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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 (1) (마8:1-4) / 2004. 8. 1

2010.04.30 14:26

이상봉 조회 수:3939

마태복음 8장에는 네 가지 치료 기사가 나온다. 첫 번째는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신 일이고, 두 번째는 백부장의 종의 중풍병을 낫게 하신 일이고, 세 번째는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신 일이고, 네 번째는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 자를 낫게 하신 일이다. 이 모든 일은 첫째, 사람을 치료하여 온전케 하시는(하나님의 아들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의사(구원자)'로서의 사역을 보여주며, 둘째,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상태, 특별히 이스라엘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1.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음 (8:1-4)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문둥병자가 고침 받은 이 사건은 산상설교 이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인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친 일 후에 있었던 일으로 보인다.(막1:40-44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순서로 기록된 것은 기록자인 마태에게 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하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처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이스라엘의 실상을 나타내기 위해 마태는 그들의 절망적인 저주의 상태를 그들이 안고 있던 각각의 질병을 소재로 하여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런 이스라엘을 어떻게 그 절망적인 저주의 자리에서 건지시려 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하지 않고 질병의 종류와 치유 순서를 편집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마태, 아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자연적으로 치유(회복)될 수 없는 심각한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마태복음 8장과 9장은 문둥병, 중풍병, 열병, 귀신들림, 눈이 멂, 혈루증, 벙어리 됨 등의 질병과 장애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 나오는 마태복음 8-10장은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을 그 미리 하신 약속대로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시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마10:5-8)

그러나 11장은 안타깝게도 이런 하나님의 노력에 대해 이스라엘의 주류(主流)는 여전히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응답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구원은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자(卑流)들과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갔다. 마태복음 8-11장은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먼저 문둥병에 대해 생각해 보자. 마태는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 앞에 맨 먼저 한 문둥병자가 등장하여 구원을 요청했음을 말하고 있다.
구약 이스라엘에서 문둥병은 특별한 상징성을 가진 병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죽었음을 나타낸다. 죽은 자만이 살이 썩기 때문이다. 즉 문둥병은 영적 죽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병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거역이 그들의 죽음을 가져왔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은 하나님의 권위를 대표하는 모세를 거스려 반역했기 때문에 문둥병에 걸렸다.(민12:1-10) 요압은 다윗의 뜻을 거스르고 아브넬을 살해함으로써 다윗으로부터 자손 대대로 문둥병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삼하3:23-29)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탐욕으로 엘리사의 뜻을 거스려 나아만의 돈을 받았기 때문에 문둥병에 걸렸다.(왕하5:15-27) 반대로 나아만은 순종함으로 문둥병이 나았다. 유다왕 웃시야는 힘이 강하게 되었을 때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다가 문둥병이 들었다.(대하26:16-21)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이 다 권위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문둥병에 걸린 것이다. 결국 구약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문둥병은 단순한 자연적 질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징계적 성격이 강한 병이었다. 모든 문둥병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둥병의 영적 의미는 겉으로는(육체적으로는) 생명이 있으나 속으로는(하나님께 대해서는) 죽은 죄인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해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거스리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바로 문둥병인 것이다.

그런데 그 죄의 성격은 무엇인가? 바로 권위에 대한 불순종과 거역이었다. 권위에 대한 불순종 즉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무시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자기 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약속)에 관심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사랑(마음)을 믿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구원(도우심)을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불신앙과 불순종(거역)은 실제로 문둥병에 걸린 (앞에서 언급한) 소수의 사람들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사회의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 문둥병에 걸려있었다. 문둥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은 구약 레위기(13,14장)에서 이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주셨는데 거기 보면 문둥병 걸린 사람은 다시 낫게 되기까지 이스라엘 사회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진 밖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이것은 문둥병자는 하나님의 백성과 교통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가 끊어진다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천국에서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안에는 실제로 문둥병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수는 물론 직접 문둥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갖은 질병과 가난과 억압과 여러 고통들 속에서 저주스런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고 천국의 축복을 잃은 채 살고 있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러 찾아오셨다. 그는 심판하는 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9:12에서 스스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병든 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사로서 오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의 죽음(죄와 고통)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손을 뻗어 구원을 요청하기만 하면 다 건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백성 중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죄 용서를 받고 회복되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지만 나음을 입은 것은 아람 장군 나아만 한 사람 뿐이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유대에도 (영적으로든, 실제로든)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나 나음을 입은 문둥이는 한 사람 뿐이었다.(눅4:27)

그런 중에 본문에 나오는 문둥병자는 사람들의 눈을 개의치 않고 용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았다. 그의 믿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는 말은 주님의 고치시는 능력은 확실하기 때문에 주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얼마든지 자기를 고치실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둘째, 그는 주님이 자기와 같은 부족한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문둥병자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는(나타나면 돌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주님 앞에 나타나서 병을 고쳐달라고 접근한 것은 주님이 자기를 확실히 불쌍히 여겨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님은 그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입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를 즉각 치료하셨다. 주님이 "내가 원하노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신 것은 이 말이 바로 그의 병과 죄와 저주를 치료하게 만든 동기로 작용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원하시면"이라는 문둥병자의 말은 단순한 말 한 마디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불러들이는 '믿음'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주님이 이때 나음을 입은 문둥병자에게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네 몸이 회복된 것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약의 율법이 그때까지 아직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즉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이 오시기까지는 구약(옛 언약)이 여전히 유효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할 때 "제사장에게 가서... 증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문둥병자가 치료함을 받은 이 일을 주님이 어떤 시각으로 보고 계시는지를 보여준다. 즉 주님은 이 일이 하나님의 승리이며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의 증거로 보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병이 나으면 첫째는 자기가 기뻐하고 다음으로는 사람들에게 보이며 자랑하는 것이 순서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주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보이도록 명하셨다. 사람의 회복과 구원은 단지 그 치료받은 당사자의 구원과 기쁨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적 구원과 기쁨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승리와 기쁨인 것이다. 그러므로 문둥병자는 자기의 병이 나은 즉시 먼저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하나님께 가서 예물을 드리며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사탄에게는 치명적인 패배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고 하나님께는 승리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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