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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화평과 기쁨과 소망의 삶

2010.05.06 13:53

이상봉 조회 수:2994

 

 

 

제11과 화평과 기쁨과 소망의 삶



4.의(구원)의 길


5.구원을 누림 (5:1-11)


1.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 얻은 사람이 누려야 할 궁극적인 구원의 목표 또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5:1,10,1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10:21,22)


 

죄 사함을 얻는 것이든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든 사람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모든 영적 복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으로 하나님(그리스도) 자신을 누리게 하는 데 있다.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서 잡다한 부수적 복만 누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를 믿어서 생활이 좋아지거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신(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쓰여지게 되는데 있다. 그것은 구원의 목적이요, 반드시 누려야 할 구원의 핵심 내용이요, 반드시 (완전히) 이루어야 할 구원의 목표이다.


 

2.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하나님과 적어도 어떤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하는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4:5,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요17:3,2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히8:11)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4-16)


 

화평 또는 평강, 평안으로 번역되는 {에이레네}(헬)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합당한 관계'에 놓여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 합당한 관계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우에는 '형제의 관계'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여기에 못 미치는 관계로 있는 것은 화평(평안)의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우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종교적으로) 섬긴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고 그 뜻을 자기 것으로 알고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으며 하나님과의 사이에 화평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단지 두려운 신으로 알고 섬기는 것은 화평을 누리는 상태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아버지 아들의 관계에 이름으로써 진정한 화평을 누리려면 먼저 죄 문제가 처리되어야 하며 다음으로 육(마귀의 말을 듣는 자아)을 부인하고 영(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써 아들다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원하고 있었고 자신들은 이미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는 것으로 드러났듯이)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고 있었고 도리어 하나님의 원수 된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또한 자기 생명으로, 자기의 영원한 길과 운명으로 아는 자리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의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거기서 얼마나 더 아버지를 깊이 알고 깊이 누리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얼마나 더 아버지께 깊이 순종하며 아버지를 나타내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지 그 이하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자리보다 못한 관계에서는 사실상 하나님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필요를 따라 하나님을 찾고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지만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들의 길과는 무관한 길로 걸어가는 종교적인 신앙인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 불신자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불화한 가운데 있는 것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3.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아래 말씀들을 읽고 말해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말2:4-8)


 

① 레위인 또는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요구받은 삶을 살 때 사람은 비로소 "화평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말2:6下) 것이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② 하나님과의 화평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57:19-21)


 

③ 악을 행하거나 죄를 품고 있는 자는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온전한(화평의)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6)


 

④ 영을 좇느냐 아니면 육신을 좇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직 영을 좇아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시94:12,13)


 

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에도 종종 연약함으로 인해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그릇 행하기 쉽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징계(懲戒)와 치리(治理)의 손길을 펴시는데 이때 겸손하게 하나님의 치리를 받아들이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궁극적으로(계속적으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지만 이것을 거부하거나 항거하면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없다.


 

4.바울은 본문 5:2에서 그리스도인이 서 있는 자리(세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 (히12:15상)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히12:28)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5:4)


 

이 말씀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서 있는 자리가 은혜의 자리임을 말해주고 있다. 신자가 서 있는 자리는 사람이 자기의 선한 행위나 노력으로 무엇을 성취하여 누리는 세계와 반대되는 세계 곧 사람 자신과는 상관없이 위로부터 온 선물을 공짜로 누리는 세계이다. 하나님(그리스도)으로 말미암는 이 은혜의 세계를 깊이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끝까지 율법적인(선악을 따라 이치를 따지는) 태도로 대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최종적으로는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긍휼과 희생(대속)으로 표현되는 은혜의 정신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 믿는 순간에만 은혜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은혜만을 붙잡으며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언제나 은혜로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1,2)


 

5.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의 나라로 들어온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것과 함께 또 무엇을 누리게 되는가?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이 누리게 될 구원의 내용으로 두 번째 제시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


 

"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5:2)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3:19)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2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3)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5:26,2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2,3)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이 말씀들은 우리가 때가 되면 지금 땅에서 누리고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현재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그 영광의 세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차 주님이 다시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는 우리가 누릴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의 완전한 영광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간직할 우리의 소망이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나그네 삶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구원의 내용에는 현재적인 구원 곧 하나님과의 화평 외에도 미래적인 구원에의 소망 곧 '장차 누리게 될 완전한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소망}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6.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 누리게 될 구원의 내용으로서 바울이 세 번 째로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롬5:3)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4-7)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2,13)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4:7,8)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6:9,10)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1:12)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특권 중의 하나는 어려운 환경과 환난을 만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가 얼마나 실실하신 분인지, 왜 자기를 그런 환경 가운데 두시는지, 자기를 통해 거기서 이루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과 {소망} 곧 그런 환경적 연단이 가져오게 될 결과를 알고 바라는 소망 가운데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살전5:16,18)


 

7.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환난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각 과정과 결과를 설명해 보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3,4)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것을 잘 견뎌내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선을 행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끝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약속을 붙잡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이루는데는 환난이 좋은 수단이 된다.


 

환난은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지만 부득이 만나게 되면 기꺼이 맞이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태도다. 그것은 환난이 우리를 영원한 소망에 이르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환난이 어떻게 우리가 소망에 이르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그것은 환난이 우리에게 '여러 시험 속에서 인내하는(참는) 법'을 익히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내의 훈련이든지 인내의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마땅히 참아야 할 것을 잘 참을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참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인내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생명의 복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마귀의 각종 시험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2-15)


 

마귀의 시험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작용하는데 첫째는 우리 바깥에서 역사하는 세상의 핍박과 유혹이고 둘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육체의 정욕이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핍박이나 유혹을 참지 못하면 소망을 놓치고 딴 길로 새게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영원한 세계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편으로는 성령과 말씀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육체의 연약함을 감안하사 생명의 강화를 위한 연단(단련)의 기회를 갖게 하신다. 여기서 환난을 통한 '인내의 연습'이 나온다.


 

신체는 일정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 단련되지 않는다. 적당한 고통은 인내를 만들어내며 그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강한 신체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삶도 환난이 없으면 안일하고 나약해지며 마귀의 시험이 왔을 때 그것을 막아낼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는 것은 결국 삶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성령 안에서 오랜 연단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환난 속에서 인내의 연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놓으려는 마귀의 집요한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기 힘들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인내(참는 것) 역시 믿음의 열매요 성령의 열매라는 사실이다. 성령 안에서의 모든 훈련은 사람의 의지나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영적 연단은 인간 의지 능력을 실험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믿음을 신장(伸長)하는 훈련 과정이다.


 

8.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 보라.


 

첫째, 세상 소망은 마귀의 거짓말에 속은 인간의 허무한 생각에 따른 것이므로 정(定)함이 없고 부질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소망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약속에 따른 것이므로 확실하고 영원한 것이다.


 

둘째, 세상 소망은 눈에 보이는 이 세계와 거기 속한 인생(육체의 삶)에 있는 반면에 우리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그리스도의 나라)와 '거기 참여하게 될 거듭난 새 사람'인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있다.


 

9.그리스도인의 소망이 세상 사람들의 소망에 비해 부끄럽게 여겨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영(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영광, 사람들이 사모하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보다 육체의 형편이 어렵고 초라하게 되기 마련이며 또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실제로 그런(초라하게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10.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소망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 최후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삶 속에서도 하나님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세상에 소망을 두고 행하는 사람보다 훨씬 큰 기쁨과 안식과 확신을 누리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지 및 진리의 지지가 따른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지지와 인정뿐이지만 우리에게는 (진리를 아는) 사람의 지지하고 격려 이상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지와 위로 및 진리 자체의 지지와 격려이다. 진리는 그것을 붙잡는 사람에게 확신과 담대함과 평안을 준다. 그것은 진리가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행할 때 순탄하고 평안한 삶이 되는 것처럼 사람은 그 지음 받은 길에서 행할 때만 안식이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거슬러 가는 사람에게는 피곤과 불안이 따를 수밖에 없다. 생명의 길로 순리대로 가는 사람과 썩어질 것을 좇아서 역리(逆理,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의 삶은 결코 같지 않다. 그것은 미래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이 훨씬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11.그리스도인이 이 소망에 대해 반드시 그렇게 확신해야 할 근거 또는 그렇게 확신해도 좋을 근거는 무엇인가? 객관적인 근거와 주관적인(내적) 근거로 나누어 말해 보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8)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1-39)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객관적인 증거는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확실한 구원의 전적(前績)이고, 주관적인 증거는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를 항상 감동시키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12.바울은 로마서 5:9,10에서 그리스도인이 얻게 되는 구원(의 내용)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무엇 무엇인지 설명해 보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5:9-1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1-4)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첫째, 처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여기심을 받으며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생명 곧 의로운 생명, 부활 생명, 거룩한 삶을 가능케 하는 생명을 받음으로써 실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구원은 다른 각도에서 다음과 같이도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의 구원은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현재적 구원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현재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얻고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아들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미래적 구원은 소극적으로 말하면 장차 있게 될 하나님의 우주적인 진노(심판)를 면하는 것이고(5:9) 적극적으로 말하면 천국(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누리며 즐거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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