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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님의 운명을 알고 따름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8:19,20)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눅9:57,58)

이 서기관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서기관(성경 제작자)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그다지 부자가 아니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부유한 기득권층이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보면 서기관은 이 땅에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는 부유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 땅에 분깃(몫, 소유)이 많은 사람은 이 땅(세상 삶)에 소망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했을 때 주님은 한편으로는 기뻐하셨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먼저 주님의 길이 어떤 길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따르기를 원하셨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그를 따름으로써 얻는 대가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을 것이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인생의 방향과 내용을 바꾸는 일이므로 신중하게 판단한 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사람이 주님을 따르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과 결단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이 있은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 사람의 의사와 의지를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부르시는 것은 아니다.(만일 그렇다면 신자는 귀신들린 사람처럼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입장에서도 고민과 선택의 과정이 있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서기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까? 이 땅에서의 모든 기득권과 영광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로운 복과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생각으로 주님을 따르기로 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세상 영광들을 더 풍성하게 누리고자 했다면 곤란한 일이다.

우리는 이 서기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주님의 반응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주님은 서기관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운명과 자리를 밝힌 것이다. 즉 주님은 세상에서 아무 분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 분깃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영광과 부를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결국 주님은 서기관에게 '나의 길은 세상에서는 영광이 없는 길이며 도리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인데 네가 이러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겠느냐'를 물으신 셈이다.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18:33-37)

빌라도나 유대인들은 주님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참으로 주님은 왕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영광과 권세와 부가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니므로 그의 영광과 권세도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는 영광과 권세를 얻을 것이나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이것을 알고 따라야 한다.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0-28)

주님은 한번도 자기를 따라오려는 사람을 막지 않으셨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오신 목적이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살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환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던진 것은 그들이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도록, 즉 따른다고 나섰다가 중간에 시험에 걸려 포기하지 않도록 돕기 위함이다.

한편으로 주님이 자기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시금석(걸림돌)을 던진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택함)를 입은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5-39)

무조건, 아무나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 곧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택하심을 입지 않은 자는 아무리 해도 주님께로 오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4-27)
그래서 주님은 서두르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덮어놓고 자기를 따르라고 강권하지 않으셨다. 그는 어디엔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붙이신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줄을 알고 계셨다.

주님은 한 번도 자기의 정체와 운명, 자기의 길과 받을 대우에 대해 모호하게 말씀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언제나 그것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5-33)

만일 처음 따를 때 오해가 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나중에 더 큰 낙심과 좌절을 당하게 되어 다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을 처음 따라 나서는 자들에게 주님의 길에 대해서 이처럼 분명하게 밝히신 것이다.

처음에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계속 이런 사실을 일깨우셨다. 베드로가 산 위에서 주님의 변화된 모습을 본 후에 십자가로 가려는 주님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을 때 주님은 다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를 일깨우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베드로가 주님의 십자가행을 만류한 것은 주님이 죽으면 자기의 처지가 불행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불행보다 더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운명이다. 주님 자신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님은 부활 후 베드로를 만나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요21:18,19)

처음에 베드로를 만났을 때 주님은 그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하셨다. 그것은 베드로의 일생 곧 베드로의 길과 운명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곧 주님 자신의 길과 운명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별도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직 주님의 운명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분명하게 알고 따라야 한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15:18-20)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오해나 헛된 기대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종의 운명은 상전의 운명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을 대접은 주님이 받으신 대접과 같다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대접 곧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과 복도 주님의 것과 같고,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을 대접 곧 세상에 있는 동안에 겪게 될 고난과 고통도 주님의 것과 같을 것이다.



2.하나님의 나라의 화급성(火急性)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8:21,22)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9:59-62)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무엇보다 주님의 일이 급하며 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 나오는 한 사람은 정말로 따르려 했다. 그는 거짓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며 생각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주님이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또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주님을 신속하게 그리고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고지하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은 급하다. 하나님의 일은 항상 급하며 그 화급성은 사람의 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모든 일 가운데서 최우선 순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열왕기하 4장을 보면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그 사환 게하시에게 명한 말이 나온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왕하4:29)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음을 안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그녀의 집으로 보냈다. 이때 게하시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못 본 체 하고 똑바로 아이의 집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엘리사는 왜 게하시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는가? 하나님의 일이 매우 급하기 때문이다. 수넴 여인의 사정이 급하다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일이 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벧엘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심판하기 위해 유다로부터 파송된 하나님의 사람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그는 일을 처리하는 동안 그 땅에 묵거나 쉬거나 음식을 먹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왕상13:7-10) 이것은 그 땅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일이 매우 급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출애굽 때의 히브리인들 역시 그들의 일 곧 애굽에서 빠져나가는 일을 급히 해야 했다. 그들은 출애굽 전날 밤 유월절 식사를 할 때 (게하시가 그랬던 것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다음날 그들은 애굽 사람들의 성화에 의해, 발효되지도 못한 떡 반죽을 메고 급히 애굽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토록 급하게 내몰았는가? 애굽의 고생을 면하는 것이 그토록 급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급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이었다.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온 땅에 드러내게 하시는 일이 그토록 급했던 것이다.  

일이 급하다는 것이 일을 서둘러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라는 것이다. 급하게 한다는 것은 일하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자의 마음과 태도의 문제이다.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부담에 따른 일'(영적 일)은 언제나 우선 순위 면에서 일상 생활의 잡다한 일들(육신적 일) 뒤로 밀리고 있다. 하기는 하되 시간 나면 천천히 하겠다는 식이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 자식 키우는 것, 공부하는 것, 돈을 버는 일보다 급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즉시 바로 그것을 시행해야만 한다.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고가사(不顧家事)하라는 말이므로 어떻게 보면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상당히 매정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크게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다. 먼저 풀어야 할 것을 풀지 못하면 다음 일들은 아무리 붙들고 매달려도 풀리지 않는다. 지난 주에 말했듯이 육신의 사망은 육신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약화)에 그 원인이 있다. 창세기 3장이 말하는 원리는 영이 죽게 되어서 육신도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것을 포함한) 모든 육신의 문제는 영적 회복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결코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육신의) 문제들을 잠깐 놔두고 먼저 주님을 따르며 그 생명을 취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전도자의 사명은 막중하다. 죽은 자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계속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궁극적으로 죄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의 영을 살리지 못하면 육신의 죽음 뿐 아니라 영원한 죽음을 면케 할 수 없다. 타락 후 한 번 죽는 것(육신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한 길이므로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것은 인간의 죽음과 저주를 막는데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일시적인 위로를 줄뿐이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사람들을 섬길 책임과 의무를 유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이 살지 못하면 육신은 반드시 죽는다. 안 그래도 죽을 몸이지만 주님의 생명이 공급되지 못하면 허무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쓰러져 간다. 육신(일상 삶)에게 있어서도 주님은 생명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붙들려 있는 것은 육신의 멸망과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2,13)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의무임과 동시에 순조롭고 형통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유리(流離)하셨는데 그것은 자기 백성들의 삶 깊은 곳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고통과 애환(哀歡)을 최대한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러한 길을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자기 일이 절대적으로 따로 있고 거기에 매여 있는 사람은 주님께 합당치 않다. 주의 제자들은 자기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대한의 시간과 힘을 사용하여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데 세상적인 능력이나 조건은 필요 없다. 그러나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다른 것들과 나누기 원치 않으신다. 그리스도는 세상과 병행하여 추구될 수 없다. 산 것은 죽은 것과 공유될 수 없다.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은 죽은 일이요 죽은 일은 그 세계에 속한 자들이 처리하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세상에 속한 정치 문제, 경제 문제, 사회 문제, 종교 문제는 다 우리와 상관없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 다만 그리스도로 대처할 뿐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가시적 보장과 육체의 안락과 남의 눈과 세상 상식을 다 고려하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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