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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하나님의 義와 그리스도의 보혈


4.의(구원)의 길


2.하나님의 義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각 문장에서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A.하나님 자신의 의를 의미함


 

롬3:5이나 3:25,26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의 의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의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법적인 의(공의)를 말하는 경우이고, 하나는 구약 시대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에 신실하시고 그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백성을 신실하게 구원하시는 성품과 행위로서 의를 말하는 경우이다.


1.하나님의 거룩하신 인격(속성) 곧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냄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본성(성품)을 가리킨다. 이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은 죄인들을 불가불 심판하신다.


 

롬3:25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사랑과 자비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 그의 사랑과 자비가 그의 공의와 어떻게 충돌하지 않도록 조치하셨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의를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죄인들을 의롭다고 하실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에(구약시대에) 죄인들에 대해 (그들의 회개를 기대하는 가운데서) 마땅히 내려야 할 진노를 참아 오셨다.(롬2:4, 행17:30)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전에 죄를 간과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합당한 후속 조치가 없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고 말 것이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시되 부당하게 용서하실 수는 없었다. 하나님은 마땅히 의로운 방법 곧 자신의 의를 다치지 않는 방법으로 용서하셔야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득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삼고 죄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그가 대신 받도록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그때까지(과거에) 하나님이 죄인들의 죄를 간과해 오심으로 제기될 수 있었던 의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하나님의 의(공의로우심)를 증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의도 유지하신 것이다.


2.하나님의 행동의 신실하심을 나타냄


 

이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의를 말하는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에 충실하심으로 인해 항상 그들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시98:1,2, 사46:13, 51:5-8, 56:1, 62:1)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들을 지탱해 준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맺은 언약으로 인해 그 백성들을 이방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지켜 주시며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의였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다스리는 왕에게 일반적으로 이런 성질의 의를 기대하고 있었다. 구약은 왕이 백성을 심판하는 것도 단지 공의를 세우기 위할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생활을 보호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보았다. 왕의 의는 백성들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똑같이 여행을 하다가 도중에 다리를 다친 사람이 생기면 인솔자는 그에게 특별 대우를 해준다. 이처럼 왕의 의도 단지 공평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잘 되도록 보살피는 성질을 가진 의였다.


 

시편과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 보호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35:24)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71:2) "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71:24)


 

" 의가 가깝고 구원이 나갔은즉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팔에 의지하리라"(51:5)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54:17)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56:1)


 

이처럼 하나님은 그 의로 자기 백성을 세우고 승리로 이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원수들에게서 구해냄으로써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며,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약자(弱子)들과 빈자(貧者)들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온전케 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의는 자기 백성들 안에서 뿐 아니라 열국에까지 선포되는 것이다.


문제 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았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의 모두를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 가운데서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고 어느 부분이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인가?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 이 말씀은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되었느니라.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4-26)라는 말씀은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위하여 구세주를 보내 주심으로써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요3:16) 이에 비해 하나님의 의는 구원이 우리들에게 실제로 임하도록 만든다. 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은 이상 그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다.


 

주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승천에서부터 현재 이 순간까지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베풀어질 수도 있고 베풀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반드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구원하실 수밖에 없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면) 하나님은 의롭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요일1:9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요한이 하나님에 대해 "저는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사"가 아니라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라고 말한 것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는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이미 깨끗케 했다. 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한다.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선포되었기 때문에 물릴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 말씀에 신실하시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의 피가 이미 흘려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피를 의지하고 자기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을 받지 않으실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을 어떤 사유로 받지 않으실 수도 있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하나님이 된다. 그 의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을 수 없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의롭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불의한 것이요 죄악된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게 행하실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실 수도 있고 용서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 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진실하시지도 의롭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의를 굳게 붙잡는 것을 원하시며 기뻐하신다.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2.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의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의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의인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이다. 하나님의 의란 앞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한다. "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5,26) 여기서 '화목 제물'로 번역된 단어는 {속죄소} 또는 {법궤 뚜껑}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법궤의 뚜껑은 법궤 위에 위치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만나는 장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돌판이 들어 있는 법궤 자체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법궤를 덮고 있는 뚜껑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접촉점이 된다) 하나님은 주 예수님을 법궤의 뚜껑으로 세우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사람과 교통하실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만약 법궤에 뚜껑이 없다면 법궤 안에 있는 율법이 밖에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법궤의 뚜껑에 피가 뿌려짐으로써 율법은 더 이상 사람(의 죄)을 정죄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의 죽음으로써) 율법의 요구가 이미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법궤에 뚜껑을 덮어두심으로써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의로우신 분임을 나타내셨다.


 

율법에 의하면 죄를 범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이 자비로써가 아니라 공의를 따라 용서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서 10만원을 빌리고 B에게 어음을 주었다고 하자. 얼마 후 A가 B에게 10만원을 돌려주면 즉시로 B는 그 어음을 A에게 돌려주고 채권을 소멸해야 한다. 그런데도 만일 B가 그 어음을 돌려주기를 거부하고 A에게 여전히 돈을 갚으라고 강요한다면 B는 불의한 사람이다. 우리는 죄를 범했으므로 죽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사용하여 우리의 많은 죄의 빚을 갚았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자비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 이유만으로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용서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공정하고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그가 성취하신 일에 있어서, 또 우리를 대우하시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공정하셨다. 예수님은 한 분의 사람이었다. 우리도 역시 사람이다. 이제 죄가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이 한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나가야 한다.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그것은 한 개인 이상의 문제였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아담은 선두이고 우리는 다 그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도 그러하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의 부활 생명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애처롭게 용서를 호소할 필요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지하면 구원을 누릴 수 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 곳은 없다. 그리스도의 의는 오직 그리스도 자신이 구세주가 되는데 갖추어야 할 요건이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무죄함과 선한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그의 의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를 성취한다. 그리스도의 의는 네 가지의 색으로 만들어진 성막 속의 휘장과 같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볼 수 있고 다른 모든 사람은 휘장 밖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휘장이 찢어졌을 때(그리스도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우리에게 열렸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10:20,22)


B.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근거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로서의 {하나님의 의}


 

롬1:17, 3:21,22, 10:3 등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 자신의 의 곧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의(의롭다 하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우리의 의'이다.


 

고전1:30, 빌3:9에서 바울은 이러한 {선물로서의 의}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된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받아들이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우리의 의가 된다는 말이다. "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의라"(빌3:9)


3.보혈의 가치


 

문제 3. 레위기 4:1-7을 보면 속죄 제물의 피를 회막에 가지고 들어가서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리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문둥병자에게 관한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가 정결케 되는 날에 문둥병자에게 피를 일곱 번 뿌리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있어서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 전체에서 피를 요구하는 분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피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오직 긍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하나님께서 오직 긍휼로서 용서를 하셨다면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 아니시게 되는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은 다음 사실을 가지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한 세리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하고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은 피 뿌림이나 무슨 제사도 없이 그 사람을 받으시고 의롭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세리가 하나님께 간구한 말은 단순히 긍휼히 여겨 달라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속죄(화목)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다. 그가 말한 "불쌍히 여기옵소서"라는 말은 hilaskomai(헬)라는 동사로 되어 있는데 이 단어는 '화해(화목)시키다, 달래다'라는 뜻과 '속죄하다, 대속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눅18:13 외에 히2:17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구속하다'로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의 명사형은 hilasterion인데 히9:5에서는 {贖罪所}(이것은 법궤 뚜껑을 가리키는데 施恩座, 施恩所로도 표현된다)로, 롬3:25에서는 {화목 제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죄는 어떤 방법으로든 판결을 받고 처벌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오직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올 때만 그를 용서하실 수 있다. "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기도할지 모른다. "오 하나님! 만일 용서하는 것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시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혹은 "만일 용서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용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기뻐하시지 않는지를 물어 보아야 하는 사항이 아니다. 또 용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떤지를 물어 보아야 하는 사항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관대하셔서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지만 그래도 피가 없이는 결코 용서하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신(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는 하나님의 용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다. 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피에 대한 요구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에 따른 요구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여 보기로 하자. 어떤 사람이 살인죄를 범하고 법정에 긍휼을 베풀어줄 것을 탄원하였다고 하자. 그 결과 그 사람은 재판관의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다. 그 후에 두 번째 사람이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이 동일한 범죄를 하고 역시 긍휼을 베풀어 줄 것을 탄원하여 역시 용서를 받았다. 과연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도 세 번만 이런 용서가 베풀어지게 된다면 그 나라는 무질서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긍휼을 베풀 것을 알고 있는 한 살인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죄의 형벌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의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범한 자들에게 대하여 죽음이나 피 흘림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그의 고귀한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서도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속죄 제물의 피가 하나님 앞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피 없이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셨다 할지라도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그로 하여금 피 없이 용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둥병자에게 일곱 번 피를 뿌리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레위기 14:1-7의 말씀을 보면 피를 뿌림으로써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고 도리어 고침을 받은 후에 피를 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왜 고침을 받은 후에 피를 뿌려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단지 사람 앞에서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서도 깨끗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함을 받기 위해서는 피 뿌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 사항은 피다.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은 후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곧 그가 부정하지 않다는 최종적인 판결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피 뿌림을 받은 후에 라야 정결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8:1-4을 보면 주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신 후 그로 하여금 모세가 요구한 대로 예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이 이런 구약의 율례에 따른 요구를 하신 것은 아직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사람들 앞에서는 깨끗하게 하셨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피에 대한 요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라 할지라도 피 없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피는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흘려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달성하기 위하여 흘려진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피 없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의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오직 피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감히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공로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직 피만이 하나님에게 만족을 줄 수 있으며 또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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