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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



4.의(구원)의 길


4.구약의 예증 (4:1-25)


1.바울이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입증(확증)하고자 한 사실은 무엇인가?


 

롬3:27,28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기심(구원)을 받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예비된 구원 곧 '하나님의 의'(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길뿐이라는 것.


 

2.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를 입증하기 위해 구약 인물인 아브라함과 다윗을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요8:33,52-56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갈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 복음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고 이스라엘의 조상들 안에서 시행되고 선포되어 오던 것이라는 앞의 설명(3:21)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주요 인물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例를 들거나 적어도 그 진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단지 그들의 육신적 조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적 삶의 근원이요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누렸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필요했다.

 

3.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의 조상이 된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믿음


 

4."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라는 말씀에서 증거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과 성질에 대해 말해 보라.


 

창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4:17-22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히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후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말씀)을 믿음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감


 

히11:9,10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나지 않고 살음


 

창22:1-18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롬4:17하,21 "....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약속을 실제로 믿고 이삭을 드림


 

모든 믿음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다. 즉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가 오지 않은 시대에 살았으므로 그가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와 관련된 하나님의 약속 곧 '후사와 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별로 이루어질 가망이 없어 보이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단지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의 인격과 신실하심을 믿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입증된 것은 모리아산의 헌신에서였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매우 어려운 명령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후사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으면서도(히11:17) 어떤 주저함이나 의심도 없이 그 일을 즉시 시행하였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고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백 세에 주신 귀한 독자를 바치라고 할 때는 분명히 당신의 약속을 이루실 다른 어떤 방법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생각 곧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거했다.(히11:18,19)


 

5.바울이 롬4:4-6에서 말하는 '일'이란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인가?


 

갈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이 보시는 일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대로 진실하고 거룩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다.


 

6.만일 어떤 선한 사람이 (불완전하나마) 그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다면 그는 그러한 하나님의 칭의(구원)를 무엇으로 생각하겠으며 하나님께 어떤 태도를 취할 것 같은가?


 

롬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고전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칭의(구원)를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에 대해서 말하거나 감사하며 자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며 자랑하게 될 것이다.


 

7.그런 생각과 태도, 곧 은혜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우수함과 선한 행위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엡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그것은 우선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맞지 않은 행동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구원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행위로 구원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찬송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의) 정상이라면 자기 선행(하나님의 아들된 열매로서의 의롭고 거룩한 삶)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사람은 자기 선행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를 의와 구원에 이르게 할만한) 자기의 그 선행은 하나님이 자기를 잘 지으신 결과로 생겨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 까닭에 자기가 하나님처럼 거룩하고 의롭다는 사실을 알므로 인해 결코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지으신 이를 찬송하고 자랑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상태라면 굳이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필요도 없고 구원을 받을 필요도 없는 상태이므로 그런 일은 없다. 오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기심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타락하여 멸망 받을 처지에서만 있는 것이므로 이런 자리에서는 자기의 행위를 붙잡고 그것으로 구원을 받거나 그것을 자랑하게 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8.믿음도 일(행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아직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지 못한 것 같다"라고 하거나 "내 믿음은 아직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못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가?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구하는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실 때 거저 받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원의 조건이 될 만한 일이나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믿음은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조건이 되는 어떤 일이나 행위가 아니다.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참 믿음은 반드시 어떤 믿을 대상이 있고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상적인 믿음은 자기의 믿을 대상이신 하나님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여서 그와 연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하나님을 실제로 알고 받아들여서 누리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 (마음 속에서) 어떤 신념을 갖고 그것으로 유익을 얻는 {정신 활동}이나, 신을 통해 자기 수양을 하거나 (소원성취같은) 필요한 목적을 달성하는 {종교 행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종교 밖에서 시도되는, 수양이나 훈련으로 말미암는 신념과 분명하게 구별되며, 또 종교적인 행위라도 다른 종교에서처럼 어떤 종교 의식이나 가르침을 통해 자기 의지를 강화하며 자아를 발전시켜 나가는 행위와도 분명하게 구별된다. 신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이 되거나 강한 사람이 되는 것 또는 종교를 가짐으로써 세속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 활동이나 훈련이 부족한 것을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 많고 부족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9.다윗이 말한 사람의 행복은 무엇인가?


 

롬4:6-8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시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사람이 어차피 허물과 죄가 있는 존재라면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서 죄의 용서를 받는 데 있다. 이것은 곧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0.이 행복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가?


 

롬4:9-12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과 다윗 시대에도 주어졌으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아담의 범죄 직후(창3:15)에 주어진 것이다. 이것을 믿고 붙잡는 사람에게는 일하지 않고서도 의롭다 하는 하나님의 값없는(조건없는) 구원이 주어진다.


 

11.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은 후에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는가? 아니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는가?


 

롬4:10, 창15:1-11, 17:1-14


 

할례 받기 전에 의롭다 여기심을 받았다.


 

12.그러면 아브라함에게 할례는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할례와 믿음의 관계에 대해 말해 보라.


 

롬4:11,12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이전에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할례가 믿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직 할례는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자, 곧 구원을 얻는 자라는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13.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의 조상이 된 것인가? 특별히 이 사실을 말함으로써 바울이 (유대인들의 오해와 관련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롬4:11,12,16,17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혈통적 유대인이나 그 누구의 조상이 아니라 오직 자기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모든 자들의 조상인 것이다. 바울이 이 사실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실체는 없고 모형과 그림자만 있던 구약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는 그 모형과 그림자로 말하고자 했던 실체가 왔으며 오직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할례와 율법, 곧 유대교라는 종교 형식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다 믿음과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한시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들은 다 장차 올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허상인 유대교나 그에 속한 율법과 할례를 좇지 말고 그것들의 참 실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 받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14.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세상의 후사(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어지는가? 즉 여기서 말하는 후손은 어떤 사람들이며 혹은 후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또한 그들이 얻게 될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지에 대해 말해 보라.


 

롬4:13,14,16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히11:9,10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혈통으로 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그리스도)을 참으로 믿는 자들이 세상을 유업으로 받게 될 하나님의 후사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유업으로 받는 후사가 되려면 아브라함처럼 약속을 믿으며, 아브라함처럼 세상에 속한 모든 소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우리의 경우는 새예루살렘으로 단장될 영광스런 교회, 또는 천국)에만 소망을 두며, 아브라함처럼 자기에게 정해준 터(우리의 경우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떠나지 말고 그 위에 굳게 서서 살아야 한다.


 

15.아브라함이 그리스도가 오기 전 구약 시대에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믿었던 그 믿음과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본질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과 같은 믿음이다. 즉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었고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며,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대로 실제로 살았으며(실천과 순종을 했음)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산다. 그러므로 둘 다 같은 믿음이다.


 

그러나 약속을 실제로 누리느냐 하는 문제와 약속의 내용(실체)을 정확하게 알고 믿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아브라함이나 구약의 믿음의 인물들은 약속을 받았으되 단지 '약속의 증거'만 받았을 뿐 '약속 자체'는 누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때가 아직 '때가 차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그 약속은 오직 오늘 우리의 때(그리스도의 때)에 와서야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11:39,40) 그들은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한 채 그야말로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오직 '믿음으로' 붙잡고 살았다. 그들에 비해 오늘 우리는 그들이 고대하던 약속의 실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리스도가 있고, 성령님이 있고, 성령 안에서 완전한 진리의 말씀이 있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있다. 그러므로 같은 믿음이라도 약속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복된 믿음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구약의 선배들과 다른 믿음의 세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구약의 인물들은 약속(의 성취)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 또한 그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다만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에 비해 오늘 우리는 그 약속의 내용이 '그리스도'이며 또한 그로 말미암는 영광스런 교회 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알고 믿는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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