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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시험이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10:21,2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32,33)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4-36)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39)

이 말씀들은 전도자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미움을 받게 되는 일이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고난보다 큰 고난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의 배경에는 사탄이 있다.

사탄은 언제나 사람의 육신적 연약함을 이용하여 공격(시험)한다. 먹고 마시며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이용하여 유혹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부유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이용하여 유혹한다. 그러나 그런 것에 걸려들지 않는 사람에게 써먹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것이 인정(人情)이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살도록 지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함께 어울려 교통하며 살아가도록 지어진 것이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마귀는 바로 이 점을 가지고 전도자를 시험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꺼리게 만들고 멀리하며 미워하게 만듦으로써 신자로 하여금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누리지 못하게 하고 외로움의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것은 큰 시험이다. 주님과의 관계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더 명확하고 깊지 못하면 누구든지 이 시험을 이기기 어렵다. 진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주님의 구원과 돌보심에 대한 확신, 그리고 주님이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믿는 믿음, 주님이 그 능력으로 결국 모든 상황을 다시 온전케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이 시험을 이기기 어렵다.

모든 상황의 조성을 통해 사탄이 의도하는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 생활과 현재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진리의 세계로, 의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고생스럽게 새 길을 열지 말고 옛 생활, 옛 세계에서 '편안히' 그대로 살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옛 생활이란 결국 죄와 고통의 생활이고 옛 세계란 결국 죄와 사망의 세계이다. 거기에는 평안이 없고 안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단지 그것이 사람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마치 거기가 사람의 안식처나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다.

마귀가 동원하는 최후 수단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사람의 최후 가치는 가족이다. 마지막 남는 것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권력은 곧 사라지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가족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늙으면 형제를 생각하고, 방탕하던 사람도 마지막에는 가족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시험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가족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시험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전도자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고난을 당할지라도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0:21,22) 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고도 하셨다. 이것은 주님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탄은 사탄대로 의도가 있어서 사람을 시험하며 공격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의도가 있어서 그러한 시험을 허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거나 하나님이 그 자녀들의 삶에 관심이 없어서 사탄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농락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성격상 '일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시험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언제나 영구하지 않고 일시적이다. 영원히 치는 시험이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겪게 되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시험은 시험이며 그것은 언제나 일시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허락하시는(조성하시는) 환경이 결코 아니다.
  
내가 계속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겪는 어려움을 일시적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마귀의 시험을 결코 길게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욥의 고난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분명히 마귀가 욥을 괴롭게 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시험함으로써 일어난 것이지만 결코 영구하지 못했고 곧 끝이 났다. 왜냐하면 그 시련은 하나님의 허락과 관리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련은 시험(test)이며 또한 모든 시험(공격)은 시련(단련)이다. 그러므로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것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이 바로 주님이 세상을 주장하는 주권자이시며 모든 것을 진리 안으로 회복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사상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다고 형제가 형제를 죽는데 내어주는 것이나 자식이 부모를 죽는데 내어주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지만 부모가 자기 낳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은 본성적인 것으로서 사상이나 이념이나 행위나 그 어떤 것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것은 사람이 제 정신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광란이며 이 모든 광란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세상에는 많은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모든 일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 마귀가 사람을 사주하여 제 정신을 잃게 하여 극단적인 미움을 갖게 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련을 시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귀의 시험(공격)이며 한편으로 하나님의 시험(믿음의 확인, 연단)이다. 우리가 시험을 가볍게 생각해서 안될 이유는 그것이 마귀가 우리를 죽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벌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시험을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이 신자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며 시험 중에서 신자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이 마귀로부터 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 또한 같은 자리에 올 수 있다. 마귀가 사람(가족)들을 사주하여 고통을 줄 수 있다면 하나님 역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 자녀의 생명을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사람 대 사람의 싸움, 사람 대 사람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귀와 하나님의 싸움이며 악령과 천사의 싸움이다. 이것은 영적 전쟁이다. 사람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해방 후와 6.25를 거치면서 남북을 통틀어서 (군인이 아닌) 많은 양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들은 이념과 별 관계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반동으로 혹은 빨갱이로 몰려서 죽임을 당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렇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광란의 바람이 불어서 서로 미워하고 죽인 것이다. 그저 하루 하루 벌어먹고 사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 조금 잘 살아보고 싶었을 뿐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하고 평범한 이웃들이었는데 무슨 철천지원수나 되는 것처럼 싸우고 때려잡았던 것이다.
중세 서양에는 마녀사냥과 이단 재판이 성행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마녀나 이단으로 몰려 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유럽의 박물관 같은 데 가보면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들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보면 교회가 갖은 악랄한 방법을 다 사용하여 사람을 괴롭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고문들은 사람의 육체만 못쓰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근본적으로 황폐하게 만듦으로써 정말 몹쓸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놀라운 일은 그때 그런 일을 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그런 처벌을 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 평범한 민중들이었다는 사실과 그런 고문을 한 사람들도 사실은 그렇게 악하고 무서운 자들이 아니고 단지 강한 신앙적 신념을 가진 교회 지도자이거나 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의로 그런 짓을 자행한 악한 교회 지도자들의 무지한 하수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많은 악행의 배후에는 마귀의 사주를 받는 소수의 악한 자(주도자)들이 있지만 다수의 직접 가해자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일을 했으며 그런 악행을 하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며 다 마귀의 사주에 의한 광란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념적 투쟁이나 종교적 신념에 의한 투쟁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일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무언가에 홀리고 속아서 그렇게 했구나' 하는 후회와 아쉬움을 남겼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 모든 일들은 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선악의 지식을 따라 행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내 생각에 분명히 옳다 하는 일을 했는데 나중에 보면 아니고, 나는 바로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면 누구에게 속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사탄에게 속는다. 선악을 아는 지식에는 마귀의 독이 들어 있다. 분명히 옳기는 옳은데 가보면 생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일단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조용히 주님의 뜻을 구하며 주님의 인도를 구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광란의 와중에서 심지어 부모로부터나 자식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미리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하며 또한 그런 일을 겪을 것을 미리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이며 하나님의 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이며 믿음의 싸움은 곧 인내의 싸움이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를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사람도 단지 하나님(또는 사탄)의 손 안에 있는 연극 도구이고 우리를 좋다고 칭찬하며 위하는 사람도 단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연극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아무도 의지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일의 과정에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은 주님의 구원과 보호를 받을 것이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10:26,27)

여기서 주님은 우리가 (우리를 압박하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또 다른 이유를 말씀하고 계신다. 그 이유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결국 진리가 득세하며 진리가 모든 것(거짓)을 이길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전도자가 세상의 온갖 위협과 핍박 속에서도 언제나 아무 두려움 없이 공개적이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 활동이 하나님에 의해 지지되고 보호되기 때문이다. 왜 지지되고 보호되는가? 우리가 말하는 것이 진리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합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반드시 이긴다. 그것은 반드시 세상을 덮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막연한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며 영원한 우주의 법칙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실현되게 되어 있다. 지금 마귀가 어떤 악하고 헛된 일들을 세상에서 벌이고 있더라도 그것은 주인이 없는 동안에 잠시 난장판을 벌이는 것이고 주인이 돌아오면 다 제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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