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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시험 (6) (마4:11) / 2003. 11. 2

2010.04.29 13:29

이상봉 조회 수:3632

1.주님의 승리의 의미

주님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마귀는 주의 길을 막고 그 사역을 주저앉히기 위해 세 가지 일로 주님을 시험을 했다. 그러나 주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셨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승리가 어떤 승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주님의 승리는 영원한 승리였는가 아니면 그때만의 일시적인 승리였는가? 또 주님의 승리는 자신만의 승리였는가 아니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대표적 승리이기도 한 것인가? 또 주님은 무엇으로 시험을 이기셨는가?

우리는 이미 몇 시간에 걸쳐 주님이 겪으신 시험의 본질이 무엇이며 시험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만 알아서는 안되며 반드시 주님의 승리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그 승리의 의미가 무엇이며 성격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승리가 만일 어떤 특별한 환경과 특별한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그 승리는 그 환경과 능력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만 지속될 수 있다. 그 사람이 다음에 또 승리하기 위해서 그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도 그렇다. 즉 특별한 환경과 능력 속에서 이루어진 승리는 그런 환경과 능력을 항상 가지고 있는 사람만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승리는 어떤 환경에서, 그리고 어떤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또 그와 관련하여 하나 더 생각해 볼 문제는 주님의 승리가 완전하고 항구적인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승리가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확실하고 항구적인 승리가 될 수 없다. 시험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자만이 시험을 이길 수 있으며 시험을 정면으로 돌파한 자만이 같은 시험에 다시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시험을 근본적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런 확실한 승리만이 완전하고 항구적인 승리가 된다. 이런 사람은 다시 같은 종류의 시험을 다시 만나지 않거나 만나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승리는 그런 확실한 승리인가? 그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다시는 마귀의 시험에 직면하지 않거나 혹 직면하더라도 다시 승리할 것이 틀림없게 만드는 그런 확실한 승리인가?  


[약함 가운데서의 승리]

주님의 승리는 어떤 환경, 어떤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여건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주님은 하늘에서의 영광을 버리고 연약한 인생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고후13:4)
주님은 분명히 약했다. 약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다. 그는 약함으로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고 약함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강했다면 누가 감히 그를 체포하고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서 죽일 수 있었겠는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약했기 때문에 시험을 당했지만 약하다고 해서 시험에 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연약한 인생이었으므로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았다. 우리가 시험을 받을 만한 모든 자리에서 그도 시험을 받았다. 그러나 죄는 없었다. 즉 시험을 다 이기셨다는 말이다. 주님은 무엇으로 그렇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13:4)

약하기는 하나 약함이 전부는 아니다. 약함은 단지 사람의 육체의 형편일 뿐이다. 사람은 한편으로 약하지만 한편으로 강하다. 사람이 약한 것은 그의 육체적 형편이 죄로 인해 (타락하여) 죽게 되었기(약화되었기) 때문이고 사람이 강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능력)이 여전히 그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 속에 왜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하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사람이 그것을 망각하고 외면해서 그렇지 하나님은 한 번도 사람을 떠나신 적이 없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가서 찾을 일도 아니고 애쓰고 용쓸 일도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6-13)

이런 까닭에 사람은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로(자기 능력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면 어떤 자리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주님의 승리는 자아의 승리, 육체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승리, 순종하는 자의 승리, 하나님을 믿는 자의 승리였다.

이것은 승리의 원동력,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고 하나님의 공급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하나님 없이 어떻게 살며 어떻게 악한 자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겠는가? 시험도 문제가 아니고 원수도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형편(약함)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있느냐, 하나님 안에 있느냐,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하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승리는 언제나 자신의 강함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생명과 능력이 되셔서 모든 일을 친히 처리하심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강해야 시험을 이기고 강해야 세상을 이기며 강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약했으며 바울도 언제나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승리했다.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었으며 그 안에서만 행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의 시험, 주님의 승리는 결코 그의 육체적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승리는 참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았고 아무 보장도 아무 능력도 아무 세상적 영광과 권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참으로 땅 한 평 없는, 머리 둘 곳도 없는 가난한 자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알았으며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아들로서의 자기 인생과 운명을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 순종했다. 이것은 곧 주님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이 그에게 생명과 능력이 되어 모든 시험을 이기게 만든 것이다. 그는 지극히 작고 지극히 약한 사람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능히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셨다.

인생의 승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면 이룰 수 있다. 내가 무엇인지 알면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내 앞에 어떤 보장이 있고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만찬장에 초대받아 가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길가의 풀빵집이나 과자가게를 지나친다. 옆의 친구가 그것을 사서 주면 한 입 베어먹을 수도 있지만 안주면 안주는 대로 그런가 하고 그냥 가지 그것 때문에 슬프고 처량해하지 않으며 그것 때문에 친구와 얼굴 붉히고 싸우지 않는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2,13) 바울이 일생을 사는 동안 배고픈 날도 있었고 배부른 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날이 그에게는 일반이었다. 배고프다고 해도 그는 슬프지 않았으며 마귀에게 굴복하여 거짓된 길로 가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자기 인생이 무엇이며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자기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 진리, 이 지식, 이 계시가 주님과 바울을 승리로 이끌었다. 눈이 어둡고 근시인 사람은 앞만 보고 멀리를 보지 못한다. 눈앞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 주님은 강함으로 이기신 것이 아니라 약했지만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곧 진리의 빛으로 시험을 이기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주님이 그의 전능하신 능력 곧 하늘의 왕자로서의 능력으로 이기셨다면 한 줌의 흙덩어리인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약함 가운데서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으로 하나님의 생명만으로, 위로부터 오는 능력만으로 이기셨다면 우리도 이길 수 있다. 그가 우리의 대표자로서 승리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즉 그가 우리 약한 인생의 대표자로서 약함 중에서 오직 믿음(아들의 자리를 받아들임)만으로 이기신 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 역시 언제 어떤 자리에서든지 이길 수 있다.


[확실한 승리]

주님의 승리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생명, 그의 말씀, 그의 인격으로 이긴 승리이다. 그러므로 그 승리는 그가 살아 있는 한,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한 계속 되는 것이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견고하고 확실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과 인격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난 속에서 더욱 단련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아들 속에 있는 말씀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체험을 통해 더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순종 역시 세월이 지날수록 더 견고해져 간다. 그러므로 마귀는 결코 다시 주님을 넘어뜨리지 못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생명 안에 있는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한다.

실제로 나중에 어떤 환경, 어떤 고난, 어떤 방해도 주님의 길을 막지 못했으며 그를 다시 시험하여 쓰러뜨리지 못했다. 주님의 승리가 그의 육체적 능력이나 그의 소유나 권력, 지지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주님의 승리는 지속되지 못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면 주님의 능력도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승리는 그런 외부적인 것들에 의해 기반을 두고 있지 않았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를 알고 믿고 순종하는 그의 생명과 인격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여러 번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 주님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대표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는가? 오직 이 주님 안에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승리의 유지는 어떻게 하는가? 역시 주님 안에 있으면 된다. 항상 이기고 싶으면 항상 주님 안에 있으면 된다. 우리가 어떤 생각,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최후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육신대로 살지 않고 성령을 좇아 아들(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면 우리는 언제나 승리한다. 주님의 승리는 오직 이 아들의 생명으로 거둔 승리였으므로 우리가 이 생명으로 행하는 한 우리는 언제나 마귀의 시험을 이긴다. 그것은 우리가 젊고 건강하든지 늙고 병들든지 상관없다. 우리 수중에 돈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으며 권력과 지위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우리 생명,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된 자리는 언제나 시험을 이기는 생명이고 시험을 이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2.마귀는 물러가고 천사가 와서 수종을 듦

주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을 때 마귀는 주님을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주님께 수종을 들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이다. 타락한 천사가 그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와 같이 타락하도록 흔들며 시험했지만 주님은 자기의 하나님 아들 된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자 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물러가고 자기 위치를 지키는 참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아와서 주님을 섬겼다. 본래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사람은 그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존재이므로 천사에게 있어서는 주인의 아들인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사를 숭배하거나 섬기는 것이 아니요 천사가 사람을 섬기며 시중드는 것이 합당하다.

사람이 자기 위치를 잃어버리면 천사를 부러워하며 심지어 숭배하게 된다. 이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된 일인지 모른다.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 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히1:4-2:8)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2:14-18)

구원 받은 후사 곧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 받은 사람은 자기 위치를 지키기만 하면 세상 만물의 주관자이며 천사를 부리는 자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는 곧 하나님의 권세이다. 이것은 마귀가 거짓 권세로 호가호위하는 것과 같지 않고 정당한 권세를 행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여러 아들들을 당신의 맏아들(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릴 세상의 주권자, 세상의 후사(상속자)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천하 만물을 다스릴 자이며 필요에 따라 천사도 부릴 수 있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속여서 자기를 두려워하게 하며 자기를 크게 알도록 속이며 자기를 숭배하며 흠모하도록 속인다. 그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제한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육체가 자기를 제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천사를 부러워하고 그것이 사람의 형편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육체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물질로써 실체화,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지녔다는 것, 육체를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 풍성하고 완전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영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죄와 허물과 약함과 상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육체가 죄의 결과라거나 죄의 근원이라거나 죄와 가깝다는 생각은 다 잘못된 생각이다. 육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천사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천사는 영원히 종밖에 될 수 없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즉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이 땅 위에서 직접 표현할 존재로 지음 받은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육체를 가진 것, 땅에서 발을 붙이고 다니는 것은 천사보다 열등한 환경이 아니다. 그것은 천사보다 나은 것이며 천사 위에서 천사를 부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복된 환경이다.

밥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존재, 추위와 더위를 느끼며 아름다움을 느끼며 사랑과 기쁨을 느끼는 존재, 하나님의 영광을 육체로 표현하며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며 그것을 견고케 하며 확대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지닌 특징이다. 이것은 천사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를 부러워해서도 안되고 마귀를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사람보다 못한 것이 천사인데 그나마 마귀는 그 천사가 타락한 것이므로 천사보다 못한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 생명으로 행함으로써 천사보다 뛰어난 자기의 본래 자리를 견고히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들을 제쳐놓고 마귀가 제시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원함으로써 그의 말을 듣는 자는 마귀의 종이 되지 천사를 부리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싸움, 마귀와의 씨름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위치, 우리 자신의 존재(정체성)를 확인하는 싸움이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멍한 상태에 있지 않은가 틈을 노린다. 그러다가 틈이 보이는 듯 하면 즉각 달려와서 그의 거짓말로 우리를 미혹한다. 있지도 않은 영광과 권세, 결코 우리 것이 될 수 없는 영광과 권세를 제시하며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손짓한다. 이것은 뼈다귀를 든 개가 배고픈 사람에게 '이것 줄테니까 내게 절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개 밥 그릇을 받아먹지 않으며 더구나 개에게 절하고 개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그것을 얻어먹지 않는다. 사람은 먹을 것이 없으면 땅에다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도 정 먹을 것이 없으면 하나님께 말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만나를 얻어 먹거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먹을 수도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권세요 특권이다. 그런 자가 무엇 때문에 개보다 못한 마귀에게 절하며 그가 준다는 것을 얻기 위해 그가 시키는 대로 거짓말하고 악행하고 죄 짓고 못된 짓을 해 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겠는가? 주님의 승리는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의 영광스러운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치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목적을 위해 자기를 드리는 자는 세상 주권자로서, 천사의 시중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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