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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살인 (마27:1-10) / 2006. 12. 17

2010.04.30 16:31

이상봉 조회 수:6791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3-5)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행1:18,19)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주님이 무리들의 손에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을 보고는 심경의 혼란을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순전히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그랬는지 아니면 사탄이 막판에 감당할 수 없는 허무감과 공허함을 주입함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결국 그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유다의 이 실패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우리는 지난 번에 베드로의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었지만 오늘 유다의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룟 유다는 자살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가 그를 죽였는가를 물어야 하며 살펴야 한다. 성경이 분명히 그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말했는데 왜 그것을 물어야 하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최종적 현상이고 그 이면(유다의 자살)의 문제 곧 유다가 겪었던 내면적 갈등과 고민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주목해야 한다. 유다의 실패(범죄), 유다의 죽음 이면에는 살인자 마귀가 있다. 가룟 유다는 스스로 죽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마귀가 죽인 것이다. 마귀는 유다를 속여서 망상과 탐욕을 품게 하고 그렇게 형성된 탐심은 그를 범죄케 했고 그의 죄는 결국 양심을 찔러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귀가 유다를 죽였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유다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살인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마귀가 있다. 그는 그렇게 (살인, 자살)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한 그렇게 (살인, 자살)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사람을 궁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 어쨌든 사람의 생명을 상하게 하고 축내게 하고 망하게 한다. 그것이 그의 일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이다.

우리는 인간의 모든 살인(죽음)은 마귀의 거짓말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망은 죄에서 온 것이고 죄는 육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데서 온 것이다. 이 육신의 욕심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모든 것 위에 두고 그것을 집요하고 강력하게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은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즉 사람이 욕심을 품고 허무한 길을  가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 때문인 것이다. 그의 속이는 말을 받아들이면 사람은 죽을 짓을 꿈꾸고 죽을 짓을 애써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약1:13-16)

우리는 유다의 죽음을 보면서 사람을 죽음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헛되고 헛된 생각과 망상에 대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유다는 결국 마귀가 죽인 것이다. 그리고 마귀의 살인의 과정과 내용을 보면 결국 마귀가 던진 거짓말(욕심)에 유다가 반응했다는 것이 전부이다. 이 단순한 구조가 바로 인간이 파멸에 이르는 원리의 전부이다. 욕심은 죄를 그리고 죄는 죽음을 가져온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며 진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이나 거짓말을 아주 신비하고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여 우리 일상에서 멀리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으며 우리가 욕심을 부리고 경쟁을 하고 두려워하며 자랑하며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는 그 자리 곧 모든 탐욕의 자리, 모든 죄 짓는 자리, 모든 다툼의 자리에는 마귀가 있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다 마귀에게 속은 것이며 마귀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3:8,10)

그리고 마귀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마귀를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는 자'라고 하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4,15)

살인자요 거짓말하는 자 마귀에게 속으면 결국 죽는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롬8:12,13)

사람의 죽음을 획책하는 마귀의 사망 권세를 물리치는 길은 무엇인가? 영으로 몸의 행실(육체의 욕망 - 마귀의 거짓말)을 죽이는 것이다. 즉 마귀의 거짓말과 거기에 영합하려는 육신의 욕망을 거절하는 것이다. 마귀의 거짓말과 거기에 놀아나는 육신의 욕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을 좇아 사는 것이다. 즉 육신대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살며 자기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부활 생명으로 사망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육신대로 살고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은 육신의 생명이 자기 생명의 전부인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이 몸의 생명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고 더구나 거듭난 우리에게는 장차 새로운 몸으로 갈아입기 전에 임시로 입고 있는 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 생명의 근본이거나 최종적인 생명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릇이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의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육신대로 살 필요가 없으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죽기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마귀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죽을까봐서 마귀의 위협 곧 마귀의 사망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리어 육신대로 안 살면 죽는 것이 아니라 육신대로 살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2,13)

주님은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를 이기셨다. 그는 사망을 정면 돌파하셨다. 그는 어떻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수 있는가? 그것은 자기 안에 부활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영원히 죽을 수는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롬8:14) 곧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죽지 않는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그러니 마귀의 거짓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육신대로 살아야(육신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어야) 편하고 행복하고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육신을 쓰고 닳게 하고 태워야 생명을 유지하며 풍성케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몸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공급하시기 때문이다.(고전6:13,14)


주님은 일찍이 가룟 유다가 마귀에게 속아 탐욕과 망상에 빠져 있음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요6:70) 이것은 비교적 초기에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13:1-11,26-30)
이것은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유다를 돌이키기 위해 애쓰신 것을 보여준다. 주님은 유다를 포함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러나 마귀에게 사로잡힌 유다는 돌이켜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지 못한 이 불쌍한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의 마음 속에 있는 탐욕 곧 마귀로부터 온 거짓말(돈이 그를 행복하게 하고 권력이 그를 자유케 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12:4-6)

그는 세상의 일반적인 좀도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러 다녔을 것이다. 그는 더 큰 명예와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꿈꾸는 자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꿈꾸는 자였다. 그의 꿈은 그러한 나라가 왔을 때 한 몫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는 돈(세상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요 그것을 사랑하는 자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도적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해방과 민중의 자유를 꿈꾸는 자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일이 아니라 그의 육신에서 나온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도둑이라고 하셨고 마귀라고 하셨다. 가장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다는 단지 '육신에 속한 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것이 바로 마귀요 하나님의 대적이요 악한 자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우리는 육체의 소욕 곧 사람의 육신적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육신의 소욕은 마귀의 거짓말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므로 마귀의 살인 방법(수단)이다. 우리는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본성 가운데 많은 것들이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될 (반드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무서운 살인 흉기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1-8)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특히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마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마귀에게 죽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두시고 간절히 사모하시는) 성령님을 좇아가야 한다.

육신의 욕망, 불타는 정욕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흥분하게 만든다. 그것을 얻기 전에도 사람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들을 얻을 때 더 잘 살고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속이는 자로부터 온 것이며 우리를 죽이기 위해 마귀가 던진 거짓말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일찍이 이런 사실에 대해 많이 강조하며 경계했다. 특히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잠언을 보면 이러한 사실이 두드러진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없는 자를 까닭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음부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의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1:10-19)

육체의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마귀의 살인 올무에 걸려드는 것이다. 그는 먼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고 황홀하게 만들어 정신없이 그 길로 달려가게 만든다. 그런 후에 거기에 발이 얽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 그때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 신세가 된다. 마귀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를 거미가 서서히 잡아먹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을 서서히 빼앗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留心)하리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宴樂)하는 집에 있느니라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전7:1-5)

왜 잔치집에 가서 신이 나고 흥이 나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서 음울하게 되는 것이 나은가? 그것이 인간의 운명을 보다 정확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방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육신)를 기쁘게 하고 흥분케 하는 자의 말은 우리를 속여서 죽이려는 살인자의 거짓말로 알고 거절해야 한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진리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말씀이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3:1,2)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잠3:7,8)

유다는 참으로 불행한 자였다. 그는 주님을 마지막까지 따라다녔지만 이 생명의 지혜를 배우지 못했다. 그는 끝까지 돈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믿는다는 표시이다. 마귀는 사람을 속여서 처음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세상을 다 같이 사랑하게 유도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결국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만 남게 된다. 유다는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하며 추구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세상, 그가 추구한 세상도 추하고 더러운 세상이 아니라 아름답고 고상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세상(이스라엘 민족)의 공평과 자유와 합리적인 삶과 풍요로운 삶을 추구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며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마귀는 언제나 처음에는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서 고상한 세상을 추구하게 하지만 그것은 결국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며 마지막에는 더럽고 추한 세상을 포함하여 세상만 그에게 남게 되도록 한다. 즉 처음에는 세상의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지만 결국은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유다는 상식이 있고 의식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까지 따랐던 것이다. 그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유다가 최종적으로 실패한 사람이므로 그를 과소 평가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조롱할만큼 시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좀도둑이나 바람둥이나 돈만 생각하는 졸장부가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예수를 따랐던 큰 뜻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고 끝까지 자기 생각(실은 자기 생각으로 위장한 사탄의 거짓말)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계시가 없고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유다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의 약속도 믿지 않았다. 그는 단지 자기 생각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 능력 있는 한 나사렛 출신의 선지자를 따랐을 따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유다뿐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적인 상황도 이와 같았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기 신(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그들이 여호와를 섬긴 것은 바알이나 아세라라는 이름의 이방 귀신(우상)을 섬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하나님 섬김은 그들의 우상 숭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거짓말에 놀아난 것이다. 이스라엘은 거짓말쟁이 마귀의 손에 놀아났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바로 죽음이었다. 그들은 마귀가 살인자임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도록 그들의 육체를 부추기며 그들의 귀에 달콤하게 말하는 자가 실은 거짓말쟁이며 살인자임을 깨닫지 못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혜자는 이것을 계속 강조한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대저 음녀(淫女)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아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5:1-7)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5:20-22)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6:25-27)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보다가 어리석은 자 중에, 소년 중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이 계집은 떠들며 완패(頑悖)하며 그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 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여러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7:6-27)

여기 나오는 음녀는 단순히 창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형상화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음녀가 순진한 청년을 호리는 것은 마귀가 그의 교묘한 거짓말로 사람의 육신적 정욕과 야망을 자극하여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속이는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17:1-5)

마귀가 세상 사람들이나 지배하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감히 미혹하거나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마귀는 성도가 가는 길에 서 있다가 항상 미혹한다. 그의 미혹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에게도 던져졌고 마침내 그를 쓰러뜨렸다. 그가 애초부터 택함 받지 못한 자였으니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마귀를 조심하도록 경계하신다. 만일 사람이 마귀와 싸울 것도 없고 의식적으로 곧 의지를 가지고 마귀를 경계하고 대적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주님이 도우시지만 싸움은 우리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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