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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삶


5.거룩한 삶의 길


1.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얻는 생명과 승리 (6장)


A.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죽음과 부활 (6:1-11)


1.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무리 심한 죄를 짓고 많은 죄를 지어도 얼마든지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과 같이 사람의 죄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빛나게 하는 효과조차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얼마든지 계속 죄를 지어도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면, 즉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하더라도 결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범죄할 수 없다. 죄를 용서받을 수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더 이상 범죄할 수 없다. 그것은 범죄할 수 있는 우리 옛 사람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요 지금 우리 생명은 범죄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6:2)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3:9)


 

2.바울은 왜 이런 질문을 하였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의 기회로 삼도록 만들려고 하는 사탄의 미혹이 있고 그 미혹을 받아 은혜를 의지하여 여전히 육체대로 살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받는 것이 옳으니라" (롬3:7,8)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5:20,2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5:13)


 

3.우리는 죽었는가? 죽었다면 언제 어떻게 죽었는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6:3)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함께 포함되어 죽었다. 이는 아담이 범죄할 때 우리가 그와 함께 범죄했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 대해) 죽게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4.이 죽음은 어떤 죽음(무엇에 대한 죽음)인가?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6:2,11)


 

죄에 대한 죽음이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탄을 따르는 자리에서의 죽음이다.


 

5.세례를 받았는가? 받았으면 그것이 무슨 의미인 줄로 알고 받았는지 말해 보라.


6.세례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가장 큰 영적 사실은 무엇인가? (세례는 '누구'와의 '무엇'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의식)이다.


 

7.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양면(두 측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무엇 무엇을 경험하는 것인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3,4,6)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6:5,8,9)


 

세례는 자신이 죄와 세상,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다시 살아났음을 세상과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양면의 진리는 죽음과 부활이다.


 

8.세례를 받는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4,6)


 

더 이상 사탄에게 매여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스런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례는 우리가 이미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나타내는) 의미와 아울러 실제 삶에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환경적으로) 돕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세례는 세상에서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을 돕는다.


 

9.세례는 어떤 형식(의식)으로 베풀어졌다고 보이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1:9,10)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7-39)


 

10.바울은 위의 진리들을 말함에 있어서 형제들에게 이런 사실(진리)을 설명하기도 전에 먼저 6:1-3에서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라든지 " 거하겠느뇨?" "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 알지 못하느뇨?"라는 식의 질문(반문)을 함으로써 마치 형제들이 이 모든 진리들을 이미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또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만일 형제들이 이런 진리를 모르고 있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 없는 것이고, 만일 알고 있다면 뒤의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요일2:20,21)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5-27)


 

"그 때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6,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9-12)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생명 안에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진리를 직접 가르치고 설명하기 전이라도 바울은 형제들 안에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의 생명(영, 마음)으로 인해 그들이 어느 정도 진리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있는 생명(진리)을 일깨우는 것과 전혀 없는 것을 주입시키는 것은 다르다.


 

11.하나님을 아는 완전한 지식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생명'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울처럼 돕는 자(교사)들을 세워서 형제들을 가르치게 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유1:5上)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롬15:14,15)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4:17)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벧후1:12,13,15)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사람의 이전 생각들(세상 상식들)과 본능적 육신의 욕구(타락한 자아의 잘못된 욕구)와 사탄이 끊임없이 주입하는 거짓말 등으로 인해 심히 방해를 받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그 음성에만 주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게 되거나 깨닫고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계속 말씀에 착념하는 것이 필요하고 형제들이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 필요하며 삶의 경험을 통해 말씀을 확실하게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12.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 또는 믿음 생활에 다음 네 가지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진리) 분명하게 '앎', 그것을 깊이 되새기며 사실(실제) '여김', 몸을 하나님께 '드림', 범사에 성령을 좇아 '행함' 그렇다면 로마서 6:1-13, 8:5-14의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의 어느 부분이 어느 요소에 해당되는지 말해 보라.


세례의 의미 : 세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


 

1.구원을 받게 해준다. (막16:16)


 

막16:16에서 주님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세례가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떻게 세례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가? 세례 의식이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천주교이지 개신교는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 바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세례를 받음으로써가 아니라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으로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그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구원(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구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실제적이고 단체적인 구원'이다.


 

신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현재적으로 경험해야 할 구원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아 천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누릴 구원이다. 현재 누려야 할 우리의 실제적인 구원은 세상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구원은 세상에서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경험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구원은 '그가 이전에 속해 있던 죄와 사망의 세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세례는 세례 받은 사람을 세상에 대해 죽은 자로 사망 신고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은 멸망 받기 위해서 일부러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은 하나님의 정죄 아래(심판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은 이미 멸망 가운데 처해 있다. 다만 하나님은 그 중에서 얼마를 끌어내고 계실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가 얻지 못했는가의 여부는 그 사람의 '개인적 행위'(죄를 얼마나 지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의 '소재(所在)가 어디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만일 그가 배(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요, 아직 바다(세상)에 있다면 그는 버림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구원은 철저하게 위치의 문제이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누구든지 아담(세상) 안에 있으면 그의 의사나 행동과 상관없이 저절로 죄인이 되며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그러므로 구원은 거기서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구원은 일단 개인적인 차원에서(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속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써 영생을 누리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지속적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변화 이상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그런 변화를 만천하에 대놓고 공개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세례가 바로 그런 일을 돕는 의식인 것이다. 세례는 변화를 경험한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세상 친구들에 대해 자신의 변화(죽음)를 선포하는 것이다. 사람이 주님을 영접한 후 자기 혼자서 "나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말한다 할지라도 세상은 아직 그 사림이 그들(세상)과 한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는 세례를 통해 세상을 향하여 자기가 세상과 모든 관계를 끝냈음으로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실제적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세례는 결국 그리스도인을 세상에서 분리시키고 해방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죄 사함을 얻게 한다. (행2:38)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이 있은 후 제자가 되려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믿음을 말하지 않고 세례를 말했다. 그것은 거기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 손으로 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주님을 죽인 무리들에게서 나와 도리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세례를 받음으로 된다. 베드로가 말한 회개 역시 세례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悔改한다는 것은 길을 바꾸고 위치를 바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다시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인데 이 유대인들의 경우 궁극적 죄는 예수님을 거부하여 죽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회개는 예수를 죽이고 배척한 자리에서 그를 자기의 영원한 운명과 생명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자리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물에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주님을 거역한 세상에 대해서는 죽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죄는 사함받게 된다. (더 정확히는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자가 되므로 정죄할 것이 없게 된다) 또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속해 있던 무리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3.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분명히 깨닫고 인정하게 하며 기억나게 해 준다. (로마서 6:3-4, 골로새서 2:12, 벧전 3:20-21)


 

세례를 받는 사람은 두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는 세례를 받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며 하나는 세례를 받은 후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세례 받기 전 물 이편에서는 "지금 내가 경험하는 이 세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인가"를 알아야 하며, 세례를 받은 후 물 저편에서는 "내가 받은 이 세례의 참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6:3)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우리가 받은 세례는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 안에서 우리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그의 부활 안에서 주님과 더불어 새로 살리심을 입었다. 세례는 이것을 공식으로 통보하는 것이다. 롬6:3은 진리의 전반부 곧 우리의 매장(죽음)을 주로 설명하고 있으며 골2:12은 진리의 후반부 곧 우리의 부활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례를 통해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었으므로 죄와 육체와 세상에 대해서 더 이상 빚진 것이 없으며 따라서 죄의 지배와 육의 지배를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며 세상도 우리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할 것이 없게 되었음을 우리에게 선언해 주신 것이다. 누구든지 참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상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 대해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세상과 옛 사람(육신의 정욕)의 노예가 아니다. 바울이 " 알지 못하느뇨?"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항상 기억한다면 우리는 넉넉히 죄와 세상과 자아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의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죽음으로 죄의 종에서 벗어났음을 말해 줄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있음을 또한 말해 준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아무런 변화의 느낌을 갖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몸을 더 이상 죄에게 불의의 병기로 주지 말고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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