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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1.이스라엘의 분열과 하나님의 구원

다윗 왕국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 와서 크게 번성하고 영광이 최고에 달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다윗이나 솔로몬이 위대하거나 정치를 잘 해서 그런가?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온 세상에게 '은혜(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성취)과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역사를 하셨기 때문이다.

일이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솔로몬의 만년에 그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도록 내버려두셨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에게 둘러 쌓여 우상 숭배에 깊이 빠지게 되었고 백성들은 솔로몬이 일으킨 여러 역사들로 인해 고역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 둘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고) 사람이 일한 결과이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도 솔로몬도 하나님이 일으키셨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것을 의지하는 '언약의 정신' 또는 '믿음' 안에 있을 때 개인도 되고 나라도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셨다.

솔로몬의 많은 지혜와 부, 많은 주변 나라 왕들의 딸과의 결혼을 통한 견고한 외교 관계 구축, 이 모든 것들은 일견 이스라엘을 견고한 평화와 영광으로 이끌 것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솔로몬의 실패는 인간 자신의 지혜와 지략, 인간 자신의 소유와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으며 사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공과 번영 다음에 온 이스라엘의 약화와 분열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밖에는 인류에게 참 구원자가 없으며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전체 인류든 인간의 진정한 구원과 영광, 진정한 자유와 번영은 결코 어떤 탁월한 인간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외적 환경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사람에게 공급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남쪽 유다와 새로 일어난 왕인 여로보암이 다스리는 북쪽 이스라엘로 나누어졌다. 이 두 나라 중 참 이스라엘로서의 정통성이 어느 쪽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늘 우리는 당연히 다윗과 솔로몬의 계통을 따른 남쪽 유다에 그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주변 나라들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11지파를 포함하고 있었고 남 유다는 단지 유다(나중에 베냐민 지파가 합류하기는 했지만) 한 지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름도 북쪽은 이스라엘이라는 원래 이름으로 불렸고 남쪽은 유다라는 지파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남쪽에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유다를 다윗 언약으로 인해 (정통 이스라엘로) 보존하셨기 때문이다. 북 이스라엘은 첫 왕 여로보암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에 이르기까지 209년(기원전 931-722년) 동안 19왕이 다스렸는데 그동안 무려 왕가가 9번이나 바뀌었다. 그들은 반역에 반역을 거듭하여 죽이고 또 죽음을 당했다.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13:11)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실상이었다. 북이스라엘의 왕가는 어느 왕가든지 끝날 때마다 평안히 다른 왕가로 교체되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온 가문이 전멸하는 큰 비극을 보아야만 했다.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 북 이스라엘 지역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수도 사마리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앗수르로 잡혀감으로써 이주되고 그 자리에는 다른 이방인들이 들어와 살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인들과 구분되는) 소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족이 형성되게 되었다. 결국 북 이스라엘 땅에는 본래 이스라엘과는 다른 나라가 들어선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 유다는 작은 나라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존하셨기 때문에 한 번도 왕가가 폐하여진 적이 없고 오직 다윗의 자손들이 그 자리를 유지했다. 이것은 다윗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다윗의 위를 보존한 것은 다윗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것이다.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진 것은 당신의 집을 향한 하나님의 일관된 정화 작업(심판)을 통한 성별 작업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들 가운데서 한 무리를 불러내어 새롭게 하시고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그들을 심판하셔서 그것을 또 새롭게 하신다.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는 언제나 그렇게 하나님의 선택과 보존 원칙에 의해 두 부류로 나누어지고 성별되었다.

처음에는 셋의 자손들이 성별되었으며 나중에는 노아와 그 자손들이 성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번성한 도시 갈대아 우르(고대 바벨론)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이 성별되어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할 백성이 되었다. 그리고 르호보암 때에 이르러 그 아브라함의 자손들 중에서도 유다 지파(다윗의 집)가 유일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전체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 성별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유다가 특별히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다를 포함한) 온 이스라엘이 머리(왕)부터 발끝(민중)에 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목적에 도무지 이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를 포함한) 온 이스라엘이 다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그 중 하나를 택하여 보존하신 것이 바로 유다 지파인 것이다.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왕상11:36)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매우 신실하게 시행되었다.


그렇다면 북 이스라엘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국 그들이 (이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 멸망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북이스라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는 참 하나님의 백성이냐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는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 또는 신자라는 이름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족보(생명책)에 오르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교회는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진 것처럼 여러 교파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서로 생명 안에서 교통하지 않는 이 많은 교회(교파)들이 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분깃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이 그를 인정하여 당신의 생명책에 그 이름을 올려놓으신 자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생명)이 그 안에 있는 자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2.족보에 어떤 이름들이 생략된 것과 관련하여

마태복음 1장의 주님의 족보에는 어떤 이름들이 명백하게 빠져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생략하는 고대 족보 기록의 전통에 의해 어떤 인물들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라합과 다윗 사이에 4대밖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은 그 두 사람 사이의 시간대가 400년이나 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여러 대수가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일반적인 생략법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아브라함 때부터 주 예수님까지의 전체 세대를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눈 후 다시 각 그룹을 14대씩으로 잡아서 족보를 구성하려는 저자의 기록 의도에 의해 어떤 인물들이 생략되었을 것이다.

셋째, 빠진 사람이나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하나님이 이 족보를 읽는 후대 사람들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어떤 인물들이 생략되었을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몇 사람의 경우는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는 3대 즉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가 빠져 있다.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이런 왕들이 있었다는 것은 대상3:11,12에 잘 나와 있다. 요람의 후손들은 왜 삼대나 빠져 있는가? 그것은 요람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요람 즉 여호람은 역대하 21장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심히 악한 왕이었다. 그는 경건한 왕 여호사밧의 아들이었지만 그 아버지의 신앙은 본받지 않고 그의 잘못된 정치 행태만 본받았다. 그는 한편으로 그 아버지 여호사밧의 잘못된 정책의 희생물이었다. 그는 북 이스라엘과 화해를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정책에 의해 북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했다. 아달랴는 그 어머니 이세벨과 같이 우상 숭배의 전도자였으므로 요람과 아달랴의 결혼은 요람 자신과 온 유다에 큰 해를 끼쳤다. 자신의 불신앙 및 부인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요람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이 그러했던 것처럼 온 나라를 우상 숭배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말자 자기 형제 6명을 (왕위를 위협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모두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크게 징계하셨다.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 가로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네 아비 여호사밧의 길과 유다 왕 아사의 길로 행치 아니하고 오직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으로 음란하듯 우상을 섬기게 하기를 아합의 집과 같이 하며 또 너의 아비 집에서 너보다 선한 아우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가 네 백성과 네 자녀와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물을 큰 재앙으로 치리라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중하여 창자가 빠져나오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 무리가 올라와서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말째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 창자가 그 병으로 인하여 빠져 나오매 저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 열조에게 분향하던 것같이 저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저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대하21:12-20)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서 요람의 자손 3대가 빠져 있는 이 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매우 싫어하신다'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교훈을 준다. 출애굽기 20:4,5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라는 말씀처럼 요람은 그 범죄로 인해 자손 삼대가 그리스도의 계보에서 끊어진 것이다.  

요람의 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잘못된 연합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이다. 요람의 실패에는 그 아버지 여호사밧의 책임이 크다. 여호사밧은 많은 면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경건한 왕이었지만 정치 외교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악한 왕 아합과 연합한 것이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이하고 마음을 오로지하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대하19:2,3)

가장 경건한 왕 여호사밧이 가장 악한 왕 요람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마귀는 사람 전체를 장악하고 무너뜨릴 수 없다면 그의 한쪽 면이라도 허물어서 그의 전 인생을 정복할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경건한 왕 여호사밧에게서 악한 왕 요람이 나오고 경건한 왕 히스기야에게서 악한 왕 므낫세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보호가 없으면 (그 아버지가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당연히' 마귀의 지배 하에서 어리석고 악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과 아울러 철저하지 않은 신앙은 결국 자식대에 가서라도 뼈아픈 실패를 만들어내고야 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왕하8:17-19) 이 말씀이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만일 다윗의 집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지 않으셨다면 여호람과 유다를 (북이스라엘을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완전히 멸망시키고 말았을 것이다.

"요시야는 여고냐를 낳고"

요람의 세 자손 외 또 빠진 인물은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다. 역대상 3:15,16을 보면 요시야의 아들은 여고냐가 아니라 엘리야김(여고야김)과 시드기야 그리고 여호아하스(살룸)을 포함한 네 명이다. 요시야의 세 아들 형제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 각각 차례로 왕위에 올랐다. 그중 여호아하스가 제일 먼저 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애굽에 의해 폐위당하고 다음으로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여기 나오는 여고냐이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여고냐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이다. 그리고 나중에 여호야긴(여고냐)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후 그의 삼촌이자 요시야의 셋째 아들인 시드기야가 이미 바벨론의 식민지가 된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요시야와 여고냐 사이에 여호야김을 빼놓았을까? 그것은 여호야김이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힐 만큼 하나님이 싫어하신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선왕인 여호아하스가 애굽 왕에 의해 폐위된 뒤 그 자리에 세워졌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애굽을 위해 일했다. 그는 애굽에 공물을 바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름을 짰으며 선지자 우리야를 죽였고 예레미야마저 죽이려 했으며 나중에는 그의 계시 두루마리를 빼앗아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렘26:20-24, 36:23) 이런 죄악으로 인해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비참하게 죽었다.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렘22:18-22)

"바로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으로 그 아비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저가 바로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국민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늑봉하였더라 ...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왕하23:34-37)

여호야김은 다윗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주님의 족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의 생명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보기에는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여호야김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후대의 오고 오는 많은 신자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 이기는 자는 ....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1-5)

오늘날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호야김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이름이 생명책에 아예 없다는 것은 그가 전혀 신자(하나님의 백성)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살았다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요한은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도 두 종류가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 그 중 한 부류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기는 있는데 그 이름이 흐려져서 없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여호야김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은 받았으나 거기에 합당치 못한 삶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접되지 못한 자들이다. 자기가 주를 안다 하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마다 다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주님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이는 내 사람입니다' 라고 인정하게 되는 사람만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호야김과 같이 생명책에 이름은 있으나 그 사람(인격, 삶)이 주님께 합당치 못하여 결국 그 이름이 인정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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