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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삼가함]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마10:17)

삼가라는 것은 조심하라는 말이다. 사람을 함부로 믿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모든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이 아니고 어떤 미덥게 보이는 사람 곧 무언가 내게 도움이 될 것 같고 의지가 될 것 같은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을 삼가라는 것이다.

주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분명히 내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도리어 사탄의 도구가 되어 나를 박해하고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에 능하고 하나님을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섬기는 자들이었으므로 형제처럼 보인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들을 형제로 신뢰하여 협력을 요청하거나 의지할 수도 있었다. 주님은 이것을 경계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과 아울러 영적 선배들의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불신하거나 미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이를 알리요"(렘17:5,9)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하나님이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세상에 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우리가 사람을 믿고 의지할 때는 단지 그 사람을 신뢰하고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으로 바로 연결되어 버린다. 나는 단지 사람과의 관계를 가졌을 뿐인데 왜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로 이어지는가? 사탄이 거기 개입하기 때문이다. 사탄은 항상 우리 뒤에 도사리고 있다가 우리의 모든 일에 개입하여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를 깨려고 한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그때 그 말씀을 하신 이유도 동일하다. 바로 마귀가 우리로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사주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택하면 곧 저것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단지 이것을 택했을 뿐인데 그것은 곧 저것을 버리는 것이 되도록 마귀가 중간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세상의 법칙이다. 마귀가 사람들을 사주하는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영적인 것과 무관한 일은 없다. 나는 단지 사람을 의지했을 뿐인데 그것은 얼마가지 않아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는,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삼가야 한다. 어차피 끌리지 않고 미덥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의지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사람이 무언가 미덥고 도움이 될 것 같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다.

사실 그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자신이 악하거나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고 그릇 행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도 삼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우리는 형제들과 함께 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형제들과 함께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하고 어떤 사람을 삼가야 하는가? 무슨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면 된다. 성령님은 우리를 합당한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도록 인도하시고 멀리해야 할 사람은 멀리하도록 적절히 인도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도 한 가지 원칙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가까이 할 사람은 우리의 소망과 믿음을 이해하고 동조하며 그 까닭으로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은혜를 보고 그것을 사모하여 우리에게로 나아오는 사람은 우리의 형제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붙인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다만 이런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따라가면 된다.

상대방이 우리를 영접하고 환영하는 것 말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사람을 분별할 때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사람을 분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외형을 보지 말고 마음(생명, 인격)을 보아야 한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가 육신적이고 외형적이고 선악적 판단에 익숙해져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을 뽑혔을 때 그는 인물과 체형이 매우 준수한 사람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그를 만족스럽게 여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었다. 이스라엘은 모두 낙방한 것이다. 나중에 사울 다음을 이을 왕을 뽑기 위해 사무엘이 이새의 집으로 갔을 때 어떤 상황이 드러났는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 사무엘마저 사람의 외모를 본다는 사실을 드러났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때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중심을 본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성령 안에서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판단하려 해도 잘 안된다.

그런데 성령의 판단 기준이 바로 다름 아닌 사람의 중심(생명) 곧 사람의 마음과 인격을 보는 것이다. 결국 주님을 반대하고 주님의 일을 대적할 악한 자들은 그 인격과 삶에서 반드시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꼭 인간성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식으로 해서 사람은 좋은데 영적 감각이 둔하거나 고집이 세거나 생각이 꽉 막혔다거나 하는 것은 다 그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이다. 진리를 향해 그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것이며 그 마음이 부드럽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형제라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 외에는 모든 사람을 다 기피하거나 어울리지 말아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혹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가지다가 일이 잘못되어 물려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을 모든 상황을 예측하시고 그 가운데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난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원수와 대적들일지라도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핍박과 방해를 도로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하신다.  


예상대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주님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극렬히 반대하며 박해했다. 만일 제자들이 그들을 신뢰했다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신 후에도 유대교 지도자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고 그들과 협력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은 그들이 사탄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하게 되기 전까지는 쉽게 알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 안에서 낭패를 당하기 전이라도 항상 '사람을 조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에게 무언가 선한 것을 기대하는 것도 잘못된 태도이지만 세상의 체질과 성향, 세상의 위험성을 모르고 세상에서 함부로 조심 없이 어떤 일을 하려고 나서는 것도 잘못된 태도이다. 또한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육신적 재능을 따라 일을 하려고 나서는 것도 매우 잘못된 태도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다 주의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결국 낭패를 가져온다.


[신자의 능력]

그렇다면 우리의 일의 수단, 무기는 무엇인가? 신자의 무기는 성령님의 함께 하심과 아울러 진리와 거룩으로 무장한 것이다. 세상은 강하고 굉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마귀의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므로 매우 허약한 것이다. 모든 거짓은 결국 진리(진실) 앞에서 다 무너지고 만다. 그러므로 진리가 힘이고 진실이 힘이다. 우리가 항상 진실하지 않다면 즉 진리 위에 서 있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세상을 이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안에 진리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힘도 없는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진리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돈과 무력과 조직력이 있었다. 그러나 진리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결국 지고 말았다. 그들은 주님을 터무니없는 거짓 증거로 모해하며 음모를 꾸며서 주님을 억지로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된 행동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 그들의 거짓되고 무리한 행동들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려 이스라엘 안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민중들의 소요를 막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것은 결국 로마의 공격을 불러왔고 결국은 자신들과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다.


진리가 없는 그들은 주님의 진실함과 거룩함과 지혜의 말씀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의 흠 없고 거룩한 삶을 결코 감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이기지 못함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과 심지어 자신들의 양심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는 무리한 일(거짓 증거와 협잡과 살인)을 억지로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의 완전한 실패를 스스로 나타낸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승리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참담하고 완전한 실패를 했다.

세상은 결코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며 진리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능력은 성령 안에서의 지혜와 진실함이다. 다시 말하지만 진실이 우리의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우리의 힘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10:28-31)

누가복음 12:6에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참새 다섯 마리의 값이 두 앗사리온이라고 되어 있다. 마태복음 10:29 말씀과 연결해 보면 참새 한 마리의 값은 1/2 앗사리온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두 앗사리온에 팔린 참새 5마리 중 한 마리는 덤으로 끼워준 것이다. 덤으로 팔린 인생! 이보다 더한 싸구려 생명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값싼 참새의 생명조차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이러한 참새조차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잊어버려지지 않는다.(눅12장 참조) 하물며 하나님의 영광을 한 몸에 받고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랴?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곧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귀히 여기시는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위하시는지를 알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땅을 다스리며 우리 안에서 안식하시며 우리로 당신의 영광을 도모하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보호하시며 위하신다.

사람이 자기를 영화롭게 만드는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 영화롭게 되려고 하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가 없는 것이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의 목적 안으로 들어간다면 사람은 그 자체로서 벌써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가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지켜 보호하시며 그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써 항상 담대할 수 있다.

 
우리의 또 다른 힘은 부활 생명이다. 부활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는 말씀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안에는 죽음의 위협을 이기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힘이 어디 있겠는가? 마귀는 이런 사람을 도저히 굴복시키지 못한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부활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세상에 매이지 않는다. 이 마음, 이 여유가 바로 우리의 힘이다. 우리의 담대함은 마음의 자유에서 나온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를 위해주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 우리를 알아주고 지지하는 분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곳에 여기보다 훨씬 나은 삶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자유하며 세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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