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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주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성취하고 완성하러 오셨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이 율법과 관련하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계셨음을 의미한다. 주님이 받으신 오해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오해는 주님이 율법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랍비(율법 선생)로 오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님이 율법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새 종교의 창시자로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둘 다 오해이다.

첫째 오해는 주님이 이전의 선지자들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데서 온 오해이다. 주님은 율법을 강화하거나 보존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넘어서는 새 세계를 열러 오신 분이다. 율법을 넘어선다는 것은 율법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세계이기는 하지만 차원이 훨씬 높은 참 하나님의 세계를 펼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성취한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구원하고 이방인들은 멸망시키며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고 유대교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고 도리어 율법의 여러 형식적이고 그림자적인 요소들을 폐하고 율법의 본질(정신)을 회복시켰다. 주님은 단순히 율법만 폐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도 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율법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분으로 오신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희망일 뿐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둘째 오해는 주님이 어떤 율법의 형식들과 절차들을 무시하고 유대교를 부정하며 (이방인들을 사랑하고 수용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주님이 대해 오해한 것이다. 주님이 유대교의 죽은 행위들을 무시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율법을 무시하거나 폐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도리어 유대교의 죽은 행위들 곧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외식과 위선으로 가득한 거짓 신앙들을 타파하는 것은 율법을 세우고 회복하는 일이며 율법에 나오는 모형과 그림자적 요소들을 폐하고 새로운 세계 곧 영적 세계를 열어 가신 것은 율법을 완성하며 성취하신 것이다. 주님은 한 번도 율법을 무시한 적이 없고 율법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폐기한 적이 없다.

율법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어느 때'에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따라 당신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영원한 성질의 것이지만 어떤 것들은 때가 되면 없어지고 새롭고 완전한 것으로 대체되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들은 때가 이르면 없어져야 한다. 율법의 많은 형식과 절기와 절차들은 그리스도의 때까지만 있도록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오셨을 때 그것들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전체로서) 율법을 폐기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율법 자체를 옹호하러 오셨다든지 율법을 무시하고 부수러 오셨다든지 하는 이런 생각들은 다 오해이다. 주님은 율법을 보존하고 옹호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고 보존하러 오신 분이고 유대교를 보존하고 옹호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러 오신 분이다. 반대로 주님은 율법을 폐기하거나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짓밟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고 또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며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다.


이제 주님은 율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셨으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율법의 2대 정신은 사랑과 공의이다. 율법은 크게 볼 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랑과 공의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랑이시고 의(義)이신 하나님 자신을 (말씀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율법의 본질적 요소는 결코 폐하여질 수 없으며 오직 더 완전케 되어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것은 율법이 무언가 부족하거나 잘못되었기 때문에 바로잡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라 해도 그 자체로서는 내용상 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언가를 보태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율법이 완전치 않다는 것은 다만 (그 내용이 아니라) 율법의 본래 성격이 완전치 않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모델하우스는 완전치 않다는 것과 같다. 모델하우스가 완전치 않다는 것은 모델하우스가 잘못 지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모델하우스라는 건물 자체가 성격상 완전치 않은 건물 즉 목적이 있어서 임시로 지어진 건물이요 결국 나중에는 허물어지도록 지어진 건물이라는 말이다. 아이는 불완전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아이가 장애인이거나 병든 상태에 있다는 말이 아니고 단지 성인에 비해 미성년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그것이 본래 사람의 구원을 이루거나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도록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율법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주 예수님이 오셔서 완전케 하실 부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11:39,40) 그러므로 율법은 주 예수님 없이는 불완전한 것이고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주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율법의 의미를 더 분명하고 온전하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취되려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다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새 율법'을 우리에게 주셔야 한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생명으로 역사하시게 되는 것이다.

둘째, 율법 자체를 완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대상인 사람을 완전케 하는 것이다. 즉 사람으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게끔 만드는 것이다. 율법이 완전케 되기 위해서는 ① 적극적인 면에서,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다 지켜야 한다. ② 소극적인 면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에 따라 죽음으로 징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율법의 권위가 유지되는 것이다. 지키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면 율법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될 것이다. (주님 당시로 볼 때)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것은 지킬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써 이 두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첫째, 주님은 우리의 대표자로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심으로써 율법의 첫째 요구를 이루셨다. 둘째, 주님은 우리의 대표자로서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심으로써 율법의 둘째 요구를 이루셨다. 자신이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지키심으로 스스로 온전케 되신 주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셨고, 이 자격으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두 번째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이리하여 주님은 율법의 적극적, 소극적 요구 모두를 이루심으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

이러한 자격으로 그리고 자신의 완전한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주님은 '율법 자체'를 또한 완전케 하실 수 있었다. 주님은 이제 '지킬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지킬 것을 요구하며, 지키지 않으면 죽음의 형벌이 따르는 무거운 옛 율법'을 끝내고 누구나 받아들이기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을 다 이루는 새 율법을 여셨다. 이 새 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다 완전하게 나타내는 법이며 그 안에 생명의 능력이 있어서 그것이 명하는 바를 능히 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율법이다.

이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그의 인격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결국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그것인데 바로 {성령님의 역사}이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분 자신이 율법보다 완전한 하나님의 표현이므로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산상교훈의 모든 말씀들은 바로 이러한 완전케 된 율법이신 주님 자신을 설명한 것이며 따라서 그 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실행될 수 있는 법이다.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앎에 있어서 주님 자신과 같이 책에 기록된 율법이 아니라 생명의 법으로 말미암아 더 완전하고 깊이 알게 되었다. 또한 율법의 저주로부터도 자유케 되었다. 요한이 요한일서 2장에서 새 계명이라고 표현한 이 새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다 완전하게 나타내는 율법이며 거기다가 행할 능력까지 함께 제공하는 놀라운 율법이다. 이 율법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유일한 (율)법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곧 천국 시민으로서 우리의 유일한 (율)법이며 참되고 완전한 율법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5-27)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율법을 완전케 하는 길은 오직 철저히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 곧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것이다.


생명은 반드시 표현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 곧 완전한 율법을 누리며 사는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다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 거룩한 생명이 밖으로 표현되면 거룩한 삶이 된다. 이러한 삶의 수준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삶의 수준보다 월등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행하는 천국 시민의 삶이 육체의 능력만으로 행하는 죽은 종교인들보다 못하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주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삶을 위선(僞善)과 외식(外飾)으로 규정하셨다. 그것은 그들 안에 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이 일부 있지만 그것을 실행할 힘(생명)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선을 행하지만 보지 않는 곳에서는 행하지 못하며 자기 이익이 그다지 침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선을 행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못한다. 이것이 육신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생명을 받았다는 사람이 그 생명의 능력을 따라 선과 의를 행하는 수준이 육신을 따라 행하는 외식자보다 못하다면 그것은 그가 마귀에게 속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이란 자기 안에 아들의 생명이 없는데도 있다고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지(영접하지) 않는데도 믿는다고 하는 것이다. 나무와 열매, 생명(빛)과 열매는 항상 일치한다. 참으로 빛 가운데 있는 사람, 곧 참으로 그리스도와 사귄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며 그리스도의 행위를 가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게 되어 있다.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하게 행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들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생명을 받은 사람의 삶의 수준은 결국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것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물론 처음에는 오랜 경건의 훈련을 받은 외식자의 수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넘어선다.


하나님의 참 아들의 삶과 외식하는 종교인의 삶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율법)의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공의'를 얼마나 분명하게 표현하느냐 하는 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외식자들의 삶은 이 부분에서 언제나 신통치 못하다. 다른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육체를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과 의는 다 자기 부인과 결부되어 있다. 오래 참음, 온유, 절제는 다 자기 부인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과 화평과 선과 충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사는 사람 곧 이기적인 사람, 자기 영광,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한다. 오직 죽고 위로부터 거듭난 생명으로 사는 사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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