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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음

애통하는 자란 문자 그대로 세상에서 우는 자이다. 울되 다만 세상 근심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악함과 저주 곧 하나님이 없고 의가 없고 진리가 없고 사랑이 없어서 메마르고 고통스러움을 인하여 우는 자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실 때 많은 여자들이 주님을 따라오면서 울었다. 그들은 주님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주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세례 요한의 때까지 세상에는 궁극적으로 볼 때 애통할 일만 있었고 기뻐할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 그리고 그 앞서 있었던 모든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락으로 옷 입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옷 입었다. 그러다가 신랑 되신 주님, 세상에 자유와 해방을 가져오고 세상의 눈물을 씻기실 그 분이 오셨을 때 애통과 금식이 비로소 중단되었다.

오늘날 세상은 어떠한가? 지금은 애통할 때인가? 기뻐하며 잔치할 때인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가지를 다 해야 할 때이다. 주님이 오셨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주님의 때 또는 주님 이전의 때와 마찬가지로 사탄에 의해 죄와 어둠과 혼돈이 꽉 들어차 있다. 오히려 사탄이 지옥으로 떨어질 마지막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에 사탄은 더욱 사람들을 속이고 사주하여 사람들은 극도의 이기심으로 날뛰며 곳곳에서 살인과 갖은 악행과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전히 대부분의 장소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모욕과 멸시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그 복음 진리는 배척되고 성령의 역사는 훼방을 받고 있다. 더우기 교회마저 사탄의 공작으로 인해 다수가 황폐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승리와 변함 없는 역사로 인해 기뻐하며 찬양하며 즐거워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 세상의 상황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주님의 마음을 따라 탄식하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애통하는 마음이다.

주님은 우리의 시각이 분명하기를 원하신다.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 일을 정하셨다. 하나는 그가 기뻐하시는 일군의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새 사람, 새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나머지 사람들은 다 멸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에 대해 헛된 비관이나 헛된 낙관을 가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상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실상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비관적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미 물(심판) 아래 두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파선된 배와 같다. 구멍 뚫린 배는 결국 버리고 빠져나와야 할 대상이지 붙들고 우물쭈물할 대상은 아니다. 세상은 앞으로도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 세상의 희망은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밖에 없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개조하여 좋게 만드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세상의 방주인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서 얼마간의 사람들을 건져내심으로써 그렇게 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의 위로는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나라에 소망을 두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성경에는 애통하는 자의 몇몇 예가 있는데 그 중에는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가 있다. 이들은 다 같이 하나님 앞에서 절망적인 이스라엘을 두고 애통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눅2:25-32)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2:36-38) 그들은 마침내 어린 아기를 예수를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  
우리도 이런 사람들과 같이 현재의 육신적 삶, 세상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 그리스도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산다면 그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볼 때 지금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나라를 누리고 있으며 잔치하는 세계 안에 있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 결국 우리 형제들인 세상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을 남의 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성령의 모든 사역이 마감하는 그 날까지 우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죄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여전히 헤매는 것을 그냥 보아서는 안된다. 이것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반드시 주의 승리와 구원을 세상에서 구현함으로써 마귀를 패배시키고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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