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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19,2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25-33)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1.돈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넓게 보면 삶(생활)의 문제이지만 아주 좁게 보면 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산상보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돈과 관련하여 두 가지 말씀을 하고 계신다. 하나는 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돈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돈은 무엇인가?' '돈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우리는 돈을 쓰면서 그리고 돈을 벌면서 항상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 본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4:4,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이것이 하나님의 답이다. 돈(재물, 물질)은 그 자체로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 수단과 도구로 주신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깨끗한 돈, 더러운 돈, 좋은 돈, 나쁜 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깨끗한 사람과 더러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지 않는 사람의 손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더럽고 악한 것이 된다.  

돈과 물질, 심지어 육신(의 삶) 자체도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그렇다면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바로 목적이다. 이러한 삶을 꾸려가는데 돈이 필요하고 건강과 지식과 지혜(총명)가 필요한 것이다. 돈 자체가 바로 사람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건강하고 안락한 몸도 마찬가지이고 많은 지식과 지혜(꾀)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다 어떤 삶을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지난 주에 생각한 바와 같이 육신의 생명(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를 삶이라고 한다면 '삶'조차도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은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규정하신 그 삶, 성령이 오늘 우리 안에서 인도하시는 그 삶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오직 이러한 삶을 사는데 몸이 필요하고 건강이 필요하고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소용되는 돈과 물질, 지혜와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기본 지식이다. 이것을 모르면 삶은 근본적으로 틀어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물질)에 대해 종종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한다. 즉 한편으로는 돈을 더럽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돈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더럽고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고 돈을 열렬히 추구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돈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은 마치 몸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고 햇빛과 비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몸이 쾌락을 추구하고 죄를 짓는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더럽고 나쁘다고 한다면, 그리고 많은 지식과 지혜가 사람을 교만과 실패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지식과 지혜가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것처럼 돈이 더럽고 나쁜 것이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돈과 돈을 사랑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왜곡되고 속임을 당한 마음이다.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고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마음 곧 돈밖에 안 보이는 눈이다. 돈을 그 용도대로 바로 보고 합당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줄 모르는 타락한 심령이 문제이지 돈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돈은 하나님이 생활 수단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용도와 한계와 위험성을 알고 바로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문제가 된다.

돈(물질)의 위험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돈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영의 욕구가 아니라 육신의 욕구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확실히 돈은 육신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것인 것이다. 육신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그것은 잘 드는 칼과 같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돈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두 가지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첫째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 하는 것 즉 사람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둘째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을 다루는 법이다.

마태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어떻게 돈을 버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자본주의는 탐욕적인 소돔과 고모라 시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나라에만 소망을 두고 성실과 검약 정신으로 살았던 미국의 청교도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돈은 육신에게 소망을 둔 사람들, 육신의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에게서는 모아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돈은 늘 부족하고 모자란다. 그러나 초기의 미국 청교도들과 같이 주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이 땅의 삶에는 그다지 소망을 두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돈이 늘 남아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 다른 사람에게 소용이 되는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일할 거리가 있으며 또한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 번 돈은 육신의 욕망을 위해 흥청망청 쓰지 않기 때문에 자본으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돈을 가장 잘 벌며 가장 잘 쓴다는 말이다.  

지난 주에 우리는 돈이 우리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살게 하는 근원은 아니며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러므로 돈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을 추구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사랑하면 거기에 인생을 투자하게 되고 거기에 인생을 투자하면 거기에 마음이 있게 되고 거기에 마음을 두게 되면 결국 그리스도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다. 돈과 돈이 들어간 여러 육신적 일들에 마음을 두게 되면 돈보다 귀한 진짜 보물을 놓치게 된다. 돈만 볼 줄 알고 돈을 주어서 삶을 유지시키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는 것 그리고 돈과 돈으로 유지되는 육신(이 땅)의 삶만 보고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하고 완전한 삶은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소경이요 근시요 성치 못한 눈을 가진 것이다. 이런 사람의 인생은 어둡고 캄캄한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재물 중 어디에 우선 순위가 있는지 분명치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이 두 가지가 다 항상 눈앞에 어른거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하나님과 재물은 결코 함께 섬기지 못한다. 사람이 그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컵에는 한 가지밖에 담지 못한다. 두 가지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를 버리게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


2.오직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풍성하심과 사랑을 따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항상 채워주실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제한이 있다. 누구에게 그렇게 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그렇게 하신다. 주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이방인과 그의 백성, 남의 자식과 그의 자녀를 구분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인가?

아주 형식적으로 말하면, 주님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확대해서 말하면,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5:44,45의 원리에 따르면 현 시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참 자녀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뿐이다. 아버지의 생명을 소유한 그가 곧 아들이요 아버지의 행사(일)를 하는 그가 아들인 것이다.  
마태복음 5:44,45에서 주님은 사람이 그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이나 자기를 괴롭게 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해와 비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에게 다 똑같이 내려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아들들도 그럴 것이라는 얘기이다. 우리는 다 본래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자였지만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을 받아서 구원을 받았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바로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아들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이 생명으로 말미암아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며 용납하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용납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하나님께 원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 사랑의 생명으로 자기를 건지셨다는 사실을 아는 자, 그리고 그 생명이 바로 지금 자기 안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원수를 직접 갚지 않고 기다리는 자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에 원수를 직접 갚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위탁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약자를 멸시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를 함께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데서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인내와 의가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런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는 한 가지 덕목이 더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합당한 또 하나의 삶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이다.(눅6:38)


3.주라

우리가 지금 상고하고 있는 마5-7장 말씀 곧 산상보훈(산상설교)라고 부르는 이 말씀은 누가복음 6:20-49에도 나온다. 눅6:17에 있는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라"는 언급 때문에 이 부분의 말씀은 (산상설교와 비교하여) 흔히 '평지설교'라고 부른다.

누가복음 6장의 평지설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6:20-26이고 둘째 부분은 6:27-38이며 셋째 부분은 6:39-49이다. 첫째 부분은 마태복음 5:1-12의 복 있는 사람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둘째 부분은 주로 마태복음 5:38-48의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즉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며 용서할 것인가에 관한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그리고 셋째 부분은 마태복음 7장 내용과 같다.

그런데 누가복음 6장의 평지설교에는 마태복음 6장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빠져 있다. 마태복음 6장은 크게 기도에 대해 다룬 전반부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룬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누가복음 6장에는 이 두 부분이 빠져 있다. 사실 기도에 관한 부분은 누가복음 11:1-4에 별도로 언급되어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생활)에 관한 문제 곧 믿음 또는 돈 문제에 관한 내용은 누가복음 12장에 별도로 언급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이 중요한 부분들을 별도로 분리하여 말씀하셨을까? 어떻게 보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 별도로 다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나중에 별도로 언급하더라도 일단은 함께 언급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말씀(평지설교) 속에 포함시켰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마태복음 6:19-33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부분의 요지는 곧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육신의 능력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고 돈에 집착할 필요도 없으며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게 해 주셔서 사는 것이니 사는 것(삶)을 걱정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삶인가? 바로 '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돈을 사용하고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다.  

이것은 결국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 또는 그리스도인의 재정 관리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재정 관리법은 돈을 손에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풀어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돈은 오직 나누어줌으로써만 증가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돈은 분뇨와 같아서 모아서 쌓아두면 악취가 나고 파리가 들끓지만 흩어서 뿌리면 거름이 되어 많은 생산물을 거두게 된다고 했다.

돈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가난과 궁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난하고 인색한 분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구원은 하나님의 부를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간증하고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부를 마음껏 누리는 나라이며 하나님의 부를 온 천하에 선전하고 보급하고 뿌리는 나라이다. 돈을 붙잡고 내줄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당신의 목적에 쓰실 수 없다. 돈을 움켜쥐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청지기로 적합하지 않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 (1) (마6:19-33) / 2004. 5. 16 이상봉 2010.04.30 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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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외식하지 않음 (2) (마6:1-8) / 2004. 3. 14 이상봉 2010.04.29 4169
49 외식하지 않음 (1) (마6:1-6) / 2004. 3. 7 이상봉 2010.04.29 3512
48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삶 (마5:38-48) 2004. 2. 29 이상봉 2010.04.29 3537
47 맹세하지 말라 (마5:33-37) / 2004. 2. 22 이상봉 2010.04.29 5170
46 간음하지 말라 (2) (마5:27-32) / 2004. 2. 15 이상봉 2010.04.29 3822
45 간음하지 말라 (1) (마5:23-32) / 2004. 2. 8 이상봉 2010.04.29 3564
44 살인하지 말라 (마5:21-26) / 2004. 2. 1 이상봉 2010.04.29 3799
43 율법을 완전케 함 (2) (마5:17-20) / 2004. 1. 25 이상봉 2010.04.29 3527
42 율법을 완전케 함 (1) (마5:17-20) / 2004. 1. 18 이상봉 2010.04.29 4048
41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 (마5:14-16) / 2004. 1. 11 이상봉 2010.04.29 3803
40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 (마5:13) / 2004. 1. 4 이상봉 2010.04.29 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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