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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죄를 용서함]

지난 주에 조금 다루었던 '서로 죄를 용서하는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자. 주님은 죄 사함과 관련하여 하나의 기도 원칙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전에 먼저 서로의 죄를 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 이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하나님의 사역의 원리에 따른 말씀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8-20)

기도는 내용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도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지만 기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한다는 것은 곧 '죄 문제'의 처리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람간에 죄가 놓여 있으면 교제는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다. 죄란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고 사탄의 뜻대로 혹은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죄다. 즉 죄란 특별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 그 지음 받은 길을 벗어나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지만 죄인(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 자체를 사랑하거나 상대하시지는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자는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생명으로 행하는 아들들만 상대하신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뿐이다. 결국 기도의 응답은 오직 아들의 생명으로 행하는 사람, 아들의 영을 따라 구하는 사람에게만 있다는 얘기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요청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말은 근본적인 구원을 요청하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시작'이 아니라 '날마다 실제적으로 죄를 이기고 의의 사람으로서 사는 것'이다. 받은 구원을 날마다 누리는 일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지속적인 도우심과 관련된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죄로부터의 지속적이고도 견고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죄로부터의 실제적인 자유'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속에 있는 아들의 생명을 따라 다른 사람을 자기가 용서받고 싶은 것처럼 용서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런 사람만이 아들이고 아버지는 오직 그 아들만 상대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이 말씀이 구원은 조건부라는 뜻은 아니다. 구원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풀어서 되어지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아들은 항상 아들의 생명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죄 용서를 받고 싶고 죄인(허물이 있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형제들과 함께 있고 싶고 사랑과 화평을 누리고 싶으면서도 형제의 죄와 과실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들(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거짓말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속은 자리이며 사망의 자리이다. 주님은 우리로 여기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이 말씀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4,45)
아들은 억지로 아들 노릇을 해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을 받으면 아들이 된다. 그리고 아들의 생명을 받은 사람은 사탄에게 속지 않고 정신만 차리면 결국 아들(아버지)의 행사를 하게 된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은 없는 실력을 발휘하여 억지로 선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들의 생명대로 행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결국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그 행위를 안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아는 것이다.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요8:39-41)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8-50)

그러므로 누구든지 아버지 아버지,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아들인 것이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 (자기가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그가 아들인 것이다.

"서서 기도할 때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11:25)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서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

이 모든 말씀이 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의 응답은 오직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 주님의 생명을 따라 주님의 자리에서 행하는 사람에게 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13,14,21)

우리는 기도가 일이고 사역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해 왔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사역자이며 하나님의 위임 권세자이다. 기도의 응답은 참된 위임 권세자에게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 위임 권세가 주어지며 누가 하나님의 위임 권세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가? 바로 아들(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곧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서로 인자하여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4:32, 5:1,2)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18)

주님이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권세를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따라 행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요14:14,21에서 말씀하신 바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라는 말씀은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아들의 행사를 한다는 말씀이다. 아들의 행사 곧 주님의 계명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사랑한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의 생명이 없는 자이다. 결국 형제를 용서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첫째, 죄를 싫어하고 거부하며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나의 연약함과 할 수 없음 곧 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형편을 아는 바탕 위에서 형제의 죄와 과실을 이해하며 용서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들의 생명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반드시 이 마음을 가진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함]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26:40,41)

앞의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의 사역 초기이지만 뒤의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의 사역 마지막 때였다.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제자들을 경계하신 것은 사탄은 항상 사람을 시험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22:31-34)

주님과 잠깐만 떨어져 있으면 사람은 시험에 들고 만다. 베드로가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극히 헌신적이고 용감한 자였지만 주님과 떨어지는 순간 시험에 들고 말았다. 우리가 오늘날 날마다 시험에 들지 않고 악한 자의 손에 빠지지 않는 것은 주님이 날마다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귀 자신은 쉬지 않고 항상 우리를 시험한다. 주님은 사역을 시작하는 첫날부터 마귀의 시험을 받았다. 마지막 때가 이르면 마귀의 시험은 극에 달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마24:10)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수 있지만 특히 몇 가지 부분을 주의해서 기도할 필요도 있다. 사실 마귀에게는 우리 삶의 모든 내용과 과정이 다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마귀는 신자들을 몇 가지 종류의 시험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히 이러한 시험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다.

1.생활의 염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17:26-33)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13:22)

가장 일반적이고 무서운 시험은 신자의 마음이 일상 생활에 온통 빠지게 되는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인 줄 생각하고 온 마음이 그 일에 쏠려 있는 것이다. 몸은 사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일과 생활 전선에 거의 온통 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단지 목숨(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고 과정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나 소망, 궁극적인 사역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목적, 우리의 진정한 일은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우리 안에서 표현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목숨은 하나님이 부지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하라고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눈에 보이는 육신적 환경을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시험한다. 현재의 일에 몰두하게 할 뿐 아니라 내일 일에 대해 염려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리한 행동(범죄)을 하게 만든다.

2.환난과 핍박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13:20,21)

사탄이 사람을 시험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는 육신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꼭 몸에만 고통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고통을 준다. 과거 환난 당하는 우리의 선배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국가적인 핍박,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핍박, 그리고 전쟁과 기근, 가난과 질병, 그 외에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무언의 핍박과 고통 곧 사람을 견딜 수 없을 것처럼 피곤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환경들, 이 모든 것이 다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우리를 결코 넘어뜨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눅12:4-9)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1-39)

3.부유해지려 함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6-12)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는 시험이 바로 이 시험이다. 육신의 영광을 인생의 영광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부와 명예와 세상 영광을 추구하게 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 길로 나서면 사탄은 그 길목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사람을 확실하게 넘어뜨리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도 어렵고, 부자가 되어서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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