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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과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



3.복음(구원)의 필요성


4.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3:9-20)


1.세상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철학, 교육학, 상담학, 심리학 등 인간을 다루는 학문에서 말하는 인간관은 대체로 어떤 것인가?


 

동양철학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맹자와 순자의 대표적인 두 학설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1.맹자의 性善說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으로 보았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儒學者)인 맹자(孟子)는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본래 선에 대한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고 하였으며 거기에서 우러나는 마음씨를 사단(四端) 곧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의 情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사단을 확대하면 인간의 선성(善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형태로 완전히 발휘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 안에 仁義禮智라는 (유교적 가지관에 의한) 德目이 내재해 있으며 이것을 북돋우면 인간의 선성이 싹틀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설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惡의 유래를 설명하지 못한다.


 

2.순자의 性惡說


 

B.C. 3세기 무렵의 중국 사상가 순자(荀子)의 설로서 《순자》 23장 <성악편>은 "인간 본래의 성질은 악하며, 선하다고 하는 것은 위(僞;후천적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전국(戰國)시대 말의 순자에게는 사회의 황폐, 예의(禮義)의 쇠퇴가 눈에 강하게 비쳐, 위와 같은 문장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계속되는 문장을 보면, 그가 말하는 성악설은 단지 맹자의 성선설과 본질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악을 행하기 쉬운 경향을 가졌다는 것을 지적한 설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성악설로는 성인군자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을 터인데도, 그는 이것이 인간이 정진·노력한 결과 악을 극복한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자의 성악설은 예(禮)의 意義를 정립하기 위해 人心의 수성(獸性)을 강조한 것으로, 인간의 마음에 갖추어진 선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결국 순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性惡(성질의 악함) 그 자체가 아니고, 그 性惡도 노력에 따라서는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노력의 중요성'이라는 점에 있다.


 

이와 같이 세상은 대체로 인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보는 것은 인간 스스로 자기 존재의 긍정적 의미를 부인한다면 인간 존재(생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이란 본질적인(근본적인) 변화 없이도 그 선한 쪽으로의 가능성으로 인해 잘 가르치고 좋은 환경만 제공하면 어느 정도 선하고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해 세상 교육은 인간의 병들고 왜곡된 영적 상태와 그것의 치유와 회복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다. 다만 사회 생활을 위한 실용적 목적의 윤리 도덕 교육만 할 따름이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무시하고 막연히 인간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가지고 인간을 부적절하게 다루고 있는 이 세상 교육은 갈수록 인간 자체를 소홀히 다루다가 현대에 와서는 그나마도 시행하고 있던 도덕적 인성 교육마저 거의 포기하고 다만 기능 위주의 극단적인 실용 교육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교육이나 산업 발달을 통해 지적 정신적 여유(교양)와 물질적 여유를 상당히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낭만적 기대와는 달리 삶이 더 좋아지지 못하고 죄악과 그로 말미암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발달하고 풍요롭게 된 20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난 두 번의 세계 대전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2.본문(3:9-20)은 1:18-3:8에서 다룬 모든 내용의 결론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을 어떻게 보시는가?


 

그 마음(인격)을 보나 삶의 열매(행위)를 보나 인간은 악하다.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적어도 다 하나님이 처음 정하신 정상적인 사람,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아들'의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사람은 사탄의 말을 들은 이후 심히 왜곡되어 범사에 악을 행함으로써 사탄의 자녀 노릇을 하고 있다.


 

3.의인은 없다고 했는데 성경이 노아나 욥 같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한 것은 왜 그런 것인가?


 

노아나 욥 혹은 시편이나 잠언, 선지서 등에서 어떤 사람들이 의인이라고 일컬어진 것은 그들이 '당대(當代)에'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창6:9) 그렇기 때문에 롯과 같은 (의인이라고 이름 붙이기가 조금 이상한) 사람들조차도 의인이라고 일컬어진 것이다.(벧후2:5-8) 따라서 세상의 어떤 사람들이 의인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목적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택함과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 이상의 다른 뜻은 아니다.


 

또 성경에서 의인이란 그 삶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볼 때) 의로운 사람'을 의미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노아나 욥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 모두가 의인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4.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고 했을 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라고 말했는데 義人과 善人(선한 사람)은 서로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라.


 

의인이란 특별히 선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롭게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義란 법적 개념으로서 공평과 정직과 관련되어 있다. 주인이 어떤 사람을 고용하여 일을 시킨 후 월급을 제 때 준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면 [불의한 사람]이다. 이와는 달리 일꾼이 아파서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못했는데도 주인이 그대로 월급을 준다면 그것은 의(공평)의 차원에서 한 것이 아니라 은혜(사랑)의 차원에서 한 것이다. 이때 주인은 단지 의인일 뿐 아니라 선한 사람(善人)인 것이다. 선이란 공평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은혜와 자비, 사랑과 관련된 것이다. 만일 주인이 일을 하지 못한 종업원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불의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은혜롭지 못한 사람,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 될 따름이다.


 

5.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것은 세상에 도무지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는 말인가? 사람이란 전혀 선을 행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세상에는 상당한 정도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인간이 어느 정도는 선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의인이나 선행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이나 선행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사람이 없으며 그런 행위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볼 때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괜찮고 훌륭하며 많은 일들이 감동적이며 내세울만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충분하다고 인정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나 선인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먼저 의가 무엇이며 선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의와 선은 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인격)의 반영이며 그 인격의 계시(열어 보임)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나 선은 타락한 인간들이 나름대로 규정한 기준에 따른 의나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완전한 수준의 의와 선이어야 하며 그 생명을 따라 산출된 의와 선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은 사람이 그의 생명을 받고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마5:43-48) 사람이 마땅히 나타내 보여야 할 수준의 의나 선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보여졌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났듯이 부분적인 의나 선은 하나님 앞에서 의나 선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이방인과 세리들도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의 온전한 삶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마5:46,47)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부분적으로 옳은 행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반드시 전체적으로 길이 바르고 온전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합당한 삶의 열매가 나올 때 그것이 의와 선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의나 선은 마치 사기를 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그 돈으로 자기 집의 불쌍한 파출부 아주머니에게 월급을 많이 주거나 이웃의 구두닦이 소년에게 팁을 많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나마 세상에서 종종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의롭고 선한 일들도 그것이 사실은 전적으로 사람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반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양심은 비록 왜곡되고 병들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정도로 기능을 발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희미하나마 세상에서 당신의 의롭고 선하신 성품을 나타내고 계신다. (이것은 매우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성령의 역사와는 다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을 도모하는 인간의 행위대로(마귀의 도모대로) 세상을 내버려두셨다면 세상은 벌써 끝장을 보았을 것이다. 오늘 세상이 악하고 타락했지만 이 정도로라도 유지되는 것은 순전히 그의 영원하신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세상사에 어느 정도 개입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 자체를 구원하실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심판날을 연기시키기 위해서이다.(벧후3장)


 

6."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라고 했는데 세상에는 분명히 많지는 않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들이나 神을 찾는 종교인들이 더러 있지 않은가?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종교도 철학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타락한 기독교를 포함하여 세상 종교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신을 이용한 자기 실현이다. 하나님을 찾기는 찾되 인간의 모든 필요와 탐욕을 채워 주는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 결과 진리(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안에서 계시된 참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헛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된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섬기기 위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사 자기를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대하16:9, 잠8:17)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만나서 섬기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 자기(욕심)를 섬기고 있으며 마귀를 섬기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알고 섬기고 있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만나지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을 찾고 또한 만나서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또 신을 필요로 해서 신을 찾는 종교인들 외에도 신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는 철학자나 종교 연구가도 있지만 이들 역시 전혀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음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만났다거나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자가 없음을 보아서 알 수 있다.


 

7.인간이 다 치우쳤다는 것은 인간의 '길'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정한 것인가? 모든 인생 길을 판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인생의 참 길은 어떤 길인가?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2:24-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5:19,44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고후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어떤 사람의 길이 바른 길인지 치우친 길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예수님의 길과 일치하는 인생은 바른 인생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치우친 인생이다. 주님의 삶에서 나타난 '아들의 길', 곧 '보냄 받은 자의 길'이야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정상적인 사람의 길이다. 자기를 위하지 않고(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자기를 보내신 분(하나님)을 나타내며 그 뜻을 이루는 인생만이 정상적인 인생이다.


 

요일1:6,7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2:9-11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일3:4-10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13:13-17,34,35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 공급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삶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요일3:10에 따르면) 사랑과 義다. 주님 안에서 나타난 이런 열매가 없는 인생은 거짓되고 치우친 인생이다.


 

8.바울은 인간이 총체적으로 부패하여 죄의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롬3:13-15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9.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인간의 어떤 실상을 두고 한 말인가?


 

마23:25-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생명(인격)은 마음의 생각으로 나타나고(표현되고) 마음의 생각은 입술의 말로 나타난다. 사탄의 살인과 음란과 거짓의 생명이 사람 안에 역사하기 때문에 사람 속에서 더러운 욕과 거짓말과 음탕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사람의 손발과 모든 지체가 다 죄악된 인격을 표현하는데 쓰이지만 특히 입(말)이 가장 많이 쓰인다. 그러므로 약3:1-8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입을 특히 주의하도록 경계하신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생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한 후에도 다윗과 같이 기도하여 사탄이 우리의 입을 통하여 틈을 타서 우리 생명을 새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141:3)


 

10.율법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율법 아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바울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까?


 

롬6:14,15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고전9:20,21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갈3:10, 4:21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보다 율법을 더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보다 인간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과 선한 마음을 더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1.결과적으로 죄인인 인류에게 율법은 어떤 기능을 하게 된다고 했는가?


 

롬3:19,20 "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5:20 "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갈3:19-24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中保)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2.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율법이 이처럼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하고 위에서 말한 소극적인 기능밖에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롬7:9-18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율법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다 하나님과 동일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만 유용할 뿐이다. 생명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정죄와 저주)의 역사를 일으킬 뿐이다. 죽은 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죽음을 분명하게 드러낼 뿐 아무 실제적인 역할도 하지 못하며 다만 무거운 짐으로 역사할 뿐인 것이다. 유대인들에게서 드러난 한 가지 사실은 '죽은 자에게 율법을 주면 그는 그것을 통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죽은 것(무덤)을 덮는 방패로 그것을 사용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그냥 무덤이라면 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은 회칠한 무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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