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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1) (마6:5-13) / 2004. 3. 21

2010.04.29 13:49

이상봉 조회 수:3911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의 날마다 기도를 하고 있고 또한 그 안에서 여러 체험들을 가지고 있다. 기도가 중요한 만큼 그 의미와 방법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이 있었고, 이러한 도움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의 기도 체험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원리를 깨닫고 훌륭한 기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더 많은 신자들이 기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올바른 기도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러면 좋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실 기도는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다 있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종종 기도를 한다. 인간은 연약한데 다가오는 환경은 무겁고 크니 무언가라도 붙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도는 인간의 내재적 본성 곧 하나님을 향하게 되어 있는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타락으로 인해 누구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모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신을 찾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미 그런 것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신 방법이지 사람이 자기 필요에 의해 만든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며 기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세상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는 전혀 다르다. 대상이 다를 뿐 아니라 그 목적과 내용이 다르다. 세상의 기도는 사람이 자기의 본성적 필요에 의해, 자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하시는 것이다.

기도는 기도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기도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반드시 기도의 영(성령)을 따라 행해져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첫째 원리고 원칙이다. 기도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말하는 그런) 형식과 (하나님을 의지하며 아뢴다는) 소박한 마음(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기본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기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그 이상이다. 기도에는 반드시 '기도의 실제'가 있어야 한다. 기도의 실제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무언가를 구하게 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실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부담을 따라 움직이는(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1.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첫째, 이것은 기도의 기초가 믿음임을 말해준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 살아 계시며 사람의 필요를 참으로 채우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사람은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속히 응답하시지 않더라도 오래 참고 끝까지 기도하며 인내로 그 응답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이것은 기도의 기초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임을 말해준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 것도 안된다. 내가 상대하는 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교제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겠으며 어떻게 신뢰하고 기다릴 수 있는가?

2.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가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기도는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 필요를 해결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하나님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임을 말해준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아뢰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기 위해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3.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가 그 뜻의 성취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역임을 말해준다. 기도는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것이다. 물론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길을 예비하는 것은 성도의 기도이다.
성도의 할 일은 하나님 자신이 일어나 일하시기 전에 먼저 그 뜻의 성취를 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그 기도의 응답으로써 일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순서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겔36:37,38)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희 성벽 위에 파수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62:1-7)

이 두 말씀은 하나님께 어떻게 이스라엘을 세우시며 어떻게 그들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만드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번성과 영광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계획)을 깨닫고 그 성취를 갈망하는 성도들의 기도(간구)가 있을 때 그것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즉 하나님의 약속이 없다면, 아무리 사람이 소망하고 기도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먼저 하나님이 뜻을 세우셔야 한다. 그러나 그 뜻의 성취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종들의 기도와 간구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 깨닫기를 힘써야 하고 또한 그와 같이 그 뜻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기도는 전혀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해결하는 수단은 아닌가?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삶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구하게 하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우리 삶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인가? 우리는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기도는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한 수단이다. 다만 우선 순위가 있을 따름이다. 어느 쪽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 있는가? 당연히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문제 곧 하나님의 나라가 서는 것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 문제를 자기 생활 문제보다 덜 급하고 (자기에게) 덜 직접적인 문제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 문제로 기도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자기 생활 문제로 기도하는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만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나라이다. 전쟁이 나면 집안 일을 제쳐두고 나가서 싸우는 것은 집안 일만 자기 일이 아니라 나라 일 또한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그냥 두면 내 집과 내 생명도 다 날아가는 것이다. 나라 안에 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의 나라와 대적하는 것이며 죄와 고통과 사망과 대적하는 것이다. 죄와 사망과 사탄을 환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의와 진리와 화평과 생명이 필요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영광스러운 세계가 필요한 사람은 사탄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서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의 의미, 우리의 존재 가치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구성하는) 자라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귀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백성(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살아야 하며 보호받아야 하며 공급받아야 한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그 삶이 보호받고 유지된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사람(그 자녀)을 살게 하는 것이며 그 합당한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것은 사람이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신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마지못해 살리시고 마지못해 보호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에 의해 보호되고 빠지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 문제보다 더 급하지 않으며 우선적이지 않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4)
공중의 새는 어떻게 살며 들의 백합화는 어떻게 사는가? 그들은 기도해서(살려달라고, 먹여달라고 구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필요해서 알아서 살게 하심으로써 사는 것이다.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루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사랑과 그의 필요와 그의 계획을 따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으로인해 살지 구해서 사는 것은 아니다. 해가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해가 뜨고 그렇지 않으면 해가 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그의 목적을 이룰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결코 삶의 유지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그보다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기도는 바깥의 사람들이 듣고 그의 경건을 칭찬하도록 만들어 놓은 수단도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를 포함한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남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성도로 하여금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하는 식으로 삶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구하게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5:16) 이런 말씀들은 분명히 우리로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구하라고 한 말씀들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요 구하지 않아도 공급하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때로 이런 저런 것을 구하게 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을 믿고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삶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먹고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을 누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기도는 생계 수단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기도는 저절로 자리가 잡힌다. (삶의 필요를 해결하는 문제에 있어서) 덮어놓고 기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덮어놓고 기도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합당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알수록 매사에 기도하게 된다. 잔잔한 내용이라도 말하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부담이 우리를 누르고 이끌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매달리지는' 않게 된다. 눈물과 탄식과 간절함으로 기도할 내용은 따로 있는 것이다. 사탄이 망하고 죄가 사라지고 그의 모든 거짓말이 힘을 잃고 오직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굳게 서며 진리가 굳게 서며 의와 화평이 온 세계를 뒤덮기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가 이러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의 첫째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있게 된다. 참으로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기도는 참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눈을 뜨고 하든 감고 하든, 입을 열어 말을 하든 안하든, 내 문제를 이야기하든 하나님의 문제를 이야기하든,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신자들이 자기들이 기도하는 필요와 목적만 생각하지 누구에게 그 기도를 하는지, 그 응답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방적이고 그러므로 효과(응답)가 없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맞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는가? 그를 인정하고 그를 믿고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기 말을 하고 하나님은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신경을 쓴다.  

기도에는 비법이 없고 요령이 없다. 기도 응답을 잘 받을 수 있는 요령이나 비법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들어보면 주로 그 내용이 금식을 하거나 오래 기도를 하거나 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떼를 쓰는 것을 말하든지, 아니면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깨끗케 한 후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든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거나 용어를 잘 사용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도의 비결이 아니며 응답 받는 기도의 요령이 아니다. 근본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요령이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사람의 말과 모션에 의해 움직이는 분이 아니다. 그는 자기 원칙에 따라 자기 일을 하시는 분이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사람의 일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며 그 삶을 책임지신다. 구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구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 곧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내놓고 구하겠지만 설사 그에게 어떤 급한 사유가 있어서 그것을 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로 인해 그의 삶을 돌보시지 않는 일은 없다.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기도를 잘 한다 해도 하나님이 그를 돌아보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대하실 때 그의 말과 모션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과 전체적인 길을 보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영생, 삶)이 있고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이지 기도를 하고 안하고에 의해 생명(삶)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요일5:12)

그렇다면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생활) 문제에 대해 구해야 하는가 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구한다면 어떤 태도로 어느 정도로 구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성령께서 그 내용과 강도(强度)를 결정하실 것이므로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즉 사람을 건지는 문제 또는 죄(시험)와 세상과 싸워 이기는 문제 등을 놓고 기도할 때, 우리는 간절함과 눈물과 탄식과 높은 강도로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상 생활의 필요를 따라 구하게 될 때는 (주님이 알아서 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감사와 평안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조금 기도하게 될 것이다.(빌4:6,7) 하나님을 알면 이것은 저절로 알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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