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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2) (마6:5-13) / 2004. 3. 28

2010.04.29 13:51

이상봉 조회 수:349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기도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기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해서는 안되는가? 왜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의 필요를 내 놓기 전에 먼저 반드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하는가? 기도가 '하나님께 하는 것'이며,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사람이 보고 칭찬하도록 기도하는 사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필요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기도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실제로 믿지 않고 오직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만 믿는 (외식하는) 사람은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는 기도를 하기보다는 사람이 보고 좋아할 더 확실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하며 기도할 때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뜻과 필요를 모르실까봐 하나님께 고하는 수단이 아니며 생계 수단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를 돌보시는 분이며 그 자녀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삶을 유지하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고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 아래 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단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수단이다. 이것이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사실과 그것이 우리의 필요를 해결하는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알기를 힘써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기초요 기본이요 바탕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우리는 기도와 관련된 다른 몇 가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기도의 '응답'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어떤 것을 '구하는' 것이다. 구하는 것은 곧 받으려는 것이다. 안 받으려면 무엇 때문에 구하는가? 그러므로 기도의 목표는 응답이다. 우리는 반드시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응답이 안 되는 기도는 무가치하며 헛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응답과 상관없는 기도들을 하고 있다. 어떤 사유로 그렇든지 간에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기도,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명상, 독백, 스트레스 풀이, 한풀이,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기도는 기도가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신앙적인 행동이다. 물론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기도하는 사역적 기도 외에도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는 기도도 있다. 이런 기도에는 즉각적인 응답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응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신 인격인 이상 무슨 말인가를 들었는데 아무 반응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교제를 나눈 후에도 자신이 하나님께 말한 바를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 속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다만 기도해야 하니까 기도한다든지 답답하니까 기도한다든지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응답 받도록 확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실제로 교통을 해야 한다. 이것은 재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중요한 문제이다. 믿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바탕이다.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합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기도의 이대 요소는 '살아 계시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는 기도자 이 둘이다. 이제 말하려고 하는 다음 문제들은 그야말로 그 다음 문제들이다.

1.실제로(실제적으로) 구해야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

응답을 받으려면 기도를 해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뻔한 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기도했다고 착각하며 산다. 그리고는 왜 안 오나, 왜 안 이루어지나 하고 기다린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있고 기도하면 된다는 지식(생각)이 있는 것하고 실제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은 다르다. 기도가 아무리 형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일의 수단이다. 밥상에 놓인 밥이라도 손을 사용하여 입으로 퍼 넣어야 배가 부른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 저절로 하나님이 사정을 알아서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물론 기도할 필요가 없거나(적거나) 기도의 부담이 (별로) 없는 일은 예외이다. 그러나 어떤 일은 직접 기도해야 한다. 멀리서 속으로 혼자 사랑하는 것과 가까이 가서 입으로 고백하며 사랑을 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사람과의 관계와는 달리) 기도나 어떤 순종의 행동을 통해서 직접 교제하지 않고 다만 생각만으로도 모든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1,2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나아간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지 않고는 교제할 수 없다. 기도하지 않고는 응답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실제로 기도해야 한다. 만 가지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든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9,10)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요 교제이다. 이것은 그다지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많은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 자기 마음을 열고 말을 하며 말을 듣는 일은 필요하다. 이것이 기도이다. 이것 없이 자기 생각과 마음이 있는 것만으로 하나님과 교통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생각이지 실제가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기 안에 (기도할) 내용이 있고 마음과 생각이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께 그것을 아뢰고 구하지 않는 것은 영의 인도에 부주의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미루는 중에 실기(失機)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은 구하는 형식은 있는데 실제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보도록 외식으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은 실제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는 구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면서 하는 기도는 결국 기도가 아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믿음 없이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5)
응답은 오직 그 구하는 바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는 사람에게 임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이 역시 믿음이 없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형식은 기도지만 실제로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하는 자가 중언부언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 기도를 듣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말을 들어주실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말도 했다가 저 말도 했다가 이런 식으로 말해 보다가 저런 식으로 말해 보다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으면 자기가 할 말을 분명하게 정하기도 쉽고 그것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아뢸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중언부언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고 길게 하는 것은 말에 힘을 싣고 말에 정성과 공을 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기도의 특징이다. 한 번 절하는 것보다는 108번 절하는 것이 낫고 108拜보다는 3000拜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방인의 생각이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에 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것을 달라고 하든지 저것을 달라고 하든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바라지 않기 때문에 '혹시 복권에 당첨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되는 대로 대충 늘어놓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기도하지(구하지) 않은 것이다. 구하는 형식은 있지만 실제로는 구하지 않은 것이므로 응답이 없을 수밖에 없다.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횡설수설한다는 말과 같다. 앞에서 기도한 내용과 뒤에서 기도한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은 기도뿐 아니라 설교나 다른 말에도 그런 것이 많다. 그러나 횡설수설하지는 않더라도 문자 그대로 중언부언(重言復言) 곧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해서 길게 기도하는 것도 결국 실제적인 기도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길게 기도한다는 것은 주로 공적인 기도 자리에서 길게 기도하는 것을 말하지만 개인적인 기도 시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길게 기도하는 사람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길게 기도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은 아까 무엇을 구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하고 명확하게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구하는 것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누구든지 정말로 자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게 중언부언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신자들의 기도가 너무 일반적이다. 너무 일반적이어서 도무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집중적이지 못하다. 마치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들어간 사람이 무엇을 살 것인지가 분명치 않아서 종업원에게 모든 물건을 다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기도의 목표가 불분명하면 그 내용이 불분명하며 구하는 것이 너무 많고 잡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는 기도하지 않는 것과 같이 된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니다. 많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길게 기도하는 것이 단일 문제를 놓고서 중언부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좋지 않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는 대표로 기도할 때는 길게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적인 기도는 언제나 사람간의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다. 급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결코 자기 문제를 횡설수설하면서 많은 말로 두루뭉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도 기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구하는 것은 '구하는' 것이지 단지 말하거나 지껄이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정한 바가 없이 횡설수설하거나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응답(약속)을 기다려야 한다. 여러 가지 기도를 할 때도 반드시 한 문제를 확실히 처리한 후에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도는 혼자 하는 독백도 아니고 의례적인 종교 절차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통이요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구하는 것이 분명하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세 번 기도하는 원칙'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마26:44)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12:8)
위의 말씀은 주 예수님과 바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이 있기까지 동일한 문제를 놓고 세 번씩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기도 원칙을 제공해 준다. 세 번씩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꼭 세 번씩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까지 즉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확신이 생기기까지 확실하고 집중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의 목표는 응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기까지, 일의 성취를 구하는 사람은 그것의 응답(약속)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도했느냐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을 기도했느냐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부담이 없어질 때까지 기도했는가' 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메뚜기처럼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식으로 기도해서는 안된다. 한 문제가 분명하게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형식적으로 대충 기도한 후 다음 문제로 넘어가 버리는 식으로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구하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확신을 얻지 않은 채로 다음 문제로 넘어가면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의 반응에 주의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할 때도 그렇고, 기도에 대해 서로 나눈 후에 들려오는 말에 대해서도 그렇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형제의 기도에 대해 "기도를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형제로부터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만일 이런 말 속에 하나님의 마음(뜻)이 담겨 있다고 판단되면 우리는 그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부담이 없다면 우리는 그런 말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자기 생명의 분량대로, 자기 믿음대로, 자기 수준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며 마음의 부담을 따라 기도할 따름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의 성패(成敗)는 응답에 있다. 그리고 응답의 여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맞추는데 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기도의 모양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기도가 아니다. 그런 기도들에는 구하는 목표가 없으며 그것을 받고자 하는 기대와 열망도 없기 때문이다.


2.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구해야 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3)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다음 문제는 올바르게 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기도의 형식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실제로 구하지 않는다'는 말에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다. 실제로 구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 것'부터 '목표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애써 구해도 응답이 없는 기도'가 다 포함된다. 잘못 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분수에 넘치게 구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구하는 것이다. 즉 필요 없는 것 또는 해로운 것을 구하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영적 부담)를 따라 기도하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지만 육신의 소욕대로 기도하면 꼭 이렇게 된다. 지난 주에 말한 바와 같이 기도는 우리 자신의 일이기도 하지만 더욱 하나님의 일이다. 기도는 우리 육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도록 촉구하는 사역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응답받지 못하는) 그릇된 기도를 하고 만다. 이것은 하나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지고 살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5,7) 합당한 기도는 언제나 합당한 (삶의) 자리에서 나온다. 내가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의 마음과 소원이 내 마음과 소원이 될 것이고 그 상태에서 무엇을 구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을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의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응답 받는 기도의 전제 조건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1-23)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하며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며 그리스도의 행위를 가질 때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필요를 가지며 언제나 그 그리스도의 필요를 따라 구하는 사람은 백발백중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다. 성령에 대해서 우려하지 말기 바란다.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만 추구하면 나는 어떻게 되고 내 일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염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이며 그리스도의 일이 성취되는 것은 곧 우리 인생이 살고 유지되고 영광을 얻는 것이다. 전쟁 중의 의사는 결코 굶어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 주리더라도 그는 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진실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의 존재 가치도 이와 같다. 자기 일만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가치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어야 할 부담을 가지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만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의 모든 필요를 알아서 책임지신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그가 구하는 것을 얻을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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