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셋째 시험 (2)

이제 교회에서 나타나는 마귀의 이 시험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세 번째 시험 곧 '영광을 줄 테니 나에게 경배하라'고 하는 마귀의 시험이 교회들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은 장로나 권사 투표 또는 노회장 선거가 있을 때 그런 지위를 얻기 위해 한 형제가 다른 형제들에게 운동을 하거나 뇌물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하게 세상 영광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한 형제가 다른 형제들의 선생이나 인도자가 되어 존경을 받고 권세를 행사하려는 욕망을 가지는 것은 마귀가 던지는 '야망'이라는 시험에 걸린 것이다. 야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부담을 따라 형제들에게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야망을 가지는 것은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얻으려 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은 이런 시험에 넘어졌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39-44)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6-11)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험을 받으며 거기에 걸려 넘어진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마음이 생길 때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요 사탄으로부터 온 것임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남보다 나를 높이려는 마음,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이다. 마귀는 자기가 가진 생각을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온 합당하고 정당한 생각인양 사람에게 불어넣는다. 우리가 마귀의 생각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에게 경배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많은 그럴듯한 생각, 많은 타당한 듯이 보이는 야망 뒤에는 우리의 경배를 차지하려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

사람이 야망을 가지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남이 자기 가치를 충분히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남이 먼저 나를 알아주고 나를 좋아해 준다면 억지로 자기를 스스로 높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스스로 PR하고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그다지 잘못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만큼 잘났고 그만큼 되기 때문이다. 남이 몰라서 그렇지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그런 나를 다른 사람이 몰라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영광과 권세의 본질과 관계되는 문제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내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날 만큼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아서일 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상황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영광은 있으면 언젠가는 드러난다. 등불은 기름을 때서 밝히는 것이므로 힘들여서 켜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불을 켜는 사람이 그것을 마루 밑이나 말통 안에 숨기지 않는다. 잠시 빛이 감추어지는 경우는 있을지라도 장구하게 그렇게 되는 경우는 없다. 결국 드러날 만한 것은 다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아빠나 엄마는 아기로부터 세상 영광을 얻기 어렵다. 아기는 부모로부터 무언가 얻으려고만 하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기가 그것(영광)을 줄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갓난아기에게 자기 잘 생긴 것과 힘 센 것과 머리 좋은 것과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고 그 아기로부터 영광을 받으려면 세월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 동안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고 잘 나도 못난 것과 같다. 그런데 아기가 자라서 초등학생쯤 되면 이제는 아빠 최고야 엄마 최고야 할 것 같은데 그때는 아이들의 눈이 밝고 총명해져서 아빠나 엄마나 스스로 자랑하며 잘났다고 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빠나 엄마는 별 것 아니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과 아이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했다는 사실 그리고 나름대로 영광이 있다는 사실은 누가 알아주나 알아주지 않으나 거기 그대로 있으며 어디 가지 않는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것을 알아주면서 '당신은 영광스럽습니다' 하고 말해주지 않더라도 부모의 영광은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을 억지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어떤 부모도 아기에게서 억지로 영광을 받으려고 그를 윽박지르거나 찬송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빠 엄마가 되면 부모의 수고와 영광을 저절로 알게 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부모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합당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가만히 기다리며 다만 아이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삶의 한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은 부모가 아기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무리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실제로 영광스러운 사람이면 영광이 있는 것이지 마귀에게 경배해 가면서 그가 주는 영광이라는 것을 받을 일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지 않고 부끄러운 자라서 영광이 없는 사람이라면 마귀에게 소위 영광이라는 것을 구걸해서 얻더라도 우리는 영광스럽게 되지 않는다.

주님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받아들여서 그들의 삶이 거룩하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실제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면 그들은 결코 사람들이 말(인사, 칭찬)이나 행동(상석에 앉히고 선생으로 높이는 것)으로 자기를 높여주기를 추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안에 참 영광이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남에게 가르치고 (율법으로) 짐을 지우는 것의 반이라도 실행했더라면 그들은 전혀 스스로를 높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마귀가 사람에게 영광과 권세라는 요소를 매력적인 시험거리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영광스러운 아들의 위치를 떠나 영광이 없는 자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본래적으로 영광스럽고 권세가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이미 사람에게 완전한 영광과 권세를 주셨는데 마귀가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주겠다고 하는 영광은 다 거짓되고 허무한 것들뿐이다. 타락으로 인해 인류가 그 본래적 영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마귀가 무슨 영광 타령을 하면서 사람을 시험하며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되찾은 우리는 그의 말을 들을 이유도 필요도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 영광이 없는 세상 사람은 별 수 없이 거짓되고 일시적인 영광 곧 마귀가 주겠다고 하는 그런 영광이라도 추구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영광은 따로 있다. 교회의 영광, 그리스도인의 영광, 참 사람의 영광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되는데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하여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며 섬김으로써 그에게서 한 여인(개인)의 영광을 넘어서는 어머니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의 영광은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아들의 생명을 받은 자,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을 받은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새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 부모도 아기를 밟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 부모도 아기를 소유물로 생각하고 그를 자기 이익을 위해 (껌팔이를 시키거나 하여) 이용하지 않는다. 아무 부모도 아기에게 네가 내 마음을 맞추어 달라고 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가 아기 마음을 사고 그 마음을 맞추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외형상으로 볼 때 분명히 굴복이며 섬김이다. 아기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기를 섬기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가? 왜 권세 있는 자가 권세 없는 자를 섬기는가? 귀엽고 사랑스러우니까 그런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부모에게는 권세와 영광이 크고 아기에게는 그것이 작기 때문이다.

참 영광, 참 권세는 그런 섬김을 베풀 수 있는 위치, 능력 자체이다. 어떤 사람이 내 소유물이고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어서 기쁘고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쁘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내 발을 핥아서 기쁜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을 소유하며 그 위에 군림하여 권세를 부리고 그것들로부터 높임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마귀가 지니고 있는 헛된 마음으로부터 온 헛된 영광이다.

사탄은 주님께 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주겠다고 했다. 누가복음 4:6에서 마귀는 세상 나라들과 그 영광은 하나님이 마귀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자에게 그것들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성경의 암시로 볼 때 사탄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던 것 같다.(겔28:13,14) 그로 인해 그는 '이 세상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마귀는 이 세상 모든 나라들과 그 영광을 자기 손에 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세상 나라와 영광과 권세는 자기 것이라고 하는 마귀의 말 그리고 자기에게 경배하는 자에게 그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인가? 마귀는 주님에게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고 했다. 누가 그것을 그에게 넘겨주었는가? 넘겨주었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귀에게 세상 모든 것을 넘겨주신 적이 없다. 그것은 마귀의 거짓말일뿐이다. 하나님은 오직 그의 영원하신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넘겨주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주님이 오셔서 마귀를 쫓아내시기까지 일시적으로 마귀가 세상 임금 노릇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법으로 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거나 만국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도록 권세를 부여하신 적이 없다. 천하 만국은 오직 그의 기뻐하시는 아들에게 영원 전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한 말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마귀가 이 땅에서 거짓 권세를 부리며 준동하는 것을 영원히 내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마귀를 지금 즉각 처리하지 않으시는 것은 그럴 뜻이 없거나 그럴 힘이 없어서가 아니고 오직 그의 아들(그리스도와 교회)을 통하여 그를 처리하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통해서 마귀를 세상에서 완전히 내쫓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불법일망정 마귀가 세상에서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거나 뺏거나 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창조주와 같은 무소불능의 전지전능한 권능은 결코 아니며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힘에 불과하다.(욥1:12, 2:6)


이제 결론을 맺자.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받아야만 한다. 양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광도 그렇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영광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가진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영광도 수치도 다 세상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를 때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며 그렇지 못할 때는 비참하게 된다.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에 속한 것들은 사람의 참된 영광이 되지 못한다. 권세도 富도 지혜도 다 일시적이며 제한적이다.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사탄이 그렇게 해줄 수도 없다. 또 육신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가진다 해도 그것이 그에게 행복과 기쁨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는 없을 때는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것을 가지는 순간 다음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세상 영광과 권세는 사람의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가는 화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마귀가 준다는 영광은 사람에게 진정한 영광이 되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라야 진정한 영광이 된다. 마귀가 혹 자기에게 굴복하는 자에게 썩어질 세상 영광을 어느 정도 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사람을 참 영광에 들어가게 하지는 못한다.
마귀는 사기꾼이요 거짓말쟁이일 뿐 아니라 살인자다. 그가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안겨다 주는 것은 파멸과 저주뿐이다. 누구든지 마귀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헛된 영광을 좇아가면 일시적으로 영광과 권세를 누리는 것 같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저주 가운데서 마귀와 함께 파멸에 이르게 되고 말 것이다. 마귀는 자기가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서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자기 혼자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가려고 유혹하는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그랬다. 그는 우리 조상 아담을 그런 식으로 꼬셨다. 유감스럽게도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마귀의 거짓말에 빠져 하나님을 버렸다.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기는커녕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귀의 약속은 다 거짓말이며 그를 믿는 것은 헛일이요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결국은 자기 마음에 좋게 보이는 것,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주님은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셨는가? 그것은 그의 눈이 밝았기 때문이다. 마귀가 제시한 영광(세상 영광)이 참 영광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의 참 필요가 무엇인지, 자기 영광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고 있었다. 요4:32-34에서 주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다. 또 5:41에서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셨다. 또 빌라도가 심문할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귀가 주겠다고 한 세상 영광은 도무지 주님에게 매력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본래부터 주님과는 상관없는 것이며 영광이 되지 못할 것들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눈이 있어야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의 참 영광, 참 필요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살며 순종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그대로 진실하고 거룩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함께 지으신 형제들을 사랑하고 생명을 나누는 것이 인생의 영광과 기쁨이다. 바울은 형제들이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런 눈을 가지게 되도록 기도했다.(엡1:17-19) 우리도 이런 눈이 열리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천국에 속한 사람 (4) (마5:1-12) / 2003. 12. 28 이상봉 2010.04.29 3558
38 천국에 속한 사람 (3) (마5:1-12) / 2003. 12. 21 이상봉 2010.04.29 3592
37 천국에 속한 사람 (2) (마5:1-12) / 2003. 12. 14 이상봉 2010.04.29 3609
36 천국에 속한 사람 (1) (마5:1-12) / 2003. 12. 7 이상봉 2010.04.29 3555
35 산상보훈의 본질 (마5:1-12) / 2003. 11. 30 이상봉 2010.04.29 4636
34 천국복음을 전파하심 (마4:17-25) / 2003. 11.23 이상봉 2010.04.29 3590
33 제자들을 부르심 (마4:18-22) / 2003. 11. 16 이상봉 2010.04.29 4907
32 주님의 사역 시작 (마4:12-17) / 2003. 11. 9 이상봉 2010.04.29 4085
31 주님의 시험 (6) (마4:11) / 2003. 11. 2 이상봉 2010.04.29 3632
» 주님의 시험 (5) (마4:1-11) / 2003. 10. 26 이상봉 2010.04.29 3563
29 주님의 시험 (4) (마4:1-11) / 2003. 10. 19 이상봉 2010.04.29 3625
28 주님의 시험 (3) (마4:1-11) / 2003. 10. 12 이상봉 2010.04.29 3705
27 주님의 시험 (2) (마4:1-11) / 2003. 10. 5 이상봉 2010.04.29 3580
26 주님의 시험 (1) (마4:1-11) / 2003. 9. 28 이상봉 2010.04.29 3775
25 모든 의를 이룸 (마3:13-17) / 2003. 9. 21 이상봉 2010.04.29 4122
24 세례 요한의 사역 (마3:1-12) / 2003. 9. 14 이상봉 2010.04.29 3812
23 세례 요한 (마3:1-4) / 2003. 9. 7 이상봉 2010.04.29 3731
22 나사렛 사람 예수 (마2:19-23) / 2003. 8. 31 이상봉 2010.04.29 4217
21 황금과 유향과 몰약 (마2:8-11) / 2003. 8. 24 이상봉 2010.04.29 5302
20 라헬의 애곡과 위로 (마2:13-18) / 2003. 8. 17 이상봉 2010.04.29 10551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