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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교회)은 세상과 한 생명이 아니므로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없고, 세상과 하나가 아니니 세상으로부터 이질적인 존재로 대접받고 거부되고 비난받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참으로 세상의 피리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없는 사람들이고 세상의 애곡에 맞추어 가슴을 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설사 우리가 그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본질적으로 자기들과 다른 우리, 인생의 길과 목표 자체가 다른 우리를 좋다고 용납해 줄 수 없다.

신자가 세상에서 외롭고 사람들로부터 거부될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지혜는 오직 그 자녀(지혜의 동류, 지혜의 내용을 알고 가치를 아는 사람)로부터만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지혜의 자녀가 아니며 지혜의 동류가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먼저 우리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세상을 인정하지 않고 그 길을 틀렸다고 말한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며 비난하는 것은 우리가 먼저 세상의 길이 틀렸으며 그들이 붙잡고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그들과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이 우리더러 뭐라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러한 세상에 대해 탄식하셨는가? 세상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주님은 그들의 태도가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지적하셨는가? 그것은 주님이 여기서 지적하신 세상(이 세대)이 하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는 일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세상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유대교 사회였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의 길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못 받아낸 것이다. 알지 못하는 분에 대해 말하고 들어보지 못한 진리에 대해 말한다면 이질적으로 여기고 배척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이 전하고 말한 내용들은 하나님이 이미 구약에서 말씀하신 바들이고 오래 전부터 약속하신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린 사람들이었다면 주님이 전하신 것들을 접했을 때 기쁨과 감격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리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제시한 (세례 요한과) 주님을 귀신들린 자와 방탕한 자로 취급했다.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주님에 대해서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주님을 그들의 구주로 영접했어야 했다. 그의 사역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적극 지지하며 의지했어야 했다. 세례 요한이 와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했을 때 그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구하며 함께 금식하고 기도했어야 했다. 주님이 오셔서 세상의 버림 받은 자들을 거두시며 그들과 함께 하셨을 때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님은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라는 말씀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셨다. 이 구절은 누가복음에서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눅7:35)로 표현되었다. '행한 일'이 '자녀'로 바뀌어 표현되었다. 그것은 주님이 행하신 일(결과, 열매)이 곧 주님의 자녀들(교회)이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전9:1)

참으로 그렇다. 지혜 곧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 그의 진리는 모든 자들로부터 옳다함(인정, 영접)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자녀들 곧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들로부터만 옳다함을 얻는다. 이 말을 요즘 상황으로 설명하면, 그리스도와 그 진리는 교회다 신자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진실로 옳다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의 생명을 참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 곧 아들의 생명으로 사는 자들로부터만 진실로 옳다 여김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 생명과 진리에 속한 것들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사람만 알아본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1-13)

하나님의 지혜는 신령한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 아니면 알아볼 수도 없고 환영하지도 않는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오직 같은 생명을 가진 자들끼리 모이며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그리스도와 그의 사역, 그의 진리)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만이 알아보며 귀히 여긴다.

여기서 지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혜가 무엇인가? 주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지혜는 첫째, 진리이고, 둘째, 주님 자신을 가리킨다. 지혜란 일반적으로 말할 때 삶을 잘 사는 능력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는, '사리를 밝히 알고 일을 잘 처리해 나가는 능력'이다. 지혜가 인생을 잘 살아가는 능력이라면, 지혜로우려면 무엇보다도 인생(사람, 삶)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생을 잘 살 수 있겠는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요8:32) 자유롭다는 것은 편안하고 잘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인생 곧 자유롭고 지혜로운 인생을 가져다 준다는 것인가? 바로 진리이다. 인생을 막힘 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지혜인데 그것은 진리 안에, 말씀 안에 거할 때 생긴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가? (인생의) 길과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이 바로 힘이고 능력이고 지혜이고 자유의 길이다. 인생이 막힘이 없고 자유로우려면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첫째로 진리를 아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혜는 그리스도이다. 지혜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인생의 길과 진리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인생의 근본이다. 사람이 거기서 나왔으며 그의 뜻 안에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인지, 인생(삶)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반드시 그를 보아야 하며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잠언 8장은 지혜를 인격화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 나온 인격화된 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에게서 참 그리스로 인정되지 못했고 멸시와 배척을 당했다. 주님의 명백한 진리의 말씀과 놀라운 표적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주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복음을 전하시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했을 때 사람들은 주님을 향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다. 주님이 이처럼 사람들로부터 당연히 그가 인생의 참되고 유일한 지혜임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본래 지혜가 감추어진 보배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고 알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오직 그 자녀 곧 하나님의 택하신 복된 자들에게만 드러나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주님은 오직 그가 말씀하신 바 '그의 행하신 일' 곧 '지혜의 子女'들로부터만 인정되고 아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 지혜의 자녀들이 바로 우리이다. 주님은 오직 당신이 피로 값주고 사신 우리, 당신의 생명을 주셔서 살게 하신 우리, 주님의 소원과 사역의 결과인 우리들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받게 될 것이다.

보물은 언제나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니요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진리 곧 십자가의 도(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깨달아지고 소중히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 안에 있는 복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1:18-31)

그리스도는 참으로 지혜이시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라는 지혜는 생명의 지혜요 하늘의 지혜이므로 세상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 오직 하늘의 지혜를 가진 자 곧 아들의 소원대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들만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스도를 지혜로 알고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알고 따른다는 것은 세상이 볼 때는 지극히 어리석고 무의미하고 미련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지혜는 세상에서 총명하고 지혜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서 미련하고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자들 안에서만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지혜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생명 얻는 지혜를 얻은 사람들이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 눈이 뜨여진 이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받아들인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11:20-25)

주님이 가장 기적을 많이 베푼 곳이라면 당연히 주님을 가장 많이 가장 깊이 받아들였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일을 두고 주님은 이것이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인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6,27)


참으로 지혜는 오직 그 행한 일(자녀)로 인하여서만 옳다 함을 얻는다. 이 말은 주님과 그 진리가 오직 생명의 말씀을 받은 자들(교회) 안에서만 영접된다는 뜻도 있지만 다른 뜻도 있다. 즉 사람의 행한 일은 그 일의 결과(열매)를 통해서만 성과를 판정 받을 수 있다는 뜻도 있는 것이다. 어떤 말이 참 말(진실)인지 아닌지는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때 그 결과를 행한 일 또는 자녀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우리의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주님과 같이 '지혜'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진실한 자인지 어떤지가 바로 이 원리 안에서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참 지혜인지 거짓된 말인지가 그 子女(결과)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면 우리 인생도 우리의 사역도, 우리 자신의 실체도 역시 우리의 말대로 해 본 사람들의 결과(삶의 변화)를 통해서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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