능력(기능)이 뛰어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듣고 더 잘 순종할 것 같지만 경험으로 볼 때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많고 귀로 듣는 것이 많고 머리를 잘 굴려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활발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육신적 작용에 의해 받아들여진 다른 많은 정보(사탄의 거짓말, 육신의 생각)에 가려서 잘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오늘 여기의 두 소경이 소경이었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은 아니며 소경이었기 때문에 구원 얻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육신적으로 볼 때 그들이 소경이었기 때문에 불리한 점은 전혀 없었으며 도리어 유리하였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일반 생각(상식)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없고 오직 육신으로 사는 이 세상뿐이라면 소경이 된 것은 그만큼 불리한 것이고 귀머거리 벙어리라면 그만큼 불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과 육신은 다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온다는 사실과 거기에 들어갈 자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자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눈이 성하고 귀가 성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서 주님 외의 온갖 것들이 다 들어오고 세상 영광과 아름다움이 그 속에 가득하게 되는 사람보다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주님 외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사람이 훨씬 육신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영적 눈은 성할수록 좋다. 그러나 육신적 눈은 어쩌면 성하지 않을수록 좋다. 너무 많은 것이 보여서 그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그 마음이 세상에 빼앗기게 되는 것보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한 소경이 안식일에 주님의 치료를 받아 눈을 뜨게 된 후 바리새인들에게 불려가서 심문을 당하게 되었다.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 내어 보내니라"(요9:16-3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이 행하시는 명백한 일을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그러니 이것이 진짜 소경이 아닌가? 소경이었다가 나음을 입은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 말대로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자란'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님이 하신 일을 보고서 적어도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성한 눈과 많은 지식,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은 주님을 끝까지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생명의 구원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육신의 성하고 약함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39-41)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육신의 기능이 약화되고 제한됨으로 인해 절망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간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소망을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어쨌든 소경은 그 믿음으로 주님께 구원을 받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그들의 정성을 보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을 베푸셨다는 사실이다. 소경이 구원을 얻은 과정을 보면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고 주님에게는 그들을 불쌍히(민망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단지 그들의 정성과 열심을 보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며 또한 단지 그들을 긍휼히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신 것도 아니다. 소경들에게는 낫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고 주님께는 죄인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을지라도 그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만일 그것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세상 모든 죄인(병자)들이 다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믿는 자 곧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에게만 나타난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모든 문제 해결의 근원임을 믿고 하나님께로 실제로 나아오는 것이다. 주님은 소경들의 태도에서 그러한 믿음을 보셨다. 그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긍휼)을 입은 자임을 나타낸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 일 후에 주님은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셨다. 우리는 여기서 소경과 귀신들려 벙어린 된 자를 고치신 주님의 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둥병자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형편을 나타내는 것이고 중풍병자가 생각은 뻔하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 이스라엘의 마비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여기 소경은 영적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된 이스라엘의 형편을 나타내는 것이며,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는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 입이 막혀버린 이스라엘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4,6)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이스라엘은 눈이 멀어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없는 소경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거나 그의 말씀을 증거하거나 그를 찬양하는 능력을 상실한 벙어리였다.

때가 차매 이러한 이스라엘을 치료하러 그리스도가 오셨다. 이것은 이사야를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5,6)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든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영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하여 하나님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7,18)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의 눈이 열려 그 영적 소경됨을 면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귀신들린 벙어리는 쓸데없는 말은 많이 하지만 꼭 해야 할 말은 못하는 죽은 신자를 나타낸다. 말 못하는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거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 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1-3)

꼭 해야 할 말이 무엇인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18-20)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감사와 찬양과 형제를 사랑하여 위로하고 세우는 말이 바로 꼭 할 말이다. 귀신이 들려 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말을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소경과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치료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치유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 놓으신 사람들 곧 그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믿음으로 열려 있고 그리하여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사람들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6:9-13)

단순한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주님을 믿지 않고 그의 모든 사역을 폄훼하며 거부한 자들도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혈루증 앓던 이 여인이나 두 소경처럼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역사를 영접할 수 있도록 예비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보게 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두려운 일이다. 우리 안에 이러한 믿음, 이러한 마음, 이러한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복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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