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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받은 자(전도자)의 사역 내용과 태도 ]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10:6-10)


1.천국을 전한다. 즉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전파한다.

이 세상에서의 복된 삶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새 세상에서의 복된 삶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곤고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에서의 삶을 회복하고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전도자의 할 일이 아니다.

이 세상 삶을 말하지 않고 천국의 삶을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의 영적 삶을 회복시키고 육신적 생활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니다. 천국의 삶에는 육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면 세상에서의 생활도 보장된다. 그러나 그것만을 말하거나 그것이 주된 것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만을 말하라면 (삶은 빼고) 그리스도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은 빼고) 천국만 말해야 한다.


2.천국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사람들의 육신적 형편을 불쌍히 여기며 돌아본다.  

하나님의 생명은 사람을 전인적으로 구원한다. 하나님의 생명은 사람을 전체적으로 만족케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육신적 삶도 어느 정도 회복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이 이 세상에서 육신적 삶이 완전하게 회복되고 만족될 수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궁극적인 구원은 죽은 후 주님의 재림 때 부활로 말미암아 몸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것임을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 육신에 어느 정도의 구원을 이루신다. 천국을 맛보게 하기 위해 땅에서의 삶을 어느 정도 돌아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도의 육신적 삶을 돌아보시는가? 그 한계는 명확하다. 천국을 믿고 누리도록 하는데 필요한 만큼이다.


3.천국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여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 때 반드시 거저 베푼다.

이것은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그리고 은혜의 때, 은혜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태도이다. 천국은 사람의 자격과 조건으로 사는 세계도 아니고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사는 세계도 아니다. 천국은 아버지의 생명으로 사는 세계이다. 곧 천국은 은혜로 사는 세계이다. 언제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모든 풍성한 것을 거저 주신다. 자녀들은 언제나 그것을 거저 받아서 다만 누릴 뿐이다. 모든 것은 근원은 풍성하신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과 풍성함이다. 하나님은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아서 언제나 넘치도록 주실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은 은혜로, 거저 주신다. 자격과 조건은 단 한 가지뿐이다. 생명 안에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들로) 지음 받았다는 그 한 가지이다. 자녀이기만 하면 당연히 거저 받는 것이다.

전도자는 반드시 이것을 유지해야 한다. 이 간증, 이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오해되며 천국은 전파되지 못한다. 세상의 원리는 언제나 받은 만큼 준다는 것이다. 일한 만큼 받고 준 만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그렇지 않다.


4.생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서 일한다.

일하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할 필요는 없으며 일하는 동안 그 필요를 충당하기 위해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에게 빚을 지거나 해서는 안된다. 일은 하나님이 시킨 것이며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군의 생활 책임은 하나님과 일의 대상인 그 사람들이 지면 된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먹이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나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은혜를 입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일군의 필요를 채우게 하신다.


5.하나님이 미리 택해 놓으신 자를 찾는다.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0:11-15)

하나님은 이미 어떤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봉사 도구로서 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복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를 천국 건설을 위한 전진 기지로 삼아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만일 조금이라고 거북하게 생각하거나 마음이 없다면 절대로 그런 사람을 의지하거나 의탁해서는 안된다. 전도자는 어떤 경우에도 세상에 도움을 청하거나 세상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마귀 또는 세상에게 빚지게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으실 필요가 없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갖다 쓰실 수 있다. 그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하나님은 (그 예비하신 자녀들의 섬김만으로써도) 얼마든지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일에 인색하고 하나님의 것을 불법으로 제 마음대로 쓴 사람들은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육체든)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것을 억지로 갖다 쓰시지 않는다.


6.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위해 일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바로 이것이다. 전도자란 그리스도가 사람의 길과 진리와 생명임을 전하는 자이다. 이것을 온전히 전하려면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생명 되심과 모든 것 되심을 깊이 체험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과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주님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하고 영광스러우며 그만이 우리의 참 생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르면 주님을 절대적으로 위할 수 없다. 다만 주님이 좋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를 목숨보다 가족과의 관계보다 더 위할 수는 없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이 그때 천국 건설을 위해 그렇게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일할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내 육신의 일이 급한 것보다 몇 십배 몇 백배 하나님의 일이 더 급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일군들을 많은 세워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접 주위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 곧 함께 천국 백성이 되고 천국 건설을 위해 협력할 동역자들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건져 하나님의 나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할 일군으로 삼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다. 이것은 우리의 계획과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필요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가서 전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반드시 이 일이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밭의 익은 곡식들을 반드시 수확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밭은 그의 밭이고 일은 (우리 일이 아니라)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추수할 일군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큰 특권이고 영광이다. 그러므로 부름 받은 자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자는 일할 때 절대적으로 주인의 뜻에 따라야 한다. 일군을 어느 자리 어느 사역에 배치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대로 나가서 일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보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사람을 가장 적절한 곳으로 보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 일군을 보내달라고 구할 때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과 가장 적절한 사람을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곳으로 보내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불평과 원망과 낙심에 빠지지 않게 된다.



[보냄 받은 자(전도자)의 권세]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0:11-15)

세상에서 신자의 위치는 하나님의 보냄 받은 자의 위치이다. 신자는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신자의 권세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권세이다. 그러므로 영광도 굴욕도 하나님이 세상에서 받는 것과 똑 같이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에게 복을 주거나 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 개인의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복을 주거나 화를 줄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화를 내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은 사람들의 생명을 온전케 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우리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거절하는 자는 이미 그들(세상) 위에 드리워져 있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면치 못하고 그대로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역할 때 자부심과 담대함과 엄중함과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자부심과 담대함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과 함께 하심에 의한 사역자라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고 엄중함이란 우리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 살아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최종적인 권세를 행사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어느 때의 권고를 받지 않고 우리를 멸시하거나 거절할 때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 기회였다면 그는 그것으로 심판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시지 않는다. 오직 그가 보내신 자들로 역사하신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가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제자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서 말씀을 전파할 때 그들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0-42)

이러한 사실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나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역과 존재의 위치의 엄중함으로 인해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말을 어떤 사람이 듣지 않으면 그리고 다시 그가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이름으로 영원한 저주와 멸망을 받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이름을 일컫는 것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 자리에서 우리의 말을 거절한 그 사람에게 "너는 아무 날 아무개의 권고를 거절했으므로 멸망이다" 하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명제이며 책임생산제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가운데서 그리고 반대로 생명을 구원하는 것에 대한 큰 기쁨과 기대를 가지고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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