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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약5:12)

그리스도인은 항상 사실(진실)만을 말해야 하며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도 특별히 쓰지 말아야 한다. 말의 진실함은 오직 세월이 지난 후 결과에 의해서 입증되도록 해야 한다. 야고보도 그의 서신(약5:12)에서 같은 말씀을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언어 생활에서 매우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워야 한다. 또 그리스도인의 말은 단순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스타일의 말 곧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 이중적 의미의 말,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맹세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맹세란 상대에게 자기 말의 진실성을 믿도록 하기 위해 믿을만한 무엇의 이름을 거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기도 한다. 주님이 천국 시민들에게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 까닭은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말하며 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사람 앞에서 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말을 통해서 상대방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맹세는 필요는 것이다. 일을 사람(우리 자신)만 한다면 우리는 무슨 수를 쓰든지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지 않으면 안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온전하면 된다.

사실 맹세는 아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진실한 사람들에게는 그 말에 대한 확증이 필요치 않으므로 말의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맹세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진실치 않은 사람들의 말은 아무리 맹세를 통해서 자기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해도 그의 인격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맹세는 어차피 소용없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 말보다 먼저 그 사람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 자체보다 인격을 바탕으로 말을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맹세는 사실상 소용이 없는 것이다. 진실치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면 하나님의 이름만 욕되게 되며 효과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면 구약 율법에서는 어째서 하나님께서 맹세를 허용했는가?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까지 허용했는가? 먼저 하나님이 옛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보자.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레19:11,1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破約)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민30:2)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신23:21-23)

맹세에 대한 율법적 요구를 요약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는 하되 그것을 반드시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런 식으로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천국 시민의 수준과는 거리가 먼 (저급한 수준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차피 모든 말에서 맹세를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지 않으면 이방 우상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맹세를 허용하신 것이다. 이왕 맹세를 하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신10: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것은 맹세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제발 다른 신을 좇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서 무엇이든지 사실대로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말의 진실성을 유지하도록 요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맹세를 허락한 것이다. 그러나 천국 시민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님은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천국 시민은 그 안에 있는 진실한 생명으로 인해 무슨 말을 하든지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할 수 있고 그것을 믿게 하려고 무슨 인위적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수준이 매우 낮은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맹세는 하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셨다. 그 후 하나님은 그들에게 "헛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헛 맹세란 처음부터 남을 속일 마음으로 진실치 않은 말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헛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큰 죄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헛 맹세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단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는 요구를 덧붙이셨다. 이것은 보다 높은 수준의 요구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최종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아예 아무 맹세도 하지말고 (즉 자기 말을 어떤 수단을 써서 진실이라고 확증하지 말고) 오직 사실만을 단순하고 진실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지 않으신 것은 그들의 수준이 낮고 생명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즉 그 백성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단지 그것을 유보하신 것이다.  

단순하고 진실한 말이 아닌 모든 말은 다 거짓말이다. 자기 이익에 맞추어 말을 꾸미는 것도 거짓말이고 어떤 부분은 말하면서 어떤 부분은 감추어 상대로 하여금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없도록 만드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우리의 모든 말은 다 단순하고 진실해야 하며 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바울은 자기의 말이나 생각이 진실성 없이 '예 했다가 아니오 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 혹 경영하기를 육체를 좇아 경영하여 예 예 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1:17-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언제나 정직하고 단순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늘로나 땅으로나 예루살렘으로나 자신의 머리로나 맹세를 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하늘과 땅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로 그것을 더럽힐 수 없다. 하늘과 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예루살렘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교회의 이름으로 즉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으로 맹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합당치 않은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가 하나이며 이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머리로 맹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또는 내가 만일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 목숨을 잃어도 좋소" 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합당치 않은 것은 내가 내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머리카락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고 아무 것도 끌어다 쓸 수 없는 자이다. 다만 하나님을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자이다.


우리의 말은 간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오직 사실만 말하면 되고 많은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말의 권위는 언제나 그 진실성에 있기 때문이다. 힘들여서 하는 말, 많은 말, 많은 이유와 변명과 설명과 설득이 있는 말은 도리어 힘이 없다. 주로 자신을 변명하고 세우기 위한 말에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지만 사역을 위해 말을 할 때도 이런 말을 하기 쉽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말이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더 이상 화려하고 달콤한 수식어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가 말의 지혜와 능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성령님의 직접적인 역사(감동)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어떤 말이 다만 사실만 말하고 진실만 말하는 이 원칙에서 벗어났다면 우리는 그 말이 사탄에 의해 간섭된 말이 아닌가 의심해야 한다. 37절에서 주님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에서 지나치는(넘어서는) 말은 곧 악한 자(마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 이상의 말을 하고 진실치 못한 말을 할 때 가만히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사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말들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난 것이다. 그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또한 그 곁에 사탄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순간 사탄은 꼼짝 못한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사탄은 우리의 말에 (이기심과 교만에서 나온) 거짓말과 자랑, 지나침과 과장, 독한 시기와 다툼을 집어넣는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실 진실하고 진실하지 않고를 떠나서 많은 말 자체도 문제가 된다. 말을 너무 많이 할 때 우리는 거의 틀림없이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많은 말은 지옥의 문을 열어서 귀신들을 거기서 나오도록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약3:1-6)

구약의 지혜서인 잠언과 전도서에는 많은 말을 경계하는 말씀이 자주 나온다.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5:3)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전5:7)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우리는 말이 그릇이고 도구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약3:9,10) 말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임과 동시에 사탄을 표현하는 도구로 쓰인다. 말은 너무나 중요하다. 사람이 그릇이라는 것은 사실상 90% 이상 '말'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은 쓰기 나름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입이 성령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생명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그릇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입은 오직 성령이 원하실 때 벌려져야 한다. 우리의 말은 오직 진리와 구원과 사랑과 생명을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 입을 많이 벌리면 십중팔구 마귀가 나온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약3:13,14)

이 말씀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말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선행 즉 행동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말씀은 사탄의 악은 자랑하는 말과 거짓말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율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금지시키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를 말한 것이며 우리가 어떤 말을 할 자인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우리의 행동에 새로운 제약을 가져오거나 또 하나의 율법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왜 이 말을 하는가? 때로 우리는 맹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맹세를 시킬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야 한다면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은 맹세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맹세를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말은 위로부터 난 말로서 그 자체가 진리의 위력을 가지고 있고 성령의 능력과 더불어 나가는 것이므로 맹세를 하거나 다투거나 설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맹세를 시킨다면 우리는 맹세를 할 수도 있다. 주님은 대제사장이 억지로 맹세를 시키며 자신의 메시아 됨에 대해 증거하도록 했을 때 그렇게 했다.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3,64)

또 바울 역시 더러 맹세를 했다.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고후 1:23)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갈1:20)

이 바울의 맹세는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이 율법이라면 그는 그것을 어긴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단지 그의 마음에 충만한 형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맹세가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것이지만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강조하기 위해 쓰인다면 그것은 진실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히6:13,14)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6:17)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7:20,21)

그러므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말을 할 때 (거짓이나 과장이나 기타 사탄으로 말미암은 어떤 나쁜 습관을 따라 말하지 말고) 아들의 생명을 따라 진실하고 단순하게 말하라는 것이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떤 강한 말로 표현하는 것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아들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와 같이 생명이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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